몇 달 전에 지인이 스타트업 생태계 책을 공저했다며 찾아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거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바이블이었죠. ‘참 많이 애를 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지인과 이 책을 놓고 이야기를 하던 중, 말미에 아래와 같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내용 정말 좋은데, 제목에 카르텔이 붙으니 좀 부정적인 것 같지 않아?’

카르텔: 오늘날 카르텔이라 하면, 기업연합의 형태로 같은 산업에 존재하는 기업들 간의 자유경쟁을 배제하여(신사협정) 독과점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시행하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의미한다. – 나무위키

키워드의 의미만 읽어보니 안좋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스타트업계 성범죄 이슈’를 접하고나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년 스타트업 경영진들이 투자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4일 한겨레 취재 결과, 온오프믹스 ㄱ(32)대표와 ㄴ(33)부대표가 회사 투자자 ㄷ씨를 각각 강제추행, 준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6월 ㄴ씨의 준강간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월 형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 구속했고,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6월 ㄱ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 한겨레 신문 보도

한겨레와 더벨의 보도가 나간 뒤 6일 뒤 ㄱ(이라고 칭하겠다) 대표는 주주와 임직원들에게 ‘최근 연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사과한다’며 ‘대표이사와 회사의 등기이사직을 모두 사임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을 전후로 스타트업계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쏟아졌고, 몇몇 투자자들의 멘트들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테면, ‘대표이사, 등기이사직 사임은 훌륭한 선택’, ‘도덕적/법적 무죄를 믿고 싶다’, ‘좀 더 자세히 아는 사람으로서 악의적 보도라는 생각이 든다’ 등.

투자를 했던 입장, 가까이 지냈던 입장, 오프라인에서 친분이 있던 입장이라면 어느 정도 이 회사와 경영진을 신뢰한다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ㄱ대표의 경우에는 아직 선고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에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점도 있고요.

이미 작년 모 액셀러레이터 대표의 구속 기소 보도가 쏟아졌으나, 무죄 선고를 받았던 전례를 보고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언론을 다 믿을 수는 없다는 불신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사안이 다릅니다.

ㄴ 부대표는 이미 법정 구속을 당한 상태고, 동부지법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를 거친 뒤 3심까지 가봐야 최종 결과가 나오겠지만, 법정에서는 일단 선고를 한 상황입니다.

이미지: Getty Images

다시 위의 한겨레 기사를 읽어보면 ‘뒤늦게 밝혀졌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일은 2016년 8월에 벌어진 일이고, 동부지법에서 ㄴ 부대표에게 징역을 선고한 것은 2달 전, 6월의 일입니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고 애써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평가를 했던 분들 중 온오프믹스의 경영진 중 한 명인 ㄴ 부대표가 1년 전의 일로 2개월 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이중잣대’라고 말합니다. 시쳇말로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도 하죠. 어떤 사람이든, 기업이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경중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지기도 하고,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때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잘못을 한 뒤 그에 따른 마땅한 사과, 혹은 책임일 겁니다.

이미지: Getty Images

스타트업은 기존의 경제 구조, 조직 체계 속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좀 서툴러 보이더라도 지지와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당장에 초라해보이고, 주먹구구식으로 보일지라도 저들이 만들어 낼 미래 가치에 물질적인 투자와 심적인 지지를 하는 것이겠죠.

태생적으로 혁신 DNA를 갖고 태어난 키워드이기에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 엄격한 잣대가 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기관, 대기업, 혹은 외국의 부조리한 일들에 분개해놓고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억울해하고, 애써 외면하는 것이야 말로 ‘카르텔’을 붙일 만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ps. 몇몇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급 시니어 투자자, 종사자들께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주시는 것에 남은 희망을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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