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상황과 감정에 맞게 대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외치는 말인가. 

착하게 살아야 하지만 착하게 살기 어려운 것처럼 사용자 감정에 맞게 대하라지만 실제로 사용자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며 대화하고, 글쓰기는 참으로 어렵다. 

한 증권 거래 서비스에 쌓이고 쌓인 짜증이 격분으로 바뀐 것은 내 감정을 대하는 직원들의 한결같은 조롱과 무관심 때문이다. 

 

 


 

 

ISA 계좌 개설을 하고 몇 가지 조건을 맞추면 상품권을 준다고 했다.

 

 

 

 

ISA 계좌 개설 전에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잔인하리만큼 어려운 금융 상품명과 그 특성을 시험 공부하듯 받아적으며 공부를 한다. 몇 달 지난 지금 다시 기억도 하지 못하는 복잡한 이름의 장기 절세형 상품들.. ISA, 퇴직연금, IRP. 상품의 차이를 메모지에 적어 가계부 앞에 붙여 놓았지만 거래할 때마다 그 메모지를 다시 뒤적인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이제 가입할 상품을 정하고 적절하게 액수를 분할하고 그 계좌에서 상품을 거래할 차례다. 평소 거래하던 증권사의 상품권 조건이 좋아 이 곳에서 ISA에 가입하기로 했다. 

 

 

 

 

잠깐 이 증권사 주식 거래 시스템을 이야기 해보자면 나의 시간과 감정을 잡아먹는 서비스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려운 설명, 찾기 힘든 메뉴, 이렇게 만들기도 힘들었겠다 싶을 정도로 복잡한 단계… 중복은 넘치는데 필요한 건 찾기 어렵다. 

어떠한 명료한 사인 없이 이 ETF는 여기에서 거래하고 저 ETF 는 저기에서 거래하고, 부속 조치들이 있는데 그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 목적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많은 이체는 다 어떻게 다른가, 사용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이체하나?

 

 

로그인 첫 화면. 내가 제일 보고 싶은 내 자산은 어디에서 봐야 하나

 

 

간단한 거래 하나 할 때도 단단히 마음을 무장하고 써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증권사로 쉽사리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해지하고 옮기기를 귀찮아하는 소위 ‘가둬진’ 고객인 탓이다.  

시스템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한 두 시간 헤매다 고객 센터에 전화하거나 지점을 찾아가기 벌써 여러 번이다. 절망하고 짜증이 난 나는 나를 상대하는 직원 또한 일상이 힘들고 아무 잘못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짜증 섞인 하소연을 하고 만다. 

 

 

“도대체 서비스가 왜이리 어려워요.” 

 

“쓰다 보면 어렵지 않아요”

 

쓰다 보면? 

얼마나 더 써야 할까? 

나는 한두 시간쯤 헤맨 것 갖고 참을성도 없이 투정부리고 있는가? 

어려운 학문을 달성하듯 이 서비스 사용법을 평생에 걸쳐 숙지해야 하나? 

 

정말 신기한 것은 풀다 풀다 못푼 암호를 들고 화난 상태에서 만난 서로 다른 직원 모두가 동일하게 답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실수하면 고객을 탓하기, 서비스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발뺌하기’ 이 내용이 고객 대응 매뉴얼에라도 있는 걸까? 서로 다른 답변들이 무섭게 일관성 있다. 그리고 이 때쯤 나의 짜증 게이지는 압력을 못이기고 터져나갈 것처럼 올라간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중개형 ISA에 가입할 거고, 어차피 가입할 것이니 이왕이면 상품권을 받고 싶다. 

글은 어렵고 또 어렵고, 조건은 복잡하고 또 복잡하지만 상품권을 받겠다는 나의 의지가 강하니 글을 꼼꼼히 읽고 조건을 충족시켜보자. 

 

 

상품권 지급 조건

 

 

내가 파악한 조건은 2+1이다. 

  1. 이벤트 신청월까지 순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거래하고
  2. 그 다음 달까지 잔액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 페이지로 다시 돌아와 이벤트 신청을 꼭! 하라. 이 조건을 만족시켰다고 확신하고서야 나는 가입 절차를 마쳤다. 

인생은 얄궂게도 시험볼 때는 모르는데 정답을 알고 나면 정답이 보인다

상품권을 받지 못한 것을 깨달은 나는 6개월이 지나서야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고객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해요. 

첫째는 필요 금액을 예치해야 하고요, 

둘째는 거래를 해야 해요. 

리고 잔고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벤트 신청을 하시구요.  

 

2+1이 아니라 3+1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고객님은 거래를 하지 않으셨어요”

“거래를 안했나요? 그렇게 분명한 조건이 있다면 제가 거래를 안했을 것 같지 않은데.. “

“2월에 신청하고 2월에 거래해야 했는데 고객님은 3월에 거래하셨어요.”

“2월까지 거래하라는 조건이 명기되었나요?”

“그럼요.”

 

이상하다. 분명히 조건을 만족시키려고 꼼꼼히 따져본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 봤을까. 3가지 조건이 이렇게 명확하다면 한 가지를 뭉터기로 빼어둘 리는 없는데… 그러나 지금은 이미 6개월이나 지난 시점..  정확히 기억할 리가 없다. 

 

“혹시 이 때 페이지가 남아 있나요? 제가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꼼꼼히 체크했거든요.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이번 달 이벤트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시죠.”

 

 

상품권 지급 조건

 

 

정답을 보니 정답이 보인다. 

정답을 알기 전에는 알 수 없던 답. 

 

내가 오해한 가지다

1. 번호 하나를 조건 하나로 오해했다. “기간 중 순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액 거래”는 “입금을 하고,” “금액을 거래하는” 두 가지 조건이지만 번호 하나로 표기되어 있어 한 가지 액션으로 파악했다. 

2. 거래 의미로 생각했다. ‘이체’도 ‘거래’의 하나로 생각했다.  

 

정답을 알고 나니 보이는 정답. 분명 내 실수다. 

명료한 글쓰기는 어렵다. 팀내에서 이 글을 내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검수를 거쳤을텐가.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공개되었을 리는 없다. 

명료한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난 유난히 이 서비스에서 실수를 자주 하는가. 실수하지 않는다 해도 찾아가면 간단히 해결할 일을 왜 앱을 붙들고 오랜 시간을 들이나?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데 이 정도의 문해력을 가진 사용자는 도저히 만족시킬래야 만족시킬 수 없는 극단의 범주에 속하는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엄연히 IT 업계 종사자다. 

이 쯤되니 허탈하다. 

 

“이렇게 써놓으시면 어떡해요. 3가지 조건이 아니라 2가지 조건으로 오해했잖아요.” 

“고객님은 이러이러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이벤트에 당첨되지 못하셨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글이 저렇게 써있어서 착각했잖아요.”

 

조용. 

 

“너무해요. 이 조건때문에 가입했는데.. “

 

내 감정이 극도로 치달은 건 이 순간이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책임을 지겠다는 차가운 답변. 

 

“그럼 이 글을 쓴 서비스 팀에 전달할까요?” 

 

고객 응대 매뉴얼을 보는 듯한 그 일관성과 또 마주한다. 

  • 고객이 실수하면 고객을 탓하기 
  • 서비스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발뺌하기

 

 

 

 

 

잘못 하나 없는 고객 센터 직원이 나의 화를 받아 내야 하는 극도의 감정 노동을 수행중이지만, 그걸 알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성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상 이해할 만하게 화내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그냥 실수해서 놓친 기회가 아쉬워서 화를 내기도, 남을 탓하기도 한다. 

자녀가 거슬리는 얼굴로 씩씩대는 상황을 따져 보면 대개 지 잘못이다. 그런데도 자기는 잘했다, 상대가 다 잘못했다 한다. 내가 대답한다. 

“그 사람이 이러이러해서 그렇게 행동한거야. 너는 이렇게 이렇게 잘못했고” 

자녀가 100프로 비합리적이고 내가 100프로 합리적이라 해도 이 대화의 끝은 대개 파국이다. 분명히 잘못했지만,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니 그렇구나.. 속상하겠구나… 억울했구나… 때로는 도저히 공감이 안된다. 이럴 때는 나도 사고가 불가능하다.  

그저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니가 이렇게 했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감정이 넘쳐 흐를 때 잠시 마비된 이성이 공감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스스로 이성을 회복하고 잘못을 깨닫는 일상이 돌아온다. 

“미안해. 엄마”

“고마워. 엄마” 

공감해주면 애를 망치는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찾더라. 

 

이 서비스는 나의 실수에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다만 사용자를 만나는 접점에서 정답이나 해결책을 차갑게 지적하는 대신  그저 내 감정을 알아줬다면 나는 지금 이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랬군요.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애쓰셨는데 누락되서 속상하시겠네요. 

정말 혼동할 만했네요…

 

 


 

 

사람은 서비스나 기업과 상호 작용하면서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것과 동일하게 느낀다는 것을 이 서비스를 통해 깊이 깨닫는다. 이 증권사는 자꾸 나의 잘못을 들쑤신다. 맞는 말인데.. 듣기 싫다. 

싸질러 놓은 자식들 때문에 악연을 이어가고 있지만 나는 안다. 우리의 미래는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이 증권사에 질릴대로 질린 나는 ‘잘 바꾸지 않는 충성도 높은 보수적인 성향’의 사용자 속성에도 불구하고 사용성 좋은 증권사 앱을 깔고 새로운 거래는 새로운 곳에서 한다. 

 

불분명한 글과 고객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대응으로 서비스는 무엇을 잃었을까

 

글이 좋았다면

  • 잃지 않았을 고객
  • 잃지 않았을 고객의 투자금
  • 고객이 목적을 잘 끝내서 줄어들었을 문의
  • 분노한 고객들의 토로를 받지 않아 덜 힘들었을 고객 센터 직원

 

피치 못할 상황에서 고객의 감정에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 누구러들었을 고객의 감정
  • 급기야 폭발한 고객으로 인해 이런 글이 노출되지 않아 유지했을 브랜드 이미지 

 

좋은 글은 

 

  • 존재감이 없다. 
  •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 좋다 나쁘다의 판단이 들지 않는다. 

 

나쁜 글은 

 

  • 생각하게 만든다. 
  • 실수를 낳는다. 
  • 존재감이 무지막지하다. 서비스탓을 하다, 이해못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 끝은 작은 갈등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UX Writing Lab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