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비자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정체성 소비자(자기표현을 위해 소비하는 주체)에 머물지 않고, 기술과 융합된 포스트휴먼 소비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이행은 소비 행태, 윤리적 쟁점, 그리고 주체성의 재정의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과거부터 소비 행위는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서 자아 표현과 정체성 형성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윌리엄 제임스 이래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고 보았으며, 소비자 행동 연구자 러셀 벨크는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무엇인지를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개인의 소지품과 소비 선택은 가치관과 개성을 반영하며, 특히 현대 MZ세대의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이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강력한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정체성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서사화하고 강화한다.

친환경 소비자원 이용도, 환경 파괴도 최소화하는 소비
돈쭐내기선행 베푼 업주나 업체에 적극적으로 소비
제로웨이스트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쓰레기 소비 최소화
불매운동특정한 국가나 브랜드의 제품을 사지 않는 것
요노불필요한 소비 줄이고 하나만 구매하는 것
실제 ‘미닝 아웃’ 사례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주체로 간주되었던 인간관은 포스트휴머니즘의 등장으로 비판받으며 인간, 기계,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존재론이 모색된다.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가 되었다”고 선언하며, 기술과 뒤얽힌 혼종적 주체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해러웨이에 따르면 현대의 인간은 스마트폰, 인터넷 등 다양한 기술과 이미 긴밀히 결합되어 있으며, 인간과 도구 사이의 경계는 흐려져 인간 주체는 기술 네트워크의 한 노드(node)로 이해된다. 캐서린 헤일스 역시 포스트휴먼 주체를 “인간과 기술적 기계의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된 합체”로 파악하며, 신체에 기계 장치를 붙였는지 여부보다 주체성이 기술 매개를 통해 재구성되는 방식이 포스트휴먼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포스트휴먼 시대에 개인은 인터넷과 IoT 기기 등을 통해 방대한 디지털데이터의 집합체, 즉 “데이터 주체(data subject)”가 되었다. 질 들뢰즈는 개인이 더 이상 불가분의 단일체(individual)가 아니라 여러 데이터 조각들로 분절되는 “디비듀얼(dividual)”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제 현대인의 정체성은 신용점수, 검색 기록, SNS ‘좋아요’ 등 수많은 데이터 점수와 지표들의 묶음으로 파편화된다. 이러한 데이터 조각들은 기업과 기관에 의해 수집·분석되어 개인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된다.

 

심지어 심리학 및 철학 분야에서는 개인의 인식과 선호, 감정 패턴까지 AI의 피드백에 의해 형성되는 “알고리즘적 자아(algorithmic self)”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많은 이들이 스포티파이 연말결산(Spotify Wrapped)을 보며 “스포티파이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느끼는 것처럼,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거울을 넘어 우리 자신을 빚어내는 주형(鑄型)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 정체성 소비자에서 포스트휴먼 소비자로 변모함과 동시에, 소비결정 과정은 자기표현 소비에서 추천 소비로 변모했다. 과거의 정체성 소비자는 자신의 의지와 취향에 따라 상품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각종 플랫폼의 알고리즘 추천이 먼저 개인화된 선택지를 제시한다. 예컨대 넷플릭스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향 저격” 영화를 추천하고,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자동으로 선곡한다. 소비자는 주체적으로 상품을 고르는 역할에서, 알고리즘이 제공한 옵션 중에 선택하는 쪽으로 행동 양식이 이동했으며, 이는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기술과 공동진행(co-creation)됨을 의미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의 부상은 소비 행태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소비자의 취향은 더 이상 내면에서 우러나온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선별하여 노출한 정보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된다.다시 말해, 오늘날 소비자는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소비하는 동시에, 소비를 통해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이중적 과정을 거친다. 자기표현 소비자는 점차 알고리즘 친화적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으며, 취향의 형성과 소비 결정권을 기술과 공동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행은 곧 기술 의존적 소비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현대인은 추천 알고리즘 없이는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기 어렵고,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된 쇼핑 서비스가 건강 데이터에 따라 보충제를 추천하거나, 스마트 냉장고가 식료품을 자동으로 주문하는 등 소비자의 결정 행위 일부가 기계에 위임되고 있다. 나아가 자동화된 소비 에이전트의 등장은 포스트휴먼 소비의 특징적인면모로, 하버드 법학저널에 소개된 “알고리즘 소비자” 개념처럼 인간을 대신해 거래를 수행하는 디지털 비서들이 등장하고 있다. AI 비서가 사용자의 선호 데이터를 축적해 최적의 상품을 찾아 구매까지 완료해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며, 소비자는 최종 소비행위까지 기계와 협업하거나 기계에 대행시키는 포스트휴먼적 양상을 보인다.

 

이행의 중간 단계에서 소비자는 능동적 결정자에서 피동적 수용자로 변모하는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술을 확장된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 넷플릭스 추천을 통해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는 등 새로운 능동성을 얻기도 한다. 즉, 포스트휴먼 소비자는 기술 의존으로 인한 자율성 감소와 경험 세계 확장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정체성 소비자포스트휴먼 소비자
자기표현 중심 소비알고리즘과 데이터 기반 소비
자율적 선택 강조추천 시스템 및 자동화 의존
개인의 취향과 신념 반영플랫폼이 형성한 취향 반영
소비를 통한 사회적 이미지 관리데이터 주체로서 파편화된 정체성
능동적 상품 탐색플랫폼 제공 옵션 수용

AI 알고리즘은 가격 결정과 마케팅에도 활용되어,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맞춤형 상거래 경험을 만들어낸다.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은 빅데이터 기반의 동적 가격조정(dynamic pricing) 알고리즘을 사용하며, 소비자는 보이지 않는 AI 에이전트들이 가격, 노출 순서 등을 미세 조정하여 소비를 유도하고 있음을 인식하기 어렵다. 또한 “알렉사, 치약 다시 주문해줘”처럼 챗봇과 음성비서 같은 AI인터페이스의 보급은 소비자가 AI에게 명령을 내리고 결과만 확인하는 식으로 중 간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하게 한다.

 

AI의 위력은 인터넷과 IoT 기기를 통해 축적된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 즉 빅데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기업은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클릭스트림, 위치 정보, 구매 이력 등의 데이터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하여 개인별 맞춤 인사이트를 얻는다. 이러한 미시 데이터들은 AI 알고리즘에 의해 패턴으로 묶여 개인별 소비 성향 프로필이 되며, 이를 토대로 플랫폼은 높은 확률의 예측적 마케팅을 실행한다.

 

빅데이터의 힘으로 소비자는 점점 더 정교하게 세분화된 타겟이 되었는데, 이는 개인의 행동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조종 가능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슐로보 교수는 이 현상을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 명명하며, 기업들이 축적한 데이터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변형함으로써 개인 자율(autonomy)의 영역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자 여러분들도 최근 경험했을 카카오톡 개편이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이미지로 카카오톡 친구탭 화면에 나타난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 abacus.ai

한편, AI 비서와 챗봇 등의 발전으로 소비 주체는 에이전트화(agentic)되고 있다. 카카오가 선보인 AI 에이전트 ‘카나나(Kanana)’는 사용자의 채팅 대화를 분석해 필요한 순간 먼저 말을 걸어주는 AI로 소개되었다. 이는 소비자가 요청을 기다리는 수동적 고객이 아니라, AI가 함께 참여하여 삶을 설계하는 능동적 에이전로 간주됨을 의미한다. 플랫폼은 “당신을 위해 미리 알아서 처리해주는 비서”를 붙여줌으로써, 포스트휴먼 소비자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디지털 에이전트의 군집과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는 하이브리드 주체로 기능하게 된다.

 

 


 

 

AI, 빅데이터, IoT,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요인들은 소비자 주체의 외연과 능력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내적 자율성과 경계를 변형시키고 있다. 소비자는 편의성과 맞춤형 혜택을 얻었지만, 동시에 의존성과 투명성 상실이라는 대가도 치르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윤리적 쟁점과 직결된다.

 

포스트휴먼 소비 주체의 등장은 우선 프라이버시와 감시 문제를 부각시켰다. AI 추천이나 IoT 자동 주문을 위해서는 개인 동의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소비자를 상시적 감시 상태로 몰아넣어 인간 존엄성과 자유의 관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알고리즘이 범죄자 재범 위험 예측이나 신용평가 등을 할 때, 훈련 데이터에 내재된 인종적/사회적 편향이 차별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이터 주체의 권리(the right of data subject) 보장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아울러, 정체성 소비자에서 포스트휴먼 소비자로의 전환은 “누가 주체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 주체를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이고 분산된 자아로 보지만, 대부분의 선택을 알고리즘이 대신하고 인간은 주어진 옵션을 승인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면 인간 고유의 판단력과 개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포스트휴먼 소비 주체의 등장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의 행위주체성(agency)을 어디까지 기계와 공유할 것인가? 그리고 공유 이후에도 인간이 주인으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 이는 단지 소비 분야를 넘어서 민주주의, 문화, 인간관 전반에 파장을 미칠 이슈다.

 

또한, 한국과 글로벌 플랫폼 사례는 이러한 이행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한국의 네이버는 AI 추천 시스템 ‘에어스(AiRS)’를 뉴스 서비스에 도입하며 개인화 소비 경험을 높였지만, 개인정보 활용 논란으로 알고리즘 투명성 제고 및 이용자 선택권 부여를 시도했다. 카카오는 AI 챗봇 ‘카나나’를 통해 카카오톡 대화 맥락을 분석하여 능동적인 제안을 던지는 등 소비자의 생활 세계를 기술이 매끄럽게 관통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인 유튜브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이용자의 시청 이력 등을 종합 분석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동영상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필터 버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AI 추천 엔진과 음성비서 ‘알렉사’를 통해 구매 행위의 의식적 개입을 축소시키는 자동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시청 패턴 분석은 물론, 콘텐츠 포스터 이미지까지 개인별로 다르게 노출하여 클릭을 유도하며, 빅데이터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까지 이끌어내 “데이터 드리븐 콘텐츠” 시대를 열었다. 이들 사례는 소비자를 편리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이드에 의존하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정체성 소비자에서 포스트휴먼 소비자로의 이행은 기술 진화와 소비문화 변화가 맞물린 필연적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에게 전례 없는 편의성과 풍요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반면, 자율성과 주체성, 그리고 윤리적 문제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앞으로 AI와 알고리즘은 더욱 고도화되어 소비자 개개인에 밀착된 “디지털 분신”처럼 기능하며 예측 소비(predictive consumption)를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우리는 기술에 주도되지 않고 기술과 공존하며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포스트휴먼 소비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소비자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 제고,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강화, 개인정보 보호 및 AI 윤리 가이드라인 수립과 같은 정책 및 규범 정비, 그리고 기술이 우리의 욕망과 정체성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가능하다. 이 외에도 발생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예상하여 반드시 미리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이중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경우 미래 인류는 예기치 않은 혼란과 부정적인 결과물로 혼돈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Gil Park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