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에서 AI에 쏟아지는 돈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2025년 하반기, 단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 규모가 실감 난다. AI 업계의 선두 주자 오픈AI가 연달아 성사시킨 거래들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0GW 규모의 AI 시스템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이어서 AMD와는 6GW 규모 칩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번에는 오픈AI가 AMD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옵션까지 받았다.

 

그리고 9월에는 오라클과 5년간 3,000억 달러어치 클라우드 컴퓨팅 용량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월 13일에는 브로드컴과 10GW에 달하는 맞춤형 AI 칩 공동 개발 계약을 맺었다. 발표 당일 브로드컴 주가는 10% 넘게 폭등했고,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500억 달러 이상 불어났다. 오픈AI가 한 해 동안 체결한 계약 규모는 약 1조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1,400조 원이다. 한국의 2025년도 확정 예산 규모가 약 673조 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한 기업이 한 해 체결한 계약 규모가 대한민국 국가 예산 2년 치를 넘어선 셈이다.

 

이것은 오픈A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글은 2024년 한 해에만 AI 인프라에 750억 달러를 투자했고, 2025년에는 그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다. 메타는 인재 확보에 천문학적 돈을 투자하고 있다. 우수한 AI 인재에게 수천만 달러 수준의 연봉을 제안하고 있으며, 스케일AI의 CEO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을 영입하기 위해, 그의 회사에 약 143억 달러를 투자하며 49% 지분을 확보했다. 인재 영입을 위해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전무후무한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마존도 AI에 막대한 자금을 쏟고 있다.

 

AI와 관련된 좋은 뉴스만 나오면 주가는 폭등한다. 엔비디아는 AI 붐에 힘입어 2020년 7월 기준 시가총액 2,320억 달러에서 2025년 10월, 4.45조 달러를 기록하며 불과 5년 만에 약 19배 가까이 성장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으며,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한 기업이라는 영광도 차지하였다.

 

2025년 10월을 기준으로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국영 기업 아람코를 제외하고 9개 기업이 모두 AI를 핵심 사업으로 삼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테슬라는 물론 최근 오픈AI와 협력 계약을 발표한 브로드컴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자주 언급했던 AI 기업인 팔란티어 역시 2023년 초 대비 10배 가까이 주가가 상승하며, 약 4,200억 달러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20위권에 안착했음은 물론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 / 출처 : Hibuz

 

 

자본주의 시대, 돈은 가장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곳으로 몰린다. 지금 그곳은 AI다. 이미 폭주 기관차가 되어버린 이 흐름을 이제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무리 AI 윤리를 외치고 규제를 논의해도, 수조 달러의 자본이 걸린 이 경주에서 어느 누구도 선뜻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다. 특히 AI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술이 되어버린 지금, 이 경쟁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생존 경쟁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오픈AI가 2025년 하반기에 체결한 계약들을 살펴보면 돈을 쏟아붓는 당사자들이 서로 긴밀히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엔비디아는 오픈AI에 거금을 투자하고, 오픈AI는 그 돈으로 다시 엔비디아의 고가 GPU 시스템을 구매한다. 오픈AI가 약속한 오라클 클라우드 사용료도 결국 엔비디아 GPU가 장착된 인프라 구축에 쓰인다. AMD와의 계약에서는 오픈AI가 AMD 주식 매입권을 받아 두 회사의 이해관계를 묶어놓았다. 실제로 AMD 계약 발표 후 AMD 주가가 하루 만에 20% 넘게 뛰었다. 오픈AI 입장에서는 자신이 던진 호재로 공급업체 주가를 띄우고 그 이득을 공유하는 구조다.

 

블룸버그를 비롯한 언론들은 이러한 거대 자본 흐름을 두고 서로를 향해 돈이 빙글빙글 도는 순환 구조라고 지적했다. 투자금이 고객사로 흘러 들어갔다가 다시 공급업체 매출로 돌아오고, 그로 인해 오르는 주가가 또 투자사에 이익으로 돌아온다. 서로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다단계 투자 구조처럼 보인다는 비판이다.

 

 

출처 : nextbigfuture.com

 

 

이런 순환 투자 열풍은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스코나 노텔 같은 통신 장비 업체들은 고객사인 통신사들에게 거액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사 장비를 사도록 하는,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에 나섰다. 하지만 거품이 붕괴한 후 고객사들이 파산하자 빌려준 돈은 부실채권으로 남았고, 시스코는 주가가 80% 폭락하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현재의 AI 열풍에서도 유사한 조짐이 보인다는 의견이 있다. 엔비디아의 투자와 오픈AI의 구매 약속, 오라클의 외상 판매와 미래 수익 기대. 모두 선순환이 지속될 때만 말이 된다. 한 고리가 무너지면 연쇄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주가는 상승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AI 버블이 머지않아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었다.

 

 

출처 : 최재운님 브런치

 

 

AI 버블이 터질지 안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AI 투자가 과열 양상을 보인다며 조정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이것이 버블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혁명의 시작이며, AI가 장기적으로는 S&P500 시가총액을 약 29%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누구는 버블을, 누구는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사실 누구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교훈이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무너지며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사라졌다.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나스닥 지수는 약 77% 폭락했고, 5조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하지만 인터넷 산업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버블을 제거하며 내실을 다진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이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났고,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AI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버블이 터진다 해도 AI 기술 자체의 발전과 AI 시대의 도래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과열된 투자가 정리되면서 진짜 가치 있는 기술과 기업만 살아남아 더 견고한 AI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닷컴 버블 때와 다른 점이 있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는 기업도 인터넷 기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승 열차를 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엔비디아,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같은 기업들이 놀라운 AI 솔루션을 계속해서 발표하며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버블을 경고한 골드만삭스 역시 AI 투자 열풍이 과거 닷컴 버블과 유사한 확장 국면에 진입했지만, 아직 ‘거품 폭발(bubble burst)’ 단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AI라는 기차의 질주가 계속해서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최재운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