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는 어떻게 디자인업계 표준이 되었나?
피그마는 2012년 브라운 대학교에서 만난 딜런 필드(Dylan Field)와 에반 월리스(Evan Wallace)가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틸 펠로우십(Thiel Fellowship)’ 지원금 10만 달러를 받으며 시작됐다. 초기에는 드론 소프트웨어나 밈 생성기 같은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이들이 주목한 것은 당시 막 부상하던 브라우저 기술 ‘WebGL’이었다. 딜런 필드는 “디자인이 프로덕트 협업의 중심에 있음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를 발견했고, WebGL을 활용해 ‘브라우저 안의 포토샵’이자 ‘디자인을 위한 Google Docs’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디자이너를 위한 온라인 협업툴로 그 기반을 시작한 것이다.

피그마가 시장에 진입할 당시, 업계는 스케치(Sketch)와 어도비(Adobe)가 양분하고 있었다. 스케치는 강력한 벡터 편집 기능으로 UI 디자인의 강자로 군림했지만, ‘Mac-only’라는 치명적인 태생적 한계를 가졌다. 이는 윈도우 OS를 사용하는 개발자나 기획자(PM)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으며, 디자인 작업을 조직의 사일로(silo)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도비 XD는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했지만, 피그마가 2016년 정식 출시하며 선보인 클라우드 네이티브 기반의 원활한 ‘실시간 협업(Real-time Collaboration)’ 경험을 따라잡지 못했다. 스케치와 어도비가 뒤늦게 협업 기능을 추가했지만, 이는 태생부터 협업을 전제로 아키텍처를 설계한 피그마의 본질적인 접근성을 능가할 수 없었다. 결국 ‘접근성’이 ‘기능’을 이긴 것이다.

피그마가 진정으로 업계 표준(Industry Standard)의 지위를 굳힌 것은 ‘오토 레이아웃(Auto Layout)’과 ‘베리언트(Variants)’ 기능의 등장이었다. 이 기능들은 디자인 작업을 단순한 ‘그리기(Drawing)’의 영역에서 엔지니어링과 같은 ‘구축(Building)’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디자이너들은 반응형 UI를 손쉽게 구현하고, 버튼의 hover, active, disabled와 같은 복잡한 컴포넌트 상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확장 가능하고 일관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2022년, 어도비가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피그마 인수를 시도한 것은 피그마의 완전한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어도비가 이미 XD를 가지고 있었지만 인수를 시도한 것은 피그마가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 인수는 세계 규제 당국의 강력한 반독점 압력으로 이 인수는 최종 무산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무산은 피그마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피그마는 어도비로부터 10억 달러라는 막대한 현금 위약금(Termination Fee)을 확보했다. 이 자금은 피그마가 어도비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히려 어도비가 가장 두려워할 ‘AI’와 ‘플랫폼 확장’에 올인할 수 있는 강력한 ‘시드 머니’가 되었다.
AI 도구로 업데이트된 피그마
어도비와의 결별 이후, 피그마는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AI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Config 2024와 2025에서 연이어 공개된 피그마의 AI 기능들은, 디자인 툴의 역할을 ‘보조’에서 ‘생성’으로, ‘실행’에서 ‘자동화’로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피그마의 AI는 단순히 디자이너의 작업을 돕는 것을 넘어 ‘첫 번째 초안’을 생성하고 ‘최종 결과물’까지 퍼블리싱하는 디자인 도구로 발전했다.

가장 주목받는 기능은 ‘피그마 메이크(Figma Make)’다. Config 2025에서 오픈 베타로 공개된 이 기능은 강력한 ‘프롬프트-투-코드(Prompt-to-Code)’ 도구다. 이는 Anthropic의 최신 AI 모델인 Claude 3.7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사용자가 “반려동물용품점을 위한 제품 캐러셀” 또는 “로그인 폼을 만들어줘”와 같은 자연어 프롬프트를 입력하거나, 기존의 정적 디자인 파일을 첨부하면, Make는 단순한 UI 이미지를 넘어 즉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Working Prototype)’을 생성한다. 여기에는 컴포넌트의 상태 변화, 화면 간의 상호작용, 사용자 흐름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는 디자이너가 수동으로 수십, 수백 개의 프레임을 연결하며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지루하고 반복적인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시킨다.

두 번째 혁신은 ‘피그마 사이트(Figma Sites)’다. 이 기능은 디자이너가 피그마 캔버스에서 완성한 디자인을 별도의 코딩 과정 없이 즉시 ‘반응형 라이브 웹사이트’로 게시(Publish)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그동안 Framer, Webflow, Wix, Squarespace 등이 장악하고 있던 노코드(No-code) 웹사이트 빌더 시장에 대한 피그마의 정면 도전이다. 디자이너는 이제 툴을 벗어나지 않고도 자신의 디자인을 실제 작동하는 웹사이트라는 최종 결과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핵심 기능은 ‘피그마 버즈(Figma Buzz)’다. 이는 브랜드 및 마케팅팀을 위한 대량 에셋 생성 도구다. 디자이너가 먼저 브랜드 가이드라인(색상, 로고, 폰트)과 핵심 템플릿을 설정해두면, 마케터나 비디자이너도 이 템플릿을 기반으로 수백 가지의 소셜 미디어 포스트, 광고 배너, 썸네일 등의 변형 에셋을 즉시 생성할 수 있다. 특히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를 연동하여 각기 다른 문구와 이미지를 가진 수천 개의 배너를 일괄 생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Buzz에는 AI 이미지 생성, 배경 제거, 텍스트 자동 수정 기능까지 내장되어 있어, 마케팅 캠페인에 필요한 반복적인 디자인 작업을 극적으로 줄여준다.
UI 디자인을 넘어 통합 디자인 플랫폼이 되다.
피그마의 AI 전략은 명확하다. Make, Sites, Buzz는 UI/UX 디자이너라는 기존 고객층을 넘어, 아이디어 검증이 필요한 PM과 창업가(Make), 웹사이트가 필요한 프리랜서와 소규모 비즈니스(Sites), 대량의 콘텐츠가 필요한 마케팅팀(Buzz)까지 사용자로 끌어들이는 ‘대확장’ 전략이다. 동시에 First Draft와 같은 기능들은 디자이너의 역할이 픽셀을 찍는 ‘실행자’에서 AI의 결과물을 검토하고 지시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상향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피그마는 ‘디자이너의 툴’에서 ‘모든 창작자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피그마는 ‘FigJam’과 ‘Dev Mode’를 통해 디자인 프로세스의 양 끝을 장악했다. ‘FigJam’은 Miro나 Mural과 경쟁하는 디지털 화이트보드 툴이다. 브레인스토밍, 사용자 여정 맵핑, 와이어프레이밍 등 디자인 이전 단계의 모든 아이디에이션 과정을 피그마 생태계 안으로 흡수했다. 반대편 끝에 있는 ‘Dev Mode’는 Zeplin과 같은 기존 핸드오프 툴을 대체한다. 개발자가 디자인을 코드로 변환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하고 ‘Ready for Dev’ 뷰 등을 제공하여 디자인과 개발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FigJam(아이디어) -> Figma Design(설계) -> Dev Mode(구현)’로 이어지는 이 파이프라인은, 제품 개발팀이 피그마라는 단일 플랫폼을 벗어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강력한 수직 계열화 전략이다.

또한 피그마는 ‘AI 허브’가 되고 있다. 모든 AI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최고의 AI 모델을 자사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통합한다. ‘Make’ 기능이 Anthropic의 Claude로 구동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글 나노바나나 모델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이미지 생성이 되고 있다. 나아가 ServiceNow와의 전략적 협업은 피그마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공략을 보여준다. 이 협업을 통해, 피그마에서 디자인된 화면이 ServiceNow의 AI 플랫폼을 거쳐 즉시 ‘보안과 확장이 보장된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동 생성된다. 이는 디자인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즉시 배포 가능한 비즈니스 자산이 됨을 의미한다.

피그마의 미래 전략에서 최근 가장 중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2025년 10월에 발표된 이스라엘 AI 스타트업 ‘Weavy’ 인수다. 약 2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딜은, 피그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Weavy는 ‘Figma Weave’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되었으며, 피그마의 AI 전략이 나아갈 다음 단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Weave의 핵심 기술은 ‘노드 기반(Node-based) 캔버스’다. 기존 AI 툴이 단일 프롬프트에 의존했다면, Weave는 디자이너가 여러 AI 모델과 편집 도구를 ‘노드’라는 블록으로 시각적으로 ‘연결’하여 복잡하고 반복 가능한 AI 워크플로우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한다.
디자이너는 AI의 작동 방식을 시각적으로 설계하고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신제품 이미지를 받아, 배경을 제거하고, 3가지 다른 스타일의 광고 카피를 AI로 생성한 뒤, 이들을 5가지 다른 템플릿에 자동으로 합성하여 총 15개의 광고 배너를 생성하는” 자동화 ‘머신’을 노드로 구축할 수 있다. Weavy 인수는 피그마가 단순한 AI 기능 ‘사용’을 넘어, AI ‘워크플로우 자동화’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겠다는 전략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디자이너라면, 이제 피그마는 필수입니다
피그마가 주도하는 AI 혁신은 디자이너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역할을 ‘반복적인 시각물 작업자’에서 ‘전략적인 철학가’이자 ‘시스템 설계자’로 격상시키고 있다. AI는 반복적인 디자인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디자이너를 해방시키고, ‘왜(Why)’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사용자 공감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강제한다.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가치는 단순히 예쁜 화면을 그리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AI가 생성한 건조한 요약이나 피상적인 결과물을 넘어, 사용자의 진짜 문제를 꿰뚫는 핵심 통찰을 발견하고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비판적 사고’가 디자이너의 새로운 핵심 역량이 된다.
과거의 디자인 툴은 디자이너가 ‘선택’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피그마는 아이디에이션(FigJam)부터, 디자인(Design), 마케팅(Buzz), 웹 퍼블리싱(Sites), 개발(Dev Mode),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AI(Make, Weave)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통합 환경(Environment)’ 그 자체가 되었다. AI 시대에 이 환경을 벗어나 효율적으로 작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피그마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AI 도구 중심으로 피그마를 학습하고 AI 디자이너 자격증도 취득하고 싶다면?
유훈식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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