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베를린.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이 시기, 도시 곳곳에서는 또 다른 영화 시장이 펼쳐집니다. 바로 유러피안 필름 마켓(European Film Market, EFM)입니다.
영화제가 작품을 ‘선정’하고 ‘상영’하는 곳이라면, 필름마켓은 영화를 ‘사고파는’ 곳입니다. 전 세계 배급사, 제작사, 세일즈 에이전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 계약을 논의하고, 향후 1년의 라인업을 구상합니다. 한국에서 개봉할 해외 영화의 상당수 역시 이곳에서 결정됩니다.
1부에서 살펴본 세 가지 유형의 영화 수입배급사 모두 필름마켓에 모입니다. 정통파는 오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거래를 이어가고, 크로스오버형은 특정 장르와 지역에 집중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뉴웨이브는 데이터와 시장 반응을 토대로 보다 계산된 판단을 내립니다.
2부에서는 베를린 필름마켓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들을 바탕으로, 영화 한 편이 어떻게 ‘발굴’되고 한국까지 오게 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로피우스-바우, 영화 거래의 중심


베를린 필름마켓의 심장부는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입니다. 19세기에 미술관으로 지어진 이 역사적인 건물은 필름마켓 기간 동안 국가별 파빌리온과 세일즈사 부스로 가득 찹니다.
1층과 2층을 가득 메운 부스들. 각 세일즈사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영화의 포스터와 스틸 이미지를 전시하고, 사전에 미팅을 신청한 바이어들을 맞이합니다. 거래 대상이 영화일 뿐, 가격을 묻고 정보를 파악하고 거래를 약속하는 전체 프로세스는 일반 상품 거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바이어들의 하루 일정은 빡빡합니다. 적게는 2-3개, 많게는 5개 이상의 미팅이 하루 종일 이어집니다. 한 미팅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며, 그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생각보다 직설적입니다.
세일즈사가 영화의 줄거리, 감독과 배우 정보, 영화제 수상 이력을 소개하면, 바이어는 곧바로 핵심을 묻습니다. “MG는 얼마를 생각하고 계세요?” “한국 개봉은 언제쯤 가능한가요?”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경쟁 상황도 중요합니다. 같은 영화에 여러 한국 수입사가 관심을 보이면 MG(Minimum Guarantee, 최소보증금)가 올라가고, 반대로 반응이 미지근하면 협상 여지가 생깁니다. 세일즈사는 “아직 한국 권리는 열려있어요. 하지만 다른 바이어들도 관심 보이고 있어서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은근히 압박을 넣기도 합니다.
스크리닝: 영화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
필름마켓에서 바이어가 영화를 선택하는 과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한 세일즈사 미팅에서 예고편과 자료를 보고 판단하거나, 실제 영화를 스크리닝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스크리닝은 그로피우스 바우를 포함한 베를린 영화제 상영관들에서 열립니다. 일반 영화제 관객이 아닌, 바이어 뱃지를 소지하거나 사전에 세일즈사와의 컨택을 통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이어들만 스크리닝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는 영화들의 경우에는 선착순으로 좌석이 마감되기도 합니다.
바이어들은 스크리너로 영화를 보고, 관심 있는 영화는 세일즈사 미팅이나 추후 이메일로 관심을 표시하며 거래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밟습니다.
수입사는 무엇을 보는가

필름마켓에서 수입사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 요소가 얽혀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영화’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1. 한국 시장 적합성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이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먹힐 것인가?”입니다. 장르, 주제, 러닝타임, 비주얼 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영화제 수상 이력이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2. 플랫폼 성격
극장 개봉용인지, OTT 직행인지, 아니면 둘 다 가능한지를 판단합니다. 극장 개봉의 경우 스크린 수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단관 상영인지 멀티플렉스 확장이 가능한지도 함께 고려됩니다.
3. 마케팅 가능성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마케팅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으면 배급이 어렵습니다. 영화제 수상? 유명 배우? 화제가 된 원작? 독특한 비주얼?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 ‘한 줄 소개‘가 만들어지는 영화인지가 중요합니다.
4. 가격 적정성
세일즈사에서 제시하는 MG가 적절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MG와 P&A 예산을 합치면 작은 영화라도 수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5. 제작 단계
필름마켓에서는 완성된 작품만 거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이거나, 심지어 프리 프로덕션 단계인 영화들도 거래 대상입니다. 괜찮은 작품이라면, 동시에 여러 수입사들이 오퍼를 제시하고, 세일즈사에서 그간의 거래 이력이나 계약 조건을 따져 최종 거래처를 결정합니다.
계약 이후의 여정
필름마켓에서 계약이 성사되면, 실제 개봉까지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1. 계약 및 권리 확보
먼저 MG를 지불하고 한국 내 배급권을 확보합니다. 극장, OTT, 홈비디오 등 모든 채널의 권리를 사기도 하지만, 예산에 따라 극장 상영권만 따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딜 메모를 작성한 뒤 본 계약서를 체결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2. DCP 파일 수급 및 한글 자막 작업
디지털 시대에는 DCP(Digital Cinema Package)라는 고용량 파일로 영화를 수급합니다. 50GB에서 수백GB에 이르는 파일이라 물리 매체(HDD나 플래시메모리)로 전달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글 자막 작업도 이 단계에서 함께 진행됩니다.
3. 등급 분류 신청 및 개봉 준비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영화를 제출하고 상영 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높은 등급을 받거나, 일부 장면의 수정을 요구받을 수도 있습니다. 배급 계획이 통째로 바뀌는 경우도 생깁니다.
등급이 확정되면 본격적으로 개봉 시기를 결정합니다. 경쟁작, 시즌, 타깃 관객을 고려해 최적의 타이밍을 찾는 과정입니다.
4. P&A 집행
예고편 제작, 포스터 디자인, SNS 바이럴, 시사회 운영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개봉 2-3개월 전부터 준비하지만, 실제 집중 홍보는 개봉 2-3주 전에 이루어집니다. 이 부분이 바로 3부에서 다룰 핵심 주제입니다.
다시 한 번, 결국 중요한 건 ‘P&A’입니다
베를린 필름마켓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가장 큰 점은, 영화 거래가 생각보다 ‘비즈니스’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영화를 얼마에 사서, 얼마를 들여 마케팅하고, 얼마를 벌 수 있는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1부에서 언급한 ‘뉴웨이브’의 등장이 자연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필름마켓에 가면 누구나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정보의 접근성이 평준화된 지금, 배급사를 구분하는 건 ‘선택한 영화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하느냐’입니다. 그 핵심이 바로 P&A입니다.
3부에서는 발굴된 영화를 극장으로 이끄는 P&A에 집중합니다. 전통적인 홍보와 디지털 마케팅은 어떻게 다른지, 데이터 기반 접근이 영화 배급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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