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필마트 행사장 로고 ⓒ 모비인사이드

 

 

매년 3월, 빅토리아 하버가 내려다보이는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 전 세계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듭니다. 국가별 파빌리온이 들어서고, 부스마다 미팅 일정이 빼곡히 채워집니다. 바로 홍콩 국제 영화·TV 마켓, ‘필마트(FILMART)’ 입니다. 영화제 기간에 맞춰 열리는 행사처럼 보이지만, 필마트는 영화제와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레드카펫도, 시상식도 없습니다. 대신 협상 테이블이 있고, 계약서가 있고, 수천 건의 비즈니스 미팅이 있습니다. 이곳은 콘텐츠 산업의 화려한 이면이 아니라, 그 산업을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엔진에 가깝습니다.

 

 


 

 

필마트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중요한가

 

 

사진: 필마트 내부 ⓒ 모비인사이드

 

 

필마트의 정식 명칭은 홍콩 국제 영화·TV 마켓(Hong Kong International Film & TV Market)입니다. 1997년 처음 시작된 이후 꾸준히 성장해, 현재는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800개가 넘는 업체가 참가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콘텐츠 마켓이 되었습니다.

 

거래 대상은 영화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드라마 시리즈, OTT 오리지널, 포맷,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웹툰 IP까지 콘텐츠 산업 전반을 아우릅니다. 완성된 작품만 거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제작 중이거나 기획 단계인 프로젝트도 테이블 위에 오릅니다. 충분히 매력적인 IP라면 완성 전에 계약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콘텐츠 산업의 흐름으로 보면, 필마트는 제작과 소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합니다. 제작사는 완성됐거나 기획 중인 작품을 들고 오고, 전 세계 배급사와 바이어들은 자국 시장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우리가 OTT나 극장에서 접하는 해외 콘텐츠 상당수가 바로 이런 마켓에서 거래가 시작됩니다. 필마트는 그 흐름의 아시아 관문입니다.

 

 


 

 

세계 주요 필름마켓과 어떻게 다른가

 

 

사진: 분주한 필마트 미팅 현장 ⓒ 모비인사이드

 

 

필름마켓은 필마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에는 저마다 성격과 시기가 다른 주요 마켓들이 존재하며, 업계 관계자들은 연중 이 마켓들을 순환하며 비즈니스를 이어갑니다.

 

  • EFM (European Film Market) 은 매년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열립니다. 유럽 중심의 예술·독립영화 거래가 활발하며, 작가주의 영화와 국제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발굴하려는 바이어들이 몰립니다. 영화제의 권위와 맞닿아 있는 만큼, 작품성과 비즈니스가 교차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집니다.
    >> 필름마켓에서 개봉까지 – 영화 한 편의 여정 (feat. EFM)

  • 칸 마켓 (Marché du Film) 은 5월 칸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필름마켓입니다. 상업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스펙트럼이 가장 넓고, 참가 규모와 거래 금액 모두 최상위입니다. 전 세계 콘텐츠 업계가 한 번에 집결하는 자리인 만큼, 단순한 거래를 넘어 업계 전반의 트렌드를 읽는 장이기도 합니다.

  • AFM (American Film Market) 은 매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립니다.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영화 거래에 특화되어 있으며, 제작 투자와 공동제작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헐리우드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마켓이기도 합니다.

 

필마트는 이 세 마켓과 비교했을 때 아시아 시장에 특화된 마켓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중동까지 아우르는 아시아 전반의 콘텐츠 거래가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글로벌 셀러 입장에서도,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려면 필마트를 빠뜨리기 어렵습니다.

 

 


 

 

필마트 현장, 어떻게 돌아가나

 

 

사진: 필마트의 메인 부스를 주로 차지하는 중국 부스들ⓒ 모비인사이드

 

 

전시 홀 안으로 들어서면 국가별, 회사별 부스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각 셀러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콘텐츠의 포스터와 홍보물을 전시하고, 사전에 미팅을 신청한 바이어들을 맞이합니다. 거래 대상이 콘텐츠일 뿐, 가격을 묻고 정보를 파악하고 계약을 약속하는 전체 프로세스는 여느 비즈니스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이어들의 하루 일정은 빡빡합니다. 미팅이 쉼 없이 이어지고, 테이블 위에서는 계약 조건과 권리 범위를 둘러싼 비즈니스 대화가 오갑니다. 판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OTT와 극장 권리는 분리되는지, 리메이크나 포맷 판권은 별도 협상인지. 콘텐츠 하나를 둘러싸고 논의해야 할 항목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사진: 필마트 내 한국관 ⓒ 모비인사이드

 

 

경쟁 구도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같은 콘텐츠에 여러 바이어가 관심을 보이면 MG(Minimum Guarantee, 최소보증금)가 올라가고, 반응이 미지근하면 협상 여지가 생깁니다. 인기 있는 콘텐츠일수록 빠른 결정이 요구되고, 그 압박 속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며칠 안에 성사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느낀 것

 

 

필마트 같은 마켓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는 것. 제작자와 바이어가 한 공간에서 만나고, 협상하고, 계약하는 이 과정이 없다면 각자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콘텐츠들은 국경을 넘기 어렵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은 크게 바뀌었지만, 필마트의 역할은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OTT 플랫폼들이 글로벌 콘텐츠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필마트는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트렌드와 방향을 읽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홍콩 필마트는 매년 그 연결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아시아의 거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