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것 하나
MBC 《손석희의 질문들》 마지막 게스트로 소설가 김애란이 등장했습니다. 신작 《안녕이라 그랬어》를 들고 나타난 그에게 손석희 앵커가 물었습니다. AI와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돌아온 답은 짧았습니다.
“인간한테 있고, AI한테 없는 게 하나 있었어요. ‘망설임’이었는데요.”
단 한 문장이었지만, 이 말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AI가 인간의 글을 쓰고,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인간보다 빠르게 위로의 언어를 생성해내는 시대에, 소설가가 꺼낸 답이 ‘망설임’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차분한 목소리에서 나온 문장들
사실 김애란 작가가 이 방송에서 남긴 말들은 하나같이 그랬습니다. 손석희 앵커의 날카로운 질문에 즉흥으로 대답하는 자리였음에도, 그의 문장들은 오랜 사유를 거친 것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답변 하나하나가 문학작품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 같아서 감탄이 나왔다”는 반응이 쏟아진 이유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결함은 한계가 아닌 미덕이자 개성입니다.”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결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AI 앞에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불안해하고 있는 지금, 작가는 정반대의 시선을 내놓았습니다. 결함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본질이라고.
AI는 왜 망설이지 않는가
조금 더 생각해보면, 망설임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망설임이 발생하는 순간을 해부해보면 그 안에 여러 겹의 인지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의 표면이 아닌 이면을 읽으려 합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합니다. 내가 하려던 말이 도움이 될지, 상처가 될지 저울질합니다. 혹시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그리고 잠시 멈춥니다.
AI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거칠 수 없습니다. 망설임은 ‘정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태’에서 옵니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데이터로 학습할 수는 있지만, 지금 이 사람의 특정한 슬픔 앞에서 자신의 언어가 충분한지 의심하는 경험은 학습되지 않습니다. 망설임은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능력이고, AI는 그 불확실성을 처음부터 제거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AI의 위로는 늘 유창합니다.
유려한 조언보다 빛나는 투박한 침묵
작가는 방송에서 한 장면을 꺼냈습니다. 손석희 앵커의 ’20초 침묵’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뒤, 앵커는 바로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에서 작가는 진심을 강렬하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고민,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거나 헤아리는 찰나가 있더라구요. 그 주저 안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힘들다고 털어놓았을 때, 바로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보다 잠시 말을 잃고 함께 있어준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 순간. 빠르고 효율적인 답변보다, 그 사람이 내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느라 잠시 멈췄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됐던 순간.
침묵은 무능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가볍게 처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AI는 0.1초 만에 답합니다. 그 속도가 때로는 내 말이 그만큼의 무게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지워버립니다.
소설가 김애란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김애란 작가가 이 주제를 꺼낼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었고, 언어가 사람에게 어떻게 닿는지를 누구보다 세밀하게 관찰해온 사람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내면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사람의 침묵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언어로 건져 올리는 작업이 소설입니다. AI는 말해진 것들을 학습하지만, 소설가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다룹니다.
그 맥락에서 ‘망설임’이라는 단어는 더 깊은 울림을 가집니다. 망설임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경험하는 감각입니다. 상대의 아픔이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망설입니다.

AI 시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지금,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것들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최적화된 답변이 아닌 투박한 위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닌 느린 공감, 유창한 언어가 아닌 말을 고르는 침묵.
김애란 작가의 말은 AI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AI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이 결함처럼 보였던 우리 안의 어떤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 앎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망설임은 비효율이 아닙니다. 상대를 헤아리는 시간이고, 말을 고르는 배려이며, 진심이 도착하기 직전의 찰나입니다. 힘들고 슬픈 이들에게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진심은, 바로 그 망설이는 순간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AI 시대에 우리가 가장 열심히 지켜야 할 능력은, 빠르게 답하지 않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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