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UX] 마라톤 대회와 공공UX
- “좀 불안불안 했었는데….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는 대회였는데 너무 허탈하다.”
- “춘마 대비해서 10월 5일 서울오픈 신청해놨는데 갑작스런 연기(사실상 취소)”
러너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소셜미디어 스레드에서는 최근 마라톤 취소 및 연기 공지로 인해 당황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국내 러닝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그에 따라 마라톤 대회도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일반 시민들의 불편, 불만의 소리 또한 커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서울시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급증하면서 주요 도로의 주말 교통 통제 및 주민 소음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안전 및 교통 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했고, 이로 인해 올해부터 마라톤 대회의 진행 방식과 통제 규정에 큰 변화가 생겼으며, 일부 민간 대회는 허가 기준을 맞추지 못해 취소되거나 일정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 또한 주 3~5회, 평일 약 6~7km, 주말 10km 정도를 꾸준히 달리는 러너로서, 마라톤 대회를 둘러싼 이슈를 UX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 달리는 소수의 즐거움 vs 달리지 않는 다수의 불편
서울시 전체 인구 중 매주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즐기고 대회에 참가하는 ‘진성 러너’는 약 50만~60만 명(전체 인구의 약 6%)으로 추산된다. 반면, 러닝을 하지 않거나 주말 이동권을 행사해야 하는 대다수의 시민은 약 880만 명에 달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 시내에서 개최된 마라톤 및 러닝 대회는 대규모 도심 대회부터 한강변 주최 대회, 각 구청장배·민간 단체 소규모 대회까지 모두 합쳐 총 60여 개 이상으로 추산되며, 올해 이미 개최되었거나 연말까지 개최 예정으로 등록된 마라톤 대회는 약 70여 개에 이른다.
1년 52주(주말 104일) 동안 서울에서만 약 70개의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서울 시민 입장에서 주말마다 평균 1.3개의 마라톤 대회를 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3~5월(봄)과 9~11월(가을) 약 6개월(24주) 사이에 전체 대회의 80% 이상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매주 주말 최소 2~3개 이상의 대회가 서울 도심과 한강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UX 디자인에서 특정 유저 그룹을 위한 특화 기능이 전체 시스템의 기본 사용자 경험(Core User Experience)을 해친다면, 그 서비스는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광화문, 여의도, 잠실과 같은 서울의 핵심 교통 거점은 수많은 대중교통 노선과 시민의 주말 이동이 집중되는 ‘도시의 메인 인프라’다.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주말마다 반복되며 이 거점들을 차단할 때, 880만 (마라톤에 관심 없는) 시민들이 겪는 교통 마비와 소음 피해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공공 인프라의 서비스 불능 상태(Service Outage)로 인식된다.
따라서 서울시의 규제 강화는 러너들에 대한 제재라기 보다는, 도시라는 거대 시스템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 폴백(Fallback)’ 즉, 안전장치에 가깝다.
– 윈-윈(Win-Win) 아키텍처를 위한 주관사와 지자체의 역할
마라톤 문화를 활성화하면서도 공공 인프라의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코스 설계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상징성과 흥행을 위해 많은 대회가 광화문과 여의도 등을 거점으로 잡는데, 주관사는 한강 수변 공원, 하천변 산책로, 혹은 도시 외곽의 넓은 순환 코스 등 도로 통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러닝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대체 코스(Alternative Routes)를 발굴하고, 서울시는 이런 대회에 한해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주관사는 참가자 유치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시민 민원 최소화를 핵심 KPI로 잡아야 한다. 도로 통제 시간의 세밀한 단계별 해제, 주거지 구간에서의 침묵 응원존 운영, 청소 및 잔여물 회수 프로세스의 완벽한 표준화 등 정교한 서비스 운영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 공감(Empathy) 중심의 러닝 문화
UX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상호 이해와 공감(Empathy)’이다. 진정한 스포츠 문화의 성숙은 마라톤에 참여하는 러너들의 태도에서 완성된다.
러너들은 내가 달리는 도로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으로 이동하는 통로이며, 주말의 휴식을 누려야 할 주거 공간임을 인지해야 한다. 대회에 참가할 때 주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고성방가를 자제하고, 쓰레기를 지정된 장소에 버리는 등의 기본적인 매너는 단순한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문화가 지속되기 위한 유저 간 최소한의 ‘프로토콜(Protocol)’이다.
나의 즐거움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배려가 전제될 때, 시민 사회 또한 마라톤을 기꺼이 응원할 수 있는 유쾌한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공존을 위한 마라톤 대회 디자인
천만 인구가 함께 살아가는 서울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동시에 이용하는 복잡한 플랫폼이다. 서울시는 다수 시민의 삶이 불편을 겪지 않는 범위 내에서 러닝 문화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혜택을 제공하고, 주관사는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지 말고 도시의 교통과 이동권을 방해하지 않는 코스를 개발하여 대회가 스마트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러너들 또한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잠시 빌려쓴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에 대한 감사와 배려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러닝이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문화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수의 열정’과 ‘다수의 일상’이 평화롭게 공존할 때, 우리 모두가 함께 바라는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이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
폴백(Fallback) : 주(Primary) 로직이나 기능, 데이터가 실패하거나 작동하지 않을 때 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대신 실행하는 대체 기능이나 기본값(플랜 B)을 의미한다.
우리 삶 곳곳에 숨겨진 UX 이야기
윈터노트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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