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 주 약 38만 명. 2주 차에는 관객 수가 40%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출발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3주 차부터 관객 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4주 차에는 전주 대비 무려 71% 증가한 약 46만 명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례적인 흥행 흐름의 주인공은 프랑스 전쟁 영화 <드골>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흥행 성적뿐만이 아닙니다. 프랑스 영화 사이트 알로시네(AlloCiné)에서 1편의 평론가 평점은 5점 만점에 3.5점이었지만, 일반 관객 평점은 4.4점에 달했습니다. 2편 역시 평론가 3.9점, 관객 4.5점으로 관객들의 평가가 더 높았습니다.

개봉 초반의 부진을 딛고 프랑스에서 1·2편 합산 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요?

오는 11월 국내 개봉을 앞둔 <드골>의 이야기와 프랑스 현지 흥행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개봉 첫 주 부진(?), 그런데 3주 차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2026년 6월 프랑스에서 공개된 <드골>은 안토닌 보드리 감독이 연출한 2부작 전쟁 영화입니다.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개봉 첫 주 부진, 그런데 3주 차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인물인 샤를 드골을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규모 제작비까지 투입됐지만 출발부터 흥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1편은 개봉 첫 주 약 38만 명을 동원한 이후 2주 차 관객 수가 약 23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3주 차에는 약 27만 명으로 반등했고, 4주 차에는 약 46만 명까지 증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개봉 초반 관객 수가 집중된 뒤 시간이 흐르며 감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드골>의 흥행 흐름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지에서는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입소문이 흥행에 힘을 보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의 할인 관람 행사인 ‘영화 축제(Fête du Cinéma)’도 관객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반에는 기대만큼 관객을 모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후에도 관객들의 발길은 이어졌습니다. 8월에는 2부작 합산 500만 명을 넘어섰고, 9월에는 5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후 누적 6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프랑스 극장가에서 장기 흥행 성과를 거뒀습니다.

 

 

 

 

 

평론가보다 관객들이 더 높은 점수를 준 이유는?

 

 

<드골>의 또 다른 특징은 평론가와 일반 관객의 평가 차이입니다.

프랑스 영화 사이트 알로시네에서 1편 <드골: 저항의 시작>은 평론가 평점 3.5점, 관객 평점 4.4점을 기록했습니다. 2편 <드골2: 자유의 시대> 역시 평론가 평점 3.9점보다 관객 평점이 4.5점으로 높았습니다.

물론 관객 평점이 평론가 평점보다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영화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과 관람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제 관객들이 어떤 부분에 반응했는지를 살펴보면 이 같은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지 관객 후기에서는 배우들의 연기와 대규모 전투 장면, 역사적 사건을 몰입감 있게 풀어낸 이야기 등이 긍정적으로 언급됐습니다. 특히 드골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고뇌하고 갈등하는 한 인간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편은 2026년 6월 개봉작 가운데 알로시네 관객 평점이 가장 높은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전쟁 영화의 볼거리뿐 아니라, 역사 속 인물들이 겪었던 선택과 갈등이 관객들에게 또 다른 몰입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항복한 순간, 끝까지 저항을 선택한 한 사람

 

그렇다면 <드골>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프랑스 정부가 항복을 선택한 가운데, 한 장군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샤를 드골입니다.

당시 드골은 오늘날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런던으로 건너가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저항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조국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충분한 군대도 자금도 없었습니다. 함께 나치 독일에 맞서는 영국과 미국조차 드골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으로 건너온 프랑스인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 점령된 파리에서 저항에 나선 젊은이들까지. 영화는 드골 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는데요.  그 과정에서 드골은 적군뿐만 아니라 동맹국과도 갈등합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는 협력하면서도 프랑스의 미래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미국과도 자유 프랑스의 정치적 지위를 놓고 신경전을 벌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적과 싸우고, 협상장에서는 동맹을 설득해야 했던 것입니다.

 

<드골> 이 일반적인 전쟁 영화와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투의 승패뿐 아니라,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누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떻게 다시 주권을 되찾아 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저항의 시작부터 파리 해방까지, 2부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드골>은 약 5시간 20분에 걸친 두 편의 영화로 완성됐습니다.

먼저 1편 <드골: 저항의 시작>은 프랑스의 항복 이후 드골이 런던에서 저항을 선언하고, 자유 프랑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항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드골이 영국 및 프랑스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마주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룹니다.

이어지는 2편 <드골2: 자유의 시대>에서는 전쟁과 외교적 갈등이 더욱 확장됩니다.

드골은 강대국들이 프랑스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상황에서 자유 프랑스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북아프리카의 전투와 연합국 사이의 갈등, 레지스탕스의 활동을 거쳐 이야기는 파리 해방을 향해 나아갑니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나라가 이미 항복한 상황에서도 저항을 이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전쟁 영화지만, 단순히 전투 장면을 이어 붙인 작품이 아니라 인물들의 선택과 갈등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흥행, 11월 한국 관객을 만납니다

 

 

 

<드골>의 흥행 과정은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와도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출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후 관객들의 관심이 이어지며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 속 역사와 실제 흥행 성과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작품이라기보다, 개봉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났다는 점은 이 영화의 흥미로운 이력입니다.

한국 관객에게도 <드골>은 낯설지만 익숙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나라 밖에서 저항을 이어간 자유 프랑스와 점령된 조국 안에서 싸운 레지스탕스의 모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녔지만, 자유와 독립을 향한 선택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드골: 저항의 시작>  이 11월 11일, <드골2: 자유의 시대>가 11월 25일 차례로 개봉합니다.

처음에는 관객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프랑스에서 6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한 장군의 저항 선언에서 시작해 한 나라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드골〉의 이야기가 한국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관심이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