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금융기관은 보수적이다. 금전적 신뢰를 담보로 운영하는 은행은 모든 접근에 있어서 전통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은행 특유의 불편한 사용자 경험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금융계의 혁신을 원하지만, 금융이나 의료는 한 번의 사고가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만큼 예민한 분야기 때문에 IT기업들처럼 린(lean)한 방식을 택할 수 없다. 세계 최초로 적용된 실시간 계좌이체가 수만 명의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생산해내지 않았나.

이런 보수적인 금융기관들이 고안된지 고작 몇년 된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A은행, B은행, C은행과 고객인 김씨가 있다. A와 B, C은행은 자체 장부시스템에 거래내역을 기록한다. 즉 A은행의 장부에는 A은행의 고객만의 잔고기록이 저장된다. 만약 A은행이 B은행과 C은행에게 각 1억 원씩을 빌려줬을 경우엔, 각 은행의 장부시스템에 이런 식으로 기록이 될 것이다.

A은행 장부: B은행에게 1억을 빌려줌
A은행 장부: C은행에게 1억을 빌려줌
B은행 장부: A은행으로부터 1억을 빌림
C은행 장부: A은행으로부터 1억을 빌림

같은 정보가 세 번, 다른 기관에 독자적으로 저장되고 관리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중복 기록은 아주 큰 비용을 동반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A은행의 고객인 김씨가 B은행과 C은행에 돈을 빌려줬다면 B은행과 C은행은 각각 김씨와의 거래내역을 기록하고 김씨는 이 두 은행이 돈을 갚을 것이라는 것과 정확한 금융정보가 저장되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금자는 대출 과정에서 차입자(은행)를 신뢰해야 하고 은행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각자 보관하고 있는 “같은” 거래정보를 서로 맞춰가며 자금의 출처를 확인한 후 정산 동의가 일어나야 한다.

 

수천만명의 고객과 수백 개의 은행들 사이의 거래를 정산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연구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같은 거래 데이터를 중복 기록할 필요 없이 한 개의 공용장부에 기록하게 되면 기관 간의 거래정보 “매칭” 비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진작에 공용장부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매칭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니 그냥 장부 한 개에 기록하자”는 아이디어는 분명 이전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문제는 동의와 보안이다. 만약 수백 개의 은행들이 모든 거래기록을 한 개의 중앙 장부시스템에 저장하면 그 장부의 주인은 수백조, 수천조에 달하는 거래를 관리하게 된다. 21세기 반지의 제왕의 탄생이다. 그 반지(중앙 서버)를 누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매일같이 호빗들(해커들)이 그 반지를 부수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블록체인이 해결하는 문제가 바로 이거다. 블록체인은 중앙 권력기관 없는 복사된(replicated) 분산 장부 시스템이다. n개의 기관들은 각각 공통의 장부를 복사하여 보관하고 데이터가 서로 일치하는지만 체크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동기화하는 수준의 공유 데이터베이스(shared database)와 다르다. 데이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시스템에 참여하는 개체가 자유롭게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그 기록은 다른 개체가 볼 수 있도록 전파된다.

출처: Santander InnoVentures

한번 기록된 정보는 새롭게 기록된 정보와 “체인”으로 묶이기 때문에 조작이 어렵다. 데이터를 조작하려면 51% 이상의 네트워크를 장악해야 하는데, 즉 50개의 은행들이 사용하는 블록체인 장부 속의 계좌를 조작하기 위해서 26개의 은행을 동시에 해킹한 후 유지해야 한다. 물론 불가능하다.

 

누구나 익명으로 거래를 기록하고 검증하는 무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less blockchain)인 비트코인과 달리 인증된 금융기관을 위한 블록체인은 허가/컨소시엄 형태(permissioned/consortium blockchain)이다. 즉 블록체인 시스템에 참여하기 위해 금융기관은 네트워크의 허가(permission)가 필요하고, 각 금융기관이 한 개의 노드를 담당하여 컨소시엄을 형성해야 한다.

현재 25개의 대형은행들이 R3 CEV라는 뉴욕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이루어 블록체인 기준을 세우는 시도를 하고 있고 신용부도 스와프(Credit Default Swap)를 개발한 Blythe Masters가 창업한 DAH는 세개의 스타트업(Hyperledger, Bits of proof, Blockstack)을 인수한 후 금융기관을 위한 블록체인을 설계하고 있다. 이 밖에도 Setl, TØ, Multichain, Bankchain, Peernova, Symbiont, Epiphyte, Ripple 등이 허가형 장부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블록체인을 연구중인 금융기관들

블록체인은 전통 금융기관들의 마지막 보루다. 연 20조 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하고 더 빠르고 안전한 금융거래를 블록체인을 통해 구현해야 IT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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