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구성

넷플릭스가 상대라면, CGV는 이미 졌다

CGV의 목표는 단지 영화표를 많이 파는 게 아니다

제한된 고객의 시간을 둘러싼 야놀자와의 경쟁

Next CGV의 시간 점유 전략은?

*이 글은 작가의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에서 시작된 글이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작성한 글입니다. 

 

넷플릭스가 상대라면, CGV는 이미 졌다

영화관 상영을 두고 영화관 브랜드들과 갈등을 빚은 넷플릭스의 옥자와 넷플릭스가 발표한 옥자 상영 긍장표

 

2012년 직접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래, 넷플릭스는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옥자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560억 원)를 투자한 오리지널 콘텐츠다. 2017년 당시 넷플릭스는 온라인은 물론 극장까지 동시 개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대형 영화관 브랜드들은 일제히 상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온라인-극장 동시 개봉에 대한 CGV가 발표한 공식입장은 이랬다.

온라인 서비스와 극장의 동시 개봉은 세계 영화 산업의 유통 구조 질서에 반(反)하는 처사로 영화 산업의 생태계 파괴는 물론, 다른 영화 업계와의 형평성에도 부합하지 않아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정리하자면, 영화라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입장에서 OTT*라는 콘텐츠 유통 혁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곧 콘텐츠 유통자로서 영화관의 패배를 뜻한다. 그렇다면 왜 기존 유통자들은 넷플릭스에 밀렸을까?

*OTT : Over The Top의 준말로, 직접적으론 셋톱박스를 통해서/넘어서라는 뜻을 가지며,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교육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영화관과 달리 OTT는 콘텐츠를 보는데 소모되는 시간과 돈을 고객이 보다 직접 통제할 수 있다

CGV 같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기존의 방송사까지. 기존 콘텐츠 유통자들이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이들의 유통방식이 단순히 ‘콘텐츠를 본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유통할지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더 싸고 쉽게 유통할 까에 초점을 뒀다.

즉, 이런 방식의 접근은 혜택 증대 중심의 가치제안이 아닌 비용절감 중심의 가치제안이다. 따라서 고객 입장에서 넷플릭스 같은 OTT가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해줬다. 여기서 비용은 영화관을 가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는 시간, 외식하는 돈 등 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시간과 돈이 포함된다.

넷플릭스는 이런 비용을 고객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권한을 줬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으며,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영화를 잠시 멈춰둘 수 도 있다.

여기다 옥자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넷플릭스는 이미 비용절감 중심의 가치제안을 넘어,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고객에게 혜택 중심의 가치제안을 시작했다. 따라서 비용과 혜택을 따지는 합리적인 고객이라면, 더 이상 기존의 콘텐츠 유통채널을 이용할 이유가 없어졌다.

 

CGV의 목표는 단지 영화표를 많이 파는 게 아니다 

 

2012년은 올드 조폭의 노르웨이 정착기를 그린 ‘릴리 해머’를 시작으로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시작한 해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CGV는 컬처플렉스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컬처플렉스란 문화와 멀티플렉스*의 합성어로, 복합영화관에 문화를 입혀 문화체험이 가능한 지역의 랜드마크를 뜻한다. 쉽게 콘텐츠가 있는 문화 공간을 의미한다. 영화관과 식당, 부대시설이 결합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말로선 기존의 멀티플렉스와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면 CGV의 컬처플렉스는 기존의 멀티플렉스와 무엇이 다를까?

멀티플렉스* : 10개 이상의 상영관과 식당, 각종 부대시설이 한 데 모여있는 복합영화관

 

컬처플렉스는 ‘어디서’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공간의 디자인을 뜻하는 ‘어디서’, 콘텐츠의 형식을 의미하는 ‘어떤’, 관객의 콘텐츠 참여도와 방식을 상징하는 ‘어떻게’라는 3가지 기준으로 접근해보자.

 

1. ‘어디서’, 지역의 정체성/관람객에 특화된 공간 디자인

좌측부터 CGV 명동, 대학로, 하계 순이다.

 

컬처플렉스 CGV는 지점마다 다르지만 같은 공간 디자인을 선보였다. 과거 한국 영화의 메카로 여겨지던 충무로와 인접한 CGV 명동의 경우,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비워 씨네 라이브러리로 만들었다. 씨네 라이브러리는 영화 관련 전문서적으로 구성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C, G, V라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 C 섹션 : Creativity of Cinema에서 따온 C로, 만화나 소설처럼 영화의 원작으로 이루어진 섹션이다.
  • G 섹션 : Guide of Cinema을 뜻하며, 감독, 배우, 시나리오, 콘티북 등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영화 전문서적이 주를 이룬다.
  • V 섹션 : Visuality & Arts의 V로 영화에 영감을 준 예술 및 인문학 도서로 구성됐다.

CGV 대학로는 연극, 버스킹 등 여러 문화콘텐츠가 한 데 어우러져 하나의 큰 문화극장으로서 역할을 하던 대학로를 반영했다. 사진에서 보듯이 대학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CGV 하계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고 한다. 때문에 아이 놀이방은 물론, 아이 전용 좌석 상영관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CGV의 컬처플렉스는 각 지역의 정체성 혹은 관람객에 특성을 고려한 공간으로 디자인됐다.

 

2.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콘텐츠

좌측 상단부터 시계순서로, CGV 천안펜타포트, 여의도, 대학로, 용산아이파크몰

멀티플렉스가 영화만을 즐기던 공간이었다면, 컬처플렉스는 영화도 즐기는 공간이다. 즉 CGV의 컬처 플렉스는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로 구성된 문화 공간이다. 천안 펜타포트점은 입장로부터 퇴장로 까지 그림이 걸려있다고 한다. 지방 특성상 문화 시설이 부족한 천안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여의도점은 버스킹 라이브라는 기획행사가 있었으며, 피아노가 상시 비치돼있어 신촌 길거리처럼 자유롭게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대학로점의 경우, 배우 토크라는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용산 아이파크 몰 점엔 영화관의 굿즈샵이 있다. ‘영화관은 영화 관람만을 위한 공간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로 문화 공간을 연출하려는 CGV의 컬처플렉스를 느낄 수 있다.

 

3. ‘어떻게’, 스크린 앞이 아닌 콘텐츠 안에서 체험의 경험을 제공하다

용산아이파크몰

 

이전과 비교해 컬처플렉스의 관객 참여는 더 능동적이며, 콘텐츠에 더 직접적이다. 왼쪽 상단은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4DX with ScreenX 상영관이다. 4DX는 모션 체어를 비롯해 여러 특수효과로 영화와 연계된 감각적인 체험을 가능케하는 시설이다. ScreenX는 보다시피 3면이 화면으로 구성된 상영관이다. 즉, 4DX with ScreenX는 이전보다 더욱 영화에 밀접한 체험을 제공하는 상영관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미션 브레이크’라는 게임이다. 재밌는 점이 2가지 있다. 하나는 Tvn 드라마 시그널을 모티브로 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64평의 공간에서 5가지 테마로 게임을 구성했으며, 포켓몬 고의 증강현실(AR)을 적용해 더욱 사실감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즉, 컬처플렉스는 관객을 스크린 앞이 아닌 콘텐츠 안으로 끌어들여 체험을 제공한다.

정리하자면,

 

그러나 CGV의 컬처플렉스 목표는 단순히 영화표를 많이 파는 게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영화표를 많이 파는 걸 넘어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데 있다. 고객의 시간을 점유해, 브랜드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점유하려는 고객의 시간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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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고객의 시간을 둘러싼 야놀자와의 경쟁 

문화 및 예술 관람에 88%가 영화관람이다

 

CGV가 점유하고자 하는 고객의 시간대는 다름 아닌 주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주말 관객수 비중은 45%로 전체 2.2억 명의 관객 가운데 1억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더군다나 주말 매출액(영화표 매출만 집계)은 8천억 규모로 48%에 해당된다.

즉, 주말 이틀 치가 주중 5일 치와 맞먹는 셈이다. 쉽게 많은 한국인이 주말에 여가생활로 영화를 관람한다. 그렇다면 주말 영화 관람의 가장 큰 경쟁 여가는 무엇일까? 바로 여행이다. 혹여 숫자만 봐서 TV시청이 경쟁 여가가 아니냐 할 수 있다. 먼저 이 설문은 복수응답으로 진행됐다.

시간이 주어졌을때 ‘희망 하는’ 여가를 고른 게 아니라, ‘과거에 했던’ 여가를 고른 통계 자료다. 만약 오로지 TV시청에 대한 욕구로 행해진 여가라면, 비용에서 자유로워지는 주말에 더 많은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 러나 주말에 선택받은 빈도수가 하락했다.

게다가 OTT처럼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TV시청의 특성을 고려해볼때, TV시청은 그 자체에 대한 욕구보단 비용문제로 불가피하게 선택하게된 여가에 가깝다.

반면, 여행과 영화관람은 시간이라는 비용에서 자유로워지는 주말에 상승한다. 때문에 다른 여가활동에 비해 이 둘은 그 자체에 대한 욕구가 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여가 모두 경험에 특화된 여가다. 따라서 주말처럼 여가를 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경쟁 여가는 여행과 영화관람이지, TV시청이 아니다.

여행산업의 대표 격인 야놀자는 레저큐를 인수하고 여러 액티비티 서비스와 콜라보를 통해, 기존 숙박 앱에서 액티비티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그 종류는 워터파크, 놀이공원, 동∙식물원, 유람선, 공연∙전시장 등 문화관광시설 입장권과 수상스키, 서핑, 짚라인, 레일바이크, 패러글라이딩 등 레저 이용권, 테마 카페, VR, 스크린스포츠 등 액티비티 체험권까지 다양하다. 즉, 야놀자도 CGV와 마찬가지로 차별화된 경험을 통해 주말이라는 고객의 특정 시간을 점유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비용절감 중심의 숙박앱과 여기에 연계된 액티비티로 혜택중심의 가치제안을 시도하기 위해, 그 초석을 다지는 중이다. 게다가 야놀자의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R.E.S.T.(Refresh∙재충전, Entertain∙오락, Stay∙숙박, Travel∙여행)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려는 두 기업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Next CGV의 시간 점유 전략은?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차별화된 경험 전쟁에서 CGV는 앞으로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기존의 컬처플렉스를 토대로 예상해보자.

 

1. 지역 정체성/관객의 특성에서 지역 문화 커뮤니티 허브로

천안펜타포트점, 대학로점

이 작품의 작가는 누구일까? 이 작품의 작가는 다름 아닌 천안지역 미술대학 학생들이다. 넷플릭스나 야놀자와는 다르게, CGV는 전국에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접점 일명 터치포인트(touch-point)가 굉장히 많다. 여행보다 영화 관람은 비용 소모가 적기 때문에, 고객의 방문 횟수를 늘리는 방향의 전략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매번 같은 콘텐츠로 고객을 마주한다면, 콘텐츠의 차별성은 한계 체감한다.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역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역할을 고려해볼 만하다. 지역 커뮤니티 입장에선 양질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CGV 입장에선 고객과의 소통은 물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콘텐츠의 원천을 얻는 것이기에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 지역 문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CGV가 거듭난다면,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에 있다.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닌,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2. 참여에서 참여자의 스토리로

이 분은 CGV 여의도점에서 할아버지 피아니스트로 유명하신 분이다. 본업은 치과의사로, 취미로 피아노를 치게 됐으며, 어느덧 재미를 붙이시고 일상이 됐다고 하신다. 심지어 고정 팬까지 생기셨다. 이처럼 스크린 앞에 놓인 관객이 아닌, 참여자 관객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연이 지속성을 갖는다면,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 CGV의 역할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공연이나, 유명 배우 토크 콘서트만을 기획하는 게 아니다. 진정성 있는 참여자 고객들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책상 밖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멋진 은발의 피아니스트 말고도 분명 이와 같은 스토리는 있을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발굴하는 게 NEXT CGV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장운진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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