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건축물을 창조하려는 야망을 의심할 이유는 부족하지 않다. 건물은 그것을 짓는 일에 들어가는 노력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다.”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중)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사람? 나무? 자동차?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시야의 높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건축물’일 것이다. 지금 20층 아파트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내 시야에 걸리는 것도 죄다 건축물 뿐이다. 옆동인 101동(참고로 안 궁금하겠지만 난 102동에 산다)의 상층부가 가장 크게 보이며, 조금 더 멀리 눈을 돌리면 주변을 빼곡하게 메운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외에 보이는 것이라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과 (아마도 건축 비용이 수익에 비해 더 크다고 판단된) 높은 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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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녹아든 건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 사람들은 피난 혹은 안전을 위한 장소로서 집을 짓기 시작했고, 이후 예배를 위해,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집단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기 위해서도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수천년 혹은 수만년 전부터 사람들은 더 좋은 건축물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끊임 없이 시도했고, 때로는 실패했으며, 또 때로는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는 폐기되었고, 성공은 답습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기술’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의 기술은 이제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사람들은 우선 건축물을 지을 공간을 정하고,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 측량하며, 그 값과 관계자들(건축주, 시공자, 설계자 등) 간에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설계도면이 그려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건물을 세울 차례이다. 우선 건물을 지탱할 수 있도록 토지의 기반을 다지는 기초공사가 이뤄진다. 기초를 튼튼하게 다졌다면 건축의 방향이 위로 향할 차례이다. 각 층의 골조를 올리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새로운 바닥을 만들며, 오수와 배관, 전기 및 수도 등의 설치를 위한 설비공사 작업이 병행된다. 돌과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을 쌓는 조적공사와 미장, 방수 작업, 유리와 창호공사 등이 이뤄지며, 건물 내외부의 타일과 돌 공사, 페인트 공사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도배공사와 각종 인테리어 공사, 조경공사가 마무리되면 하나의 공간, 즉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웹, 앱의 기획 또한 건축의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획자는 우선 자신의 목표 또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카테고리를 설정한다. 누군가는 교육 서비스를 위한 앱을 만들고자 할 것이고, 또다른 누군가는 상품 판매를 위한 웹 기반의 쇼핑몰을 제작하고자 의뢰를 맡겼을 것이다. 기획자의 일, 다시 말해 ‘기획’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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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가 정해졌다면 조금 더 구체화된 기획이 이루어질 단계이다. 해당 카테고리를 선점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는 누가 있는지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들(기획자, 클라이언트, 디자이너, 개발자 등)은 끊임 없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기능이 들어가면 어떨까?’, ‘이 앱에서 왜 이 기능이 빠져 있는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획의 기초가 튼튼하게 다져졌다면 본격적인 기획이 시작된다. 웹 또는 앱 서비스의 전체적인 구조도가 만들어지고, 끊임 없는 회의와 토론을 거쳐 조금 더 ‘튼튼한’ 기획이 될 수 있도록 합의와 조정이 이루지는 것이다. 이어서 각각의 세부 페이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와이어프레임이 그려지고, 이렇게 완성된 기획은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손을 거쳐 하나의 가상 공간, 즉 ‘웹/앱’으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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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면과 웹/앱 기획을 위한 와이어프레임은 꽤나 닮아있다. 그 외향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기획의 건축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두 개의 공간, 즉 건축물과 웹/앱을 연결하여 이야기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때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거주공간 혹은 사무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며, 또 때로는 인간의 역사에 있어 조금 더 기념비적인 건축물 혹은 공간을 통해 기획의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대학에서 건축의 한 분야라 할 수 있는 조경학을 공부했다지만, 기본적으로 건축과 공간에 관한 내 이해는 나의 업인 ‘기획자’로서의 역량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서현, 승효상, 정기용 등 국내 유명 건축가들의 저서는 물론 브랑코 미트로비치, 메튜 프레더릭, 르 코르뷔지에, 비트루비우스 등 유명 건축가 및 건축 이론가들의 이야기를 참조하고자 함을 미리 밝힌다.

 

 

이준형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