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소비자에게서 답을 찾는다.

 
 

다소 민망할 정도로 거창한 제목이지만, 그간 생각해온 스토리텔링 법칙을 한번 정리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마케팅 스토리텔링에 있어 필요한 법칙들을 몇 가지로 뽑아봤는데 대략 4~5개쯤이 되지 않을까 싶어 Part I과 II로 나누어 올릴 예정이다.

그전에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미디어 환경이 변했음에도, 회사는, 그리고 마케터는 여전히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상에서 소비되고 공유될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철저히 소비자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아래 이어지는 내용도 결국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I. 캐릭터 구축 : 누가 이야기하게 할까?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화자(Speaker)’가 누구인가?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터가 흔히 하는 실수가 일단 미디어를 집행하면 소비자와 브랜드 단 둘의 만남으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일단 만남은 성사되었으니 잘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심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TV를 틀어놨어도 눈은(때론 손만) 스마트폰에 가 있는 것이 요즘 소비자다. 잠시만 흥미가 떨어지면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한다. 그 옛날 강호동이 진행한 짝짓기(?) 예능 마냥 ‘매력 발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눈길 받기 어려운 정글이다.

이미 엄청나게 성장한 브랜드가 아닌 바에야 내가 누군지 자기소개부터 하는 것이 예의다. 여기서 자기소개는 대뜸 팔려는 제품부터 내놓으란 얘기가 아니다. 각설하고, 예시를 하나 보도록 하자.

 

 

 

이 광고는 캐릭터 구축이 다 했다 (Ⓒ대한민국 정부)

 

 

정부에서 만든 ‘디지털 성범죄 근절 캠페인‘ 영상이다. 곽도원 배우는 그간 맡아왔던 작품들로 인해 경찰이나 검사의 이미지가 강하다.(심지어 ‘곡성’에서도 시골 경찰이다) 이 영상을 보면 1초 안에 곽도원은 공무원임을 알 수 있고, 3초 안에 검사나 경찰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무슨 범죄 수사물 예고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스킵하지 않게 하려면 중요한 요소다) 

그간 정부 공익 캠페인은 단체로 춤을 추거나(춤추다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노래를 부르는 등 쌍팔년도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해왔는데, 이 광고는 일단 캐스팅에서 먹고 들어간다.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기에 실제 검사, 경찰뿐 아니라 검찰총장이나 대통령보다 곽도원의 말 한마디가 훨씬 와 닿지 않을까? (사실 반말로 했더라면 더 실감 났겠지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아래를 보면 영락없는 말보로 광고다. 담배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우린 이 광고를 보고 자연스럽게 담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카피. I miss my lung..  이 광고의 경우, 차용한 원작을 완전히 뒤집는 형태이기에 ‘독성 기생충 전략‘이라고 불리지만 효과는 이보다 확실할 수 없다.  

 

 

담배를 팔려는 광고를 비틀어 금연 광고를 만들었다.

 

 

이 외에도 ‘노인과 바다’ 속 설정을 가져온 롯데리아 새우버거의 광고나, 아예 각종 유명 작품의 캐릭터들을 짜깁기한 ‘그랑사가’ 연극의 왕 광고도 있다. 스타벅스는 이름은 ‘모비딕’에서, 심벌은 ‘오디세이’에서 가져왔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좀 더 짧고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더 집중하게 된다. 또 이 이야기를 알만한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꼭 유명 작품이나, 광고 패러디나, TV나 영화 등을 통해 구축된 이미지를 가져올 필요는 없다. CEO(택진이 형, 용진이 형의 경우)일 수도, 순정만화 주인공(빙그레우스)일 수도, 북극곰(곰표 맥주)일 수도 있다. 이제는 고전 광고가 된 경동보일러 광고(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캐릭터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광고 이론에서는 3B(Beauty, Beast, Baby)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라지만, 이제는 그렇게 귀엽거나 이쁘다고 봐주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이미지는 어디에나 있다. 커머셜한 메시지는 공감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스토리는 누가 이야기하고 있을까? 화자가 소비자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인가? 또 그 캐릭터는 우리 브랜드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한가? 

 

 


 

 

II. 관점 전환 :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마케팅 서적에 자주 등장하던 사례가 하나 있다. 소니의 베타 방식과 마쓰시타(현 파나소닉) 간에 벌어진 ‘비디오 포맷 전쟁’이다 (관련기사 링크). 사실 이 외에도 유사한 사례는 많다. IBM의 OS/2와 MS DOS가 그랬고, 애플의 맥킨토시와 MS의 윈도우가 그랬다. 많은 기업들이 맹신하는 것과 달리 기술이 성공을 꼭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언급한 사례는, ‘질레트’와 ‘DSC(Dollar Shave Club)’ 간의 면도기 전쟁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데, 질레트는 날면도기 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었다. 문제는 끝없이 올라가는 가격이었다. 이런 시점에 등장한 DSC는 끊임없는 신제품 출시와 광고를 통해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고, 가격을 더 올리는 순환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관련 영상)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DSC(이런 표현 싫어할 수도 있지만)라 할 수 있는 와이즐리의 경우, 얼마 전 고객들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들어선 지금 질레트의 길로 갈아탈 것이냐, 아님 계속 DSC의 길을 갈 것이냐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TV 광고도 해봐”

“마트에 입점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어”

이런 제안에 솔깃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고객에게 돌아가지 않는 비용으로 가격을 부풀리는 대신, 가격을 더욱 내립니다.

와이즐리 메일 중에서.

 

그럼 질레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역시 가격을 낮춰야 할까? 안타깝게도 질레트는 구조상 그렇게 할 수 없다. 대신 또 다른 방향에서 접근을 했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질레트 랩스 HEATED RAZOR 설명 이미지 중 (출처. 질레트)

 

 

질레트는 기존보다 더 고가 라인인 ‘질레트 랩스’를 론칭하고 온열 바를 장착한 면도기를 출시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되면 전기면도기와의 구분이 모호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지만, 질레트와 같은 P&G의 전기면도기 역시 계속 프리미엄화 되는 중이다) 또 부가티나 아이언맨 에디션을 출시하는 등 고객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아마도 질레트의 대답은  프리미엄하고 다양하게.. 인 것 같다. 

더구나 저 바버샵의 따뜻함은 나름 컨셉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상품 상세페이지에만 등장한다. 공식 명칭은 ‘질레트 랩스 히티드 레이저’다. (예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2000 서버.. 같은 작명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럼 결과는?

 

 

질레트, 와이즐리, 도루코 검색량 비교 2021.3~2022.3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네이버 데이터랩에서는 프로모션 기간을 제외하면 와이즐리가 질레트를 대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질레트가 훨씬 고가이고, 와이즐리가 온라인에서만 판매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M/S는 이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괜찮은 품질의 면도기를 편하게 구독하고 싶다‘라는 것은 확인된 셈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확산되길 바란다면, 그리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길 바란다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물론 시장을 바꿀 엄청나게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위의 예에서 보듯 그런 방식이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의 소비자들은 뚜렷한 기준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제품을 고른다. 그게 브랜드의 힘이다. (그래서 한때 많은 마케터들은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 마음속에 있던 불만이나 니즈를 새로운 기준으로 세워줄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판단을 바꿀 수도 있다. 

그것은 몇 월의 칫솔인지 쓰여있어 매월 잊지 않고 바꿀 수 있는 칫솔일 수도 있고, 폐플라스틱을 모아 만든 원단을 활용한 패딩일 수도 있으며, 멀리 과거로 가면 ‘드럼’ 대신 아끼는 옷을 오래 입고 싶다는 마음에 포커스를 맞춘 세탁기일 수도 있다.

 

 


 

 

이후 마케팅 스토리텔링의 법칙의 두 번째 글이 이어질 예정이다. 스토리텔링의 법칙이 내용에 대한 가이드라면 형식적인 면이나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추가로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연재는 데이터-스토리-플랫폼으로 나름 요즘 마케팅에 대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처음엔 쉽게 생각했으나 글을 쓸수록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져 업데이트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 드리며… 아마도 4월 중에는 연재가 완료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