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것에만 더 집중하려고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께 저는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쁜 의도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나름 컨설팅 일을 몇 년째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한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시장분석을 철저히 하고… 트렌드도 눈여겨봐야 하고… 필요하면 고객 인터뷰를 해서… ‘ 

정말 이런 방법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기만 하면 사업과 마케팅이 다 잘 될 수 있는 걸까요?

 


 

“고객을 잘 안다고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전제에 의문을 가져봅니다. 사람들은 사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해 보고 이게 나에게 좋다, 나쁘다, 가치가 있다, 쓸모가 없다 등을 ‘느낄’ 뿐이죠. 경험해 보기 전에 미리 이 느낌을 설계하는 쪽은 고객이 아니라 기업입니다. 

토스트기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기업이 고객에게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토스트기는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요? ‘크기는 너무 크지 않아야 하고, 색상은 질리지 않는 화이트였으면 좋겠고…’ 뭐 이 정도 대답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내용들이죠.  

실제로 제품을 만들 땐 더 구체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토스트기의 질감과 소재, 구현해야 할 기능, 버튼 디자인, 구워진 빵을 꺼내는 방식, 그 빵의 식감까지. 이런 걸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고객은 없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은 고객에게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먼저 ‘제안’하는 겁니다. 고객은 기업이 내놓은 제안을 경험해 본 후의 느낌으로 그 기업을 평가할 뿐입니다.  

대표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팀원들과 함께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에 따라 제품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기업이 고민을 거듭해 완성시킨 제품에 고객이 감동하면 그 제품은 잘 팔립니다. 제품이 잘 팔리면 기업도 성장합니다. 어쩌면 기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업 구성원들의 철학과 신념은 무엇인가’,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감동시킬 제안을 만들 수 있는 깊이를 갖추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요인일 수 있습니다. 

 


 

“고객은 어떤 포인트에 감동할까?”

 

고객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고 감동할 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말들을 보면 고객에게는 ‘솔루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내가 필요했던 게 딱 이런 거였어! (경험 후의 깨달음)

이제 이거 없는 세상으로는 못 돌아감.

이거 만든 사람 진짜 상 줘야 함. 

 

고객을 감동시키는 가치는 조사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시장과 고객은 과거만 보여줍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과거에는 없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 개인이 특정 분야에 빠져들어 오랜 시간 거듭한 고민과 연구, 그로 인해 쌓인 그 분야의 전문성, 독특한 관점과 큐레이션 능력,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 주로 이런 것들이 결합되면 고객을 감동시키는 브랜드, 제품, 서비스가 탄생합니다.   

요즘 뜨는 브랜드나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이를 더 잘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고객 조사’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주목했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세상에 내고 싶은 목소리, 내가 구현하고 싶은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거기에 남다른 깊이가 필요하면 그 깊이를 갖췄습니다. 남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오랜 기간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매출이 적어도 기꺼이 버틸 수 있었죠.

긴 시간 거듭한 고민은 깊이를 만듭니다. 남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생각, 남들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울림이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게 됩니다. 고객들은 보통 이 깊이에 열광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 제품만의 특별함, 미처 생각지 못한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 한 우물을 깊게 판 어떤 사람에 대한 경외심 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탄한 철학과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들이 성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스토리가 좋아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임팩트 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오랜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거죠. 듣기 좋은 스토리를 따라 만든다고 이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까지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마케팅도 잘할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 세상에 전하고 싶은 내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가 마케팅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냥 성공하고 싶어서 ‘잘 된 것들’의 모든 요소를 때려 넣은 브랜드는 어떤 마케팅을 해도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인테리어는 그럴싸한데 음식 맛에 깊이가 없는 식당은 재방문율이 떨어집니다. 고객들은 똑똑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속아한 번은 갈지 몰라도 두 번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겉모습만 흉내 낸 제품들은 트래픽 대비 전환율이 낮습니다. 제품을 본 고객들이 ‘이런 카피캣들을 보니 역시 그 브랜드가 좋긴 해’라며 최종 선택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명확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식창업가 백종원은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파는 외식 브랜드를 만듭니다. 손님들이, 더 나아가 모든 국민들이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겠다는 장사 철학을 가지고 있죠. 오랜 시간 요리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며 쌓은 내공으로 본인의 철학에 부합하는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신념을 다양한 방송에서 드러내며 대표인 자기 자신을 마케팅 소재로 적극 활용합니다. 따라 하기 쉬운 요리 레시피 소개, 지역 상권을 살리는 프로젝트 등 그가 나오는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백종원이라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합니다.  

 

 

따라 하기 쉽도록 레시피를 알려주는 백종원 대표 (출처 : 유튜브 채널 ‘백종원’ 캡처)
 

 

발뮤다는 ‘놀라움을 주는’ 가전제품을 만듭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변화된 생활 방식, 사용성을 극대화한 디자인, 부품의 활용, 그리고 이 제품이 다룰 ‘빵’에 대해서까지 심도 있게 연구합니다. 원래 빵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기보다 ‘놀라움을 주는 토스트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깊이를 갖춘 것이죠. 사람들은 발뮤다 토스트기가 만들어내는 빵맛과 토스트기의 사용성에 감동합니다. 너도나도 발뮤다 토스트기를 찬양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자신이 경험한 놀라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합니다. 발뮤다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내는 광고 매체인 고객의 SNS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제품 자체의 담긴 고민의 깊이가 마케팅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죠. 

 

 

발뮤다가 소개하는 발뮤다 (출처 : 발뮤다 웹사이트)

 

‘잘 파는 마케팅 기법’보다 ‘브랜드의 깊이’를 갖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런 사례를 보고 ‘백종원처럼 유튜브를 운영하면 잘 되겠군’이라거나, ‘역시 고객 SNS가 가장 효과가 좋으니 여기에 예산을 써야겠어’ 같은 생각을 먼저 떠올리면 안 됩니다. 나는 백종원 대표만큼 요리와 손님들에게 진심인가, 나는 발뮤다만큼 제품에 깊이를 담았는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파는 제품, 내가 만든 서비스, 내가 구성해 놓은 공간, 내가 만드는 음식. 거기에는 어떤 스토리와 메시지가 담겨있나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깊이와 디테일이 느껴지나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면 마케팅을 할 때도 온갖 억지 카피와 이미지를 짜내야 합니다. 마케터에게 뭐든 해보라고 닦달해야 합니다. 본인의 제품을 소개하는 랜딩페이지를 만드는데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할 이야기는 정해져 있으니 매체에 맞는 형태만 갖춰 확성기를 가져다 대면됩니다. 약간의 창의성을 더해 이 메시지를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됩니다. 메시지가 단단한 마케팅은 하면 할수록 브랜드의 철학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한 분야의 깊이를 인정받으면 인지도는 자연스레 올라갑니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명 셰프들의 음식은 먹어보고 싶어 합니다.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명 건축가의 건물은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따분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깊이가 있는 사람의 결과물에는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합니다. 마케팅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사업이나 마케팅이 잘 안 될 때 점검해야 할 대상은 고객 분석이 아니라 ‘나(혹은 내 브랜드)’입니다. 만들어낸 가치에 내 색깔이 묻어나지 않으면, 고객을 감동시킬만한 내공과 메시지가 없으면 그들도 우릴 선택하지 않을 테니까요. 철학이 단단하지 않은 기업이 고객 분석이나 마케팅 기법만으로 성공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