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써보는 건 어때요?”
함께 점심을 먹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써온 글도, 평소에 관심 가지는 주제들도,
우리가 하는 브랜드 컨설팅도 결국 다 퍼스널 브랜딩으로 귀결되는 거잖아요.” 제 첫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어요. 사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거, 약간은 호들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낭중지추(囊中之錐)
송곳은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라고 하잖아요? 묵묵히 잘하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텐데, 굳이 나를 알리겠다고 애쓰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때 반짝 떴다가 식어버린 철 지난 유행어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날 밤 왠지 그 단어가 계속 귀에 맴돌았습니다. 머리에 한 번 심어진 단어는 제 화두가 되었고, 그 이후로 보고 듣는 것들이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졌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퍼스널 브랜딩은 ‘트렌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직업’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는 걸 체감했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체성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생겼거든요.
직업은 사라지고, 역할만 남는다
자기소개, 어떻게 하시나요? “무슨 회사에서 무슨 일 하고 있는 누구입니다.” 이 말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유효하지만, 그 바깥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일지도 몰라요. 직업은 더 이상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광고대행사에서 AE로, 미디어 에이전시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로 일했고, 지금은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도 하는 일도 계속해서 바뀌죠.
그 뿐인가요? ‘느낀표’라는 필명으로 10년 넘게 글을 써왔고, 커리어 강연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작은 사업도 하고 있어요. 직업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MZ세대의 평균 이직 주기는 2.7년에 불과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회사에서 커리어를 마치는 비율은 10% 미만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7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23%가 기술 변화로 대체되거나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게다가 부업·N잡·사이드 프로젝트는 이미 하나의 일상이 됐죠.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묻는 건 “어디 다녀요?”가 아니라 “무엇을 할 줄 아세요?”,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푸세요?” 입니다.
이 흐름 속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입니다.
잡 크래프팅 정해진 직무(job)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일의 방식, 내용, 의미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것. |
이 개념을 만든 예일대의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 교수는 사람은 더 이상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존재라고 말하는데요. 정해진 업무를 소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가치를 반영해 역할을 재구성하고, 스스로 ‘일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빅데이터 전문가이자 책 <시대예보>를 쓴 송길영 부사장은 앞으로 고용이 아닌 연결 중심 사회, 즉 프로젝트 단위로 사람과 일이 이합집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도 예측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예요. 직업이 아니라 역할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시대, 나의 문제 해결력, 일하는 방식, 철학을 일관된 언어와 태도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정의하지 않으면, 사회가 나를 규격화한다
자기답게 사는 것 외에 성장하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 헤르만 헤세, <나로 존재하는 법>
퍼스널 브랜딩은 사회 속 역할을 정의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개인성을 지켜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현대 사회는 개인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사회성을 가장 중요한 실존 범주로 만든다.” 요즘처럼 시스템이 잘 짜인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기능으로만 존재하기 쉽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기획 빨리 뽑는 사람, 발표 잘하는 사람. 사회적 기능은 물론 중요하죠. 2625문제는 그 기능이 사라지면 정체성도 함께 무너진다는 거예요. 실직, 은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공허함을 느낍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지?”
“왜 살고 있는 걸까?”
저 역시 1년에 몇 번씩 이런 질문에 휘청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슬럼프가 왔죠. 발 딛고 있는 땅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삶의 방향을 세우고, ‘나’라는 브랜드를 내 기준으로 정리하고 나서 그 질문들이 줄어들었어요.
뒤에서 다루겠지만, ‘나’라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와 목표를 세우고 나니 마침내 내딛을 ‘내 땅’이 생겼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을 ‘겉보다 속이 단단한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지었어요. 보이는 데에만 치중한 브랜딩은 유행에 휩쓸리다 금방 지치고 포기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확고한 방향과 기준을 세우는 것이죠. 그런 북극성이 만들어지고, 이를 꾸준히 일관되게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퍼스널 ‘마케팅’이 아니라 퍼스널 ‘브랜딩’
퍼스널 브랜딩을 퍼스널 마케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마케팅은 나를 알리는 것이죠. 브랜딩은 나를 정의하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유명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마케팅을 하는 거예요.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하죠. 하지만 알리는 데 치중하면 정작 ‘나 다움’을 잃을 수 있어요.
나 답지 않은 것은 1)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2)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소수에게 진짜 나를 정확히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기회는 대중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찾는 소수에게서 오니까요. ‘나 다움’을 정의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가는 것,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퍼스널 브랜딩입니다.
[속이 단단한 요약]
요즘처럼 직업이 자주 바뀌고, 소속이 유동적인 시대에는 직업이 아닌 ‘역할’과 ‘일의 방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잡 크래프팅’처럼 일의 의미를 스스로 재정의하는 흐름 속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동시에, 사회는 점점 개인을 기능 단위로 규격화하려 합니다.
내가 나를 먼저 정의하지 않으면, 세상이 마음대로 정의하게 됩니다. 퍼스널 브랜딩은 SNS 꾸미기나 자기PR이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소수에게 진짜 나를 정확히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게 브랜딩입니다.
느낀표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