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19년, 포트나이트(Fortnite)는 게임 업계에 조용하지만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전리품 상자(Loot Box)를 폐지하고 배틀패스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없으면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포트나이트는 배틀패스 도입 첫 달에만 약 3억 1,800만 달러(약 4,300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으며, 2025년 기준 연간 수익은 약 53억 달러(약 7조 원)에 달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한 게임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게임 수익화 모델 전체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센서타워(Sensor Tower)의 2023년 글로벌 모바일 게임 수익화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수익 상위 100개 모바일 게임 중 약 54%가 시즌패스 방식을 도입했다. 반면 가챠 방식을 채택한 게임의 비중은 2020년 51%에서 2023년 1분기 42%로 하락했다. 마케터라면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시점이다.
가챠는 왜 흔들리는가
가챠 모델이 흔들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규제 압박, 유저 반발, 그리고 수익 구조의 불안정성이다.

규제 측면에서 보면,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이미 확률형 루트박스를 도박으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브라질은 2025년 9월 청소년 온라인 보호법을 통해 미성년자 대상 게임의 루트박스를 금지했다. 스페인도 유사한 규제를 도입했다.
한국 역시 2025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이후, 그라비티와 위메이드가 기만 행위로 적발되는 사례가 발생했고, 2025년 12월에는 확률 허위 표시 게임사에 ‘매출액의 3% 이하 또는 10억 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금융치료”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강력한 경제적 제재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규제 기조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유저 반발도 심각하다. 가챠 모델은 구조적으로 소수의 ‘고래(Whale)’ 유저에게 의존한다. 전체 플레이어의 약 5%가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가챠 게임에서 고래 유저는 연간 1,000달러 이상을 지출하기도 한다. 이 구조는 단기 매출을 극대화하지만, 대다수 일반 유저의 이탈을 가속화한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뽑기 사기”라는 표현이 일상화된 것은 이 피로감의 표출이다.
수익 구조의 불안정성도 문제다. 가챠 기반 게임의 매출은 신규 캐릭터 출시 시점에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명일방주: 엔드필드의 경우, 2월 7일 질베르타 캐릭터 픽업 뽑기 시작과 함께 일일 매출이 전날 대비 107% 급등했다가 이후 급격히 하락했다. 마케터 입장에서 이 구조는 예측 가능한 수익 모델을 설계하기 어렵게 만든다.
배틀패스는 무엇이 다른가
배틀패스와 시즌패스는 일정 기간(보통 4~12주) 동안 특정 금액을 지불하면, 게임 내 미션을 완료하면서 보상을 순차적으로 획득하는 구조다. 핵심은 확정성과 행동 유도다.
가챠가 “얼마를 써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면, 배틀패스는 “이 금액을 내면 이것을 얻을 수 있다”는 명확한 가치 교환을 제시한다. 이 투명성이 유저의 구매 결정을 쉽게 만든다. 실제로 멀티플레이어 게임 유저의 약 34%가 시즌 배틀패스를 정기적으로 구매한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마케터 관점에서 배틀패스의 가장 큰 강점은 리텐션 엔진으로서의 기능이다. 배틀패스를 구매한 유저는 구매 비용을 ‘본전 뽑기’ 위해 지속적으로 게임에 접속한다. 일일 미션, 주간 챌린지, 시즌 한정 보상이 규칙적인 접속 동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D7, D30 리텐션 지표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으며, 높은 리텐션은 곧 LTV(생애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배틀패스 구매자는 비구매자 대비 게임 내 추가 IAP(인앱 구매) 지출도 높은 경향을 보인다.
또한 배틀패스는 예측 가능한 수익 흐름을 만든다. 시즌마다 일정 비율의 유저가 패스를 구매하는 패턴이 형성되면, 마케터는 UA(유저 획득) 비용 대비 회수 기간을 보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가챠처럼 신규 캐릭터 출시에 따라 매출이 급등락하는 구조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익 예측이 가능해진다.
수익 모델 비교: 가챠 vs 배틀패스
| 구분 | 가챠 (확률형) | 배틀패스 (구독형) |
|---|---|---|
| 수익 구조 | 소수 고래 의존, 이벤트 중심 급등락 | 다수 중간 과금자 기반, 시즌별 안정적 수익 |
| 유저 경험 | 불확실성 높음, 피로감 누적 | 명확한 가치 교환, 목표 달성 동기 부여 |
| 리텐션 효과 | 신규 캐릭터 출시 시 단기 급등 | 지속적 접속 유도, D30 리텐션 향상 |
| 규제 리스크 | 높음 (벨기에, 네덜란드, 브라질 등 금지) | 낮음 (투명한 가치 제공으로 규제 우호적) |
| LTV 예측성 | 낮음 (고래 이탈 시 급락) | 높음 (반복 구매율 예측 가능) |
| 마케팅 활용성 | UA 비용 회수 기간 예측 어려움 | 코호트 기반 LTV:CAC 분석 용이 |
실제로 어떻게 바뀌고 있나: 글로벌·국내 사례
블리자드 — 오버워치 2

오버워치 2는 2022년 출시와 함께 전리품 상자를 완전히 폐지하고 배틀패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초기에는 유저 반발도 있었으나, 신규 영웅을 무료로 제공하고 배틀패스를 통해 스킨 등 코스메틱 아이템을 제공하는 구조로 전환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에는 오히려 일부 루트박스 요소를 코스메틱 한정으로 부활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배틀패스와 가챠가 완전히 대체 관계가 아닌 보완 관계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넷이즈 — 무한대

중국 대형 게임사 넷이즈는 신작 ‘무한대’에서 캐릭터 가챠를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중국 게임사가 가챠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엔씨소프트 — TL·아이온2

국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엔씨소프트는 ‘TL’과 ‘아이온2’에 확률 요소가 없는 커스터마이징 상품을 적용했다. 7년 만에 월정액제를 부활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넥슨의 ‘마비노기 모바일’은 무료 이용자도 충분히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국 시장의 특수성
한국은 2023년 1분기 기준 수익 상위 100개 모바일 게임 중 47%가 구독 모델을 채택해, 중국·미국·일본보다 구독 모델 활용 비중이 가장 높은 시장이다. 동시에 한국은 1인당 결제 금액(ARPU)이 높은 고과금 시장으로, 연간 모바일 게임 매출이 약 68억 달러(약 9조 원)에 달한다. 이 두 가지 특성이 결합된 한국 시장은 배틀패스 모델이 가장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고 있다.
마케터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전략적 함의
첫째, UA 전략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가챠 모델에서는 신규 캐릭터 출시 시점에 UA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스파이크형 전략’이 유효했다. 그러나 배틀패스 모델에서는 시즌 시작 전후로 균등하게 UA를 집행하고, 배틀패스 구매 전환율을 핵심 KPI로 설정하는 ‘리텐션 기반 UA’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설치 수보다 D7·D30 리텐션과 배틀패스 구매 전환율을 중심으로 캠페인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둘째, 크리에이티브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가챠 광고는 “이 캐릭터를 뽑아라”는 희소성·욕망 자극 메시지가 중심이었다. 배틀패스 광고는 “이 시즌에 이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가치 명확화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특히 배틀패스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광고 소재—미션 달성, 보상 획득, 레벨업 순간—가 높은 CTR을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플레이어블 광고(직접 체험형 광고)와의 결합도 유효한 전략이다.
셋째, 하이브리드 수익화 모델을 설계하라.
배틀패스가 가챠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모델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현실적인 방향이다. 2023년 1분기 기준 전 세계 인기 모바일 게임의 약 40%가 6~7개의 수익 모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배틀패스로 중간 과금자의 정기적인 지출을 확보하고, 한정 코스메틱 가챠로 고래 유저의 추가 지출을 유도하며, 구독형 월정액(예: 원신의 웰킨문)으로 라이트 스펜더의 소액 반복 결제를 끌어내는 구조가 LTV를 극대화하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가챠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가챠는 죽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유일한 수익 엔진이 될 수 없다. 규제 압박, 유저 피로, 수익 불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압력 앞에서 가챠는 하이브리드 수익화 모델의 한 요소로 재편되고 있다. 배틀패스와 시즌패스는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수익 구조 전체를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기반이 되고 있다.
마케터에게 이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설치 수 중심의 UA에서 리텐션과 LTV 중심의 UA로, 스파이크형 캠페인에서 시즌 기반 지속 캠페인으로, 단일 수익 모델에서 하이브리드 수익화 설계로. 이 세 가지 전환을 먼저 실행하는 팀이 2026년 모바일 게임 마케팅의 승자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Sensor Tower — 2023 전 세계 모바일 게임 수익화 트렌드 인사이트
IT조선 — 확률형 규제 ‘칼날’…韓 게임업계, BM 개편 속도 붙나 (2025.12.26)
SQ Magazine — In-Game Purchases Statistics 2026 (2026.03.06)
Red Apple Technologies — Battle Passes and In-App Purchases: The Future of Game Monetization (2025.10.31)
Business of Apps — Fortnite Statistics (2026.01)
모바일 게임 BM 배틀패스 적용 사례 분석 논문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2022)
GamesIndustry.biz — Loot Box State of Play 2025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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