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OTT의 상징, ‘매각’이라는 종착역에 서다


왓챠 - 나무위키
 이미지: 왓챠



대한민국 OTT의 자부심이자 ‘추천의 명가’로 불리던 왓챠(WATCHA)가 결국 경영권 매각이라는 종착역에 섰습니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매각 주간사인 삼정KPMG는 오는 25일까지 인수의향서를 접수하며 본격적인 새 주인 찾기에 나섰습니다.

한때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꼽히던 1세대 OTT 왓챠는 왜 회생절차라는 뼈아픈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방대한 데이터는 축적됐지만, 현금은 말라갔다

 

왓챠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약 7억 5,000만 개에 달하는 누적 콘텐츠 평가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이는 국내 1위 수준의 압도적인 데이터 인프라로, 왓챠를 단순한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어 독보적인 ‘콘텐츠 데이터 기업’으로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데이터 수치 이면에는 차가운 재무적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2021년, 성장을 위해 발행했던 전환사채의 만기가 돌아온 것이 치명타였습니다. 유동성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신규 자금 조달까지 막히자, 왓챠는 결국 지난해 7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을 가졌더라도, 당장의 부채를 해결할 현금 흐름을 만들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스타트업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 셈입니다.

 

 

메쉬코리아와 정육각, 되풀이되는 ‘성장 지상주의’의 그림자

 

이러한 왓챠의 위기는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유망 스타트업들의 몰락과 닮아 있습니다. 물류 혁신을 외치던 메쉬코리아(브릉)는 외형 확장에 치중하다 유동성 위기로 hy에 인수되었고, 초신선 커머스로 주목받던 정육각은 무리한 M&A 이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회생 절차를 밟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성장성’과 ‘점유율’만 있으면 다음 투자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 믿었던 낙관론입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투자 심리 위축으로 시장의 문법이 ‘성장’에서 ‘수익’으로 바뀌는 순간, 이들이 쌓아 올린 혁신은 거대한 빚의 더미로 변했습니다. 왓챠 역시 고비용 콘텐츠 수급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채 ‘취향’이라는 팬덤에 의존했던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메시코리아, 정육각

 

 

최후의 보루, ‘숏폼 드라마’가 왓챠의 운명을 바꿀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여전히 왓챠를 주목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왓챠가 보여준 ‘생존 본능’에 있습니다. 왓챠가 내세운 반전 카드는 바로 숏폼 드라마 플랫폼 ‘숏차(Shortcha)’입니다. 2024년 출시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MAU)가 241%나 폭발하며 글로벌 숏드라마 시장의 고성장세를 증명해냈습니다.

편당 1~2분 내외의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는 기존 OTT의 고질적인 적자 구조를 타파할 대안으로 꼽힙니다. 연평균 12.3% 성장이 점쳐지는 글로벌 숏드라마 시장에서 왓챠의 기술력과 데이터가 결합한다면,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에는 매력적인 먹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던’
왓챠의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며

 

어쩌면 왓챠의 위기는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취향의 낭만’이 차가운 ‘자본의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7.5억 개의 별점 속에는 우리가 영화를 보며 흘렸던 눈물과 웃음,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보물 같았던 취향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왓챠의 매각 소식은 단순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적 아이콘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씁쓸함을 남깁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멈추지 않습니다. 왓챠가 지금 보여주는 ‘숏폼 드라마’를 향한 고군분투는, 1세대 스타트업이 낡은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가는 처절하고도 치열한 과정입니다. 3월 25일 접수될 인수의향서 결과에 따라 왓챠는 누군가의 품에서 다시 숨을 쉬게 될 것입니다.

그 주인이 누가 되든 바라는 점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정교한 추천의 감각과 방대한 데이터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를,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던’ 그 왓챠만의 따뜻한 시선이 새로운 플랫폼에서도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봅니다.

이제 왓챠는 성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증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는 어떤 장르의 이야기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