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코리아 2026 (10) 근본이즘

 

 

“정기 받으러 왔어요! 제 사주에는 관악산이 잘 맞는대요!”

 

꽃이 피는 봄에는 항상 산에 등산객들이 붐비기 마련이지만 최근에는 특히 ‘운’을 찾으러 온 젊은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가까운 산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풍수지리와 사주풀이를 기반으로 본인에게 기운이 좋다는 곳을 찾아간다. 산뿐만 아니라 ‘개운 명당’이라는 호텔 라운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인테리어를 할 때도 풍수에 맞게 가구를 배치한다. 이른바 ‘운 모으기’다.

 

운 모으기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놀이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이겨내는 기복 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왜 하필 우리 전통문화인 풍수지리일까?’라는 점이다. 전통문화뿐만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람객이 넘쳐나고, 유물을 모티브로 만든 ‘뮷즈(박물관의 굿즈 브랜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세계문학전집 읽기에 도전하며 고전의 진가를 느끼려는 사람도 있다. 아날로그가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세대임에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아날로그 취미를 배우는 것 역시 인기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대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이나 역사적 가치, 고전, 아날로그는 모두 변치 않는 ‘근본’이라는 가치로 이어진다. 여기서 근본은 단순히 ‘옛날 느낌’, 즉 복고(retro)에 그치지 않는다. 요즘 세대에게 소비되는 복고, ‘뉴트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근본’은 옛날 느낌을 재현한 것을 넘어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고 오랜 세월 인류에게 인정받은 ‘진짜’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이 변치 않는 근본을 통해 안정감과 의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일컬어 ‘근본이즘’이라고 표현했다. ‘리얼리즘’ ‘모더니즘’처럼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스타일 혹은 태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의 근본이즘을 하나씩 살펴보자.

 

 

 

 

세 번째 근본은 ‘아날로그 코드’다. 인공지능(AI)이 대체하지 못하고 지극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특히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역설적으로 사진 촬영에서 성능은 중요도가 낮아졌다. 대신 필름을 사용한다거나 셔터 버튼을 누르는 감각을 강조하는 등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촬영 자체의 경험이 중요해졌다. 심지어 노이즈가 생긴 사진, 흔들린 사진, 노출 조절에 실패한 사진 등 완성도만 놓고 보면 저품질의 사진을 더욱 특별하게 여기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손편지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SNS와 이메일밖에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직접 손으로 글을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낸 편지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배달원 위치가 추적 가능한 요즘 배달과 달리 편지는 우편함이 언제 차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만든다. 타이핑이 아니라 손으로 적은 글씨는 해당 편지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든다. 이에 월 구독료를 내면 손편지를 만들어 보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제작자는 편지에 시나 일러스트 등 자신의 작품을 담는 것으로, 일종의 예술 큐레이션 서비스다.

 

 


 

 

그렇다면 왜 근본이즘이 부상하고 있을까? AI 시대이자 급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원래 옛것을 찾는 복고 트렌드는 경기 불황이나 사회가 어지러울 때 등장한다. 현재가 각박할수록 과거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근본이즘은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AI 등 새로운 기술이 줄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선망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Z세대 성인 중 80%가 ‘우리 세대는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기술 속에 살아가지만 기술 이전의 삶, 기술이 없는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트렌드는 항상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종하는 것만이 트렌드는 아니다. 트렌드는 사회 구성원이 지닌 마음의 방향성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동반된다. 다시 말해 근본이즘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진본의 경계 자체가 흐려지는 시장 환경에서 등장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쏟아지고 사람의 일이 기술로 대체될수록 근본은 더욱 희소한 것이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가 될 것이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