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즐리의 진화와 초저가 공급 구조 — ‘반값 면도기’는 어떻게 ‘제로 마진 커머스’가 되었나


1. “면도날 하나에 왜 이렇게 비싸지?” —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 브랜드

마트 면도기 코너 앞에서 한 번쯤 멈칫해 보신 적 있으시죠? “이거 매달 사야 하는 소모품인데, 원가가 대체 얼마길래?” 하는 생각, 아마 많은 분들이 해보셨을 겁니다.


와이즐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처음엔 ‘반값 면도기’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샴푸와 화장품, 영양제, 심지어 달걀과 육류까지 파는 종합 생활용품 커머스로 몸집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월 2,990원만 내면 모든 상품을 판매 마진 없이 ‘원가’에 살 수 있는 멤버십까지 내놓았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들은 보통 가격을 올립니다. 그런데 와이즐리는 거꾸로 가격을 계속 내려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와이즐리가 단일 품목 구독 서비스에서 종합 생활용품 커머스로 진화해 온 과정을 짚어보고, 이 ‘이상한 가격’을 가능하게 만든 원가 구조를 하나씩 해부해 보겠습니다.

 

 

2. 생필품 시장, 왜 ‘가격 구조’가 문제였나

면도기는 대표적인 ‘면도기-면도날’ 모델 시장입니다. 본체는 싸게 팔고, 반복 구매해야 하는 교체용 날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죠. 와이즐리가 뛰어든 국내 면도기 시장 역시 소수 브랜드가 주도하는 독과점 시장이었습니다.

 

 

3. 면도기 하나에서 생활 전반으로 — 와이즐리 진화 타임라인

 

 

1️⃣ 초기(2018~): 독과점 시장에 던진 돌직구, 면도날 구독과 D2C

와이즐리는 2018년 면도날 구독 서비스로 시작한 스타트업입니다. 면도기 디자인은 직접 개발하고, 생산은 독일 OEM 업체에 맡겼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판매 채널입니다. 와이즐리는 오프라인 매장도, 외부 오픈마켓도 거치지 않고 오직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제품을 팔았습니다. 전형적인 D2C 방식이죠.


2️⃣ 확장기(2020~): ‘압도적 가성비 생활용품’의 원스톱 쇼핑몰로

와이즐리는 2020년을 기점으로 피부·모발 케어 제품으로 카테고리를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사업 방향은 아예 ‘압도적인 가성비 생활용품을 한데 모은 원스톱 쇼핑몰’로 재설정됩니다. 샴푸, 화장품, 영양제는 물론 육류와 달걀 같은 신선식품까지 판매 영역이 확대됐습니다. 면도날 구독 브랜드가 ‘집에서 매일 쓰는 것들을 가장 싸게 사는 곳’으로 정체성을 바꾼 셈입니다.


3️⃣ 현재: 연이은 가격 인하와 ‘제로 마진 멤버십’

와이즐리는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초저가(가성비)’로 정의하고,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습니다. 2022년 3월 제품 가격을 평균 43% 내렸고, 같은 해 12월 다시 17%를 낮췄습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두 차례, 큰 폭의 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도입한 것이 월 2,990원의 ‘와이즐리 제로마진 멤버십’입니다. 회원은 스토어의 모든 상품을 판매 마진을 뺀 원가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4. 1만 원짜리 샴푸, 그 안에 ‘원가’는 얼마일까?

와이즐리 전영표 공동 창업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반적인 생활용품의 가격은 대략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쉽게 말해, 1만 원짜리 샴푸를 샀다면 그중 실제 ‘제품’에 해당하는 돈은 2,000원 남짓이라는 뜻입니다. 나머지 8,000원가량은 매장에 진열되기까지의 비용, 광고비, 회사 운영비, 그리고 이윤입니다. 와이즐리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원가와 품질을 지키는 비용만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을 최대한 걷어내는 것이죠.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말로는 쉽지만, 유통과 마케팅 없이 물건을 파는 건 기업 입장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5. 어떻게 이 가격이 가능한가 — 와이즐리의 ‘저가 공급 구조’ 3가지 장치

 

초저가를 만드는 세 가지 비용 절감 장치

 

① 유통 마진 소거: 자사몰 100% 유통

와이즐리는 외부 유통 채널을 쓰지 않습니다. 자체 앱과 온라인 스토어에서만 제품을 직접 판매합니다. 대형마트 입점 수수료나 오픈마켓 판매 수수료, 중간 도매상의 마진이 끼어들 틈이 없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소비자가의 30~40%를 차지하던 유통비가 사라지고 물류비와 인건비 정도만 남게 됐습니다.


② 마케팅·운영 조직의 극단적 효율화

와이즐리에게도 뼈아픈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때 6개월 동안 마케팅에 50억 원을 쏟아부을 만큼 공격적으로 투자했지만, 영업 적자가 급증하며 경영 위기를 맞았습니다. ‘알리기만 하면 팔린다’는 기대가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2021년 말, 와이즐리는 사업 방향을 전면 개편합니다. 마케팅팀을 없애고, 자체 온라인 스토어를 직접 구축하던 개발팀도 정리했습니다. 팀 규모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크게 높아졌고, 여기서 아낀 판관비가 곧 추가 가격 인하의 재원이 됐습니다.


③ 제품 포장 간소화

작은 비용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와이즐리는 포장을 간소화해 제품 부피를 줄였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원가를 낮출 뿐만 아니라 배송 과정의 효율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 [멘토 요약] 와이즐리 사례에서 읽는 마케팅·유통 포인트

✅ 가격은 그 자체로 마케팅이 될 수 있다

와이즐리는 마케팅팀을 없애는 등 판관비를 줄였고, 이렇게 아낀 비용은 추가 가격 인하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 수익원은 바꿀 수 있다 — 상품 마진에서 멤버십으로

월 2,990원의 제로마진 멤버십은 ‘물건을 팔아 남기는’ 구조에서 ‘고객 관계에서 남기는’ 구조로의 전환입니다.


✅ 비용 구조를 뜯어보면 혁신의 여지가 보인다

원가 20%를 제외한 나머지 80%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가격 경쟁력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통, 판관비, 포장 같은 ‘당연한 비용’을 의심하는 것에서 혁신이 시작됩니다.

 


6. ‘알리기만 하면 팔린다’는 착각을 넘어

와이즐리의 지난 몇 년은 한 스타트업이 착각을 깨고 체질을 바꾼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마케팅으로 성장하려던 시도는 경영 위기로 돌아왔고, 그 위기 속에서 와이즐리는 오직 ‘가성비’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선택은 구조 전체를 바꿨습니다. 외부 유통을 걷어내고, 마케팅과 개발 조직을 줄이고, 포장까지 덜어냈습니다. 그렇게 남긴 비용을 가격 인하로 돌려주었고, 마지막에는 상품 마진 자체를 포기하고 멤버십 구독료로 수익 모델을 옮기는 실험에 나섰습니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제로 마진 구조가 지속되려면 충분한 수의 유료 회원이 필요하고, 신선식품까지 넓어진 카테고리에서 품질과 물류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이소와 대형마트 PB까지 초저가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와이즐리의 실험이 어디까지 버텨낼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시사점은 있습니다. 물가 상승과 불황이 이어지는 지금, 소비자는 ‘더 좋은 브랜드’보다 ‘같은 품질을 더 합리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마케터와 유통 담당자라면 한 번쯤 자사 제품의 가격표를 뜯어보길 권합니다. 그 안에서 원가가 아닌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중 무엇을 덜어낼 수 있는지. 와이즐리의 사례는 비용 구조 혁신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가치 제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