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회생 신청의 충격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하나둘씩 시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명품 배송 플랫폼 ‘발란’, 신선식품 직송 서비스 ‘정육각’. 한때 각각의 시장에서 ‘혁신’의 아이콘처럼 떠오르며 주목받았던 두 스타트업이 2025년 들어 나란히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수백억에서 천억 원이 넘는 누적 투자, 시리즈 D와 E까지 이어진 성장의 궤적, 전국 단위의 고객 인지도까지 고려한다면 겉으로 보기엔 ‘성공의 궤도’에 오른 듯 보였습니다.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B2C(기업-소비자) 영역에서, 이들은 각각 ‘명품의 일상화’와 ‘초신선 먹거리’라는 새로운 관점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던 두 기업은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화려했던 성장 스토리는 급격히 멈춰 섰습니다.
발란과 정육각 – 빠른 성장, 빠른 추락

2015년 설립된 발란은 명품 플랫폼으로서 10년간 시리즈 D까지 누적 약 77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고속 성장했습니다. 백화점 외 명품 구매 수요를 타깃으로, 병행수입과 유럽 셀러를 통해 ‘로켓 배송’을 구현한 것은 당시 국내 시장에서 보기 드문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물류비, 반품/환불 처리 비용, 재고 리스크 등 복합적인 부담이 얇은 마진 구조 위에 누적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올해 4월, 발란은 결국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정육각은 더욱 화려했습니다. 2016년 창업 이후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초신선 식자재 배송을 표방했고, 2023년에는 친환경 식품 브랜드 ‘초록마을’을 인수하며 유통 전반을 장악하겠다는 비전을 드러냈습니다.
누적 투자금 약 1,270억 원, 시리즈 E까지 이어진 투자 유치는 그 기대감을 방증합니다. 그러나 초록마을 인수 이후 전 직원의 90% 이상이 퇴사하고, 인수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정육각 또한 7월 초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며 사업 모델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반복되는 구조의 실패

이쯤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입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총 1조 2,790억 원 규모의 회생채권 을 남기고, 약 4만 8,000여 곳의 협력업체에게 정산을 하지 못한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유통업체 오아시스가 인수에 나섰지만, 90억 원 상당의 채권에 대해 고작 0.75%만 현금으로 변제하겠다는 조건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법원이 강제 인가를 결정했고, 1억 원의 미정산금이 75만 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 중 600여 곳은 폐업이나 파산신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많은 플랫폼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 유치를 위해 GMV(Gross Merchandise Volume, 총 거래액) 확장을 우선시했고, 마케팅과 할인을 통해 볼륨을 키워나가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재구매율, 고객 충성도, 물류 인프라 같은 ‘수익 기반’을 동반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외형 성장 뒤에 남은 건 반복되는 손실과 고정비 증가, 낮은 수익률 뿐이었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모바일 결제 플랫폼 ‘Origami’는 2013년 창업 이래 당시에는 시장에 가장 빠르게 진입한 온라인 페이 업체였습니다. 라쿠텐 페이, 라인페이 등과 경쟁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했지만, 빠른 외형 확장에 비해 수익 모델이 미비했고, 결국 2020년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유력 투자자인 소프트뱅크와 KDDI가 초기 자금을 지원했지만, 매장 확대나 이용자 전환율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실패로 이어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싱가포르계 스타트업이지만 일본에까지 진출했던 ‘Honestbee’입니다. ‘노동 시간 없는 사람을 대신해 장을 봐주는’ 공유경제형 쇼핑 플랫폼이었지만, 일본 포함 8개국 확장 과정에서 수익 모델이 부족했고, 물리적 인프라와 재고를 갖추지 않은 ‘노에셋형 모델’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때 도큐전철과의 제휴를 통해 지역밀착형 서비스를 운영했으나, 결국 철수하며 현지 사업은 종료되었습니다. 이들 일본 사례의 공통점은 ‘기술’보다 ‘물류와 유통 구조의 효율성’에 기대는 전략이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이라는 형태만 디지털일 뿐, 본질은 오프라인 유통의 연장이었고, 차별화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더는 ‘성장 스토리’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기업들이 무너진 이유는 잘못된 의사결정이나 일시적인 외부 충격 때문이 아닙니다. ‘수익보다 거래액’, ‘신뢰보다 속도’, ‘지속가능성보다 성장’이 우선시되는 구조 자체가 반복적으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생태계 전체가 이 구조를 묵인해왔습니다.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를 위해 거래 규모를 부풀렸고, 투자자는 손익보다 트래픽을 먼저 보았습니다. 정책은 이를 ‘성장’이라 표현했고, 소비자는 편리함 속에 감춰진 리스크를 인지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성장 스토리’라는 말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입니다. 더 많은 사용자, 더 빠른 확장, 더 큰 거래액이 곧바로 기업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유통 구조, 인프라 비용, 고객 유지 전략까지 모든 것이 현실과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물류망, 까다로운 규제, 브랜드 신뢰가 시장에 뿌리내리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화려한 스토리보다 ‘견고한 구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진정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시 구조를 묻고,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입니다.
Bennett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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