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 하면, 저는 뭘 준비해야 하나요?

 

요즘 코칭에서 이 질문을 받지 않는 주가 없습니다. 취준생도, 주니어도, 가끔은 저보다 연차가 높은 분도 물어보세요. 솔직히 저도 정답은 모릅니다. 다만 불안을 달래는 말 대신, 지난 1년간 코칭 현장에서 실제로 관찰한 것을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AI가 시안을 뽑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어떤 디자인 일은 더 비싸졌더라고요.

 

AI 시대, 디자이너의 몸값은 어디서 나올까?  이미지: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열 개의 시안 앞에서 생기는 일

한 멘티가 AI로 온보딩 화면 시안을 뽑아 왔습니다. 열 개였어요. 예전 같으면 일주일 걸렸을 양인데 한 시간 만에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이 중에 뭘 밀 거예요?”

 

긴 침묵이 있었습니다.

만드는 건 한 시간이었는데, 고르는 건 며칠이 지나도 못 하고 있었어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고르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거든요. 우리 서비스는 지금 어떤 단계인지, 개발 리소스는 얼마나 되는지, 이 화면이 책임지는 지표가 무엇인지.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은 AI가 대신해 주지 않았습니다.

 

 

열 개의 시안 앞에서 생기는 일? / 이미지: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생산의 비용은 확실히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별과 책임의 비용은 그대로더라고요. 열 개의 그럴듯한 시안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선택의 이유를 팀에 설명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 이게 정확히 디자이너가 원래 해오던 판단이라는 일입니다.

 

 

포트폴리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합격 사례들을 기록하면서 발견한 공통점도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붙는 포트폴리오는 잘 만든 화면이 아니라 잘 내린 판단을 보여주는 문서였어요. 왜 이 문제를 골랐는지, 어떤 제약 안에서 무엇을 포기했는지, 왜 A안이 아니라 B안이었는지.

AI 이후에 이 기준은 약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매끈한 화면과 매끈한 문장은 이제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요. 리뷰어 입장에서 변별력이 생기는 지점은 하나만 남습니다. 이 사람만 내릴 수 있었던 판단이 보이는가.


 

그래서 요즘 코칭에서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AI에게 화면을 맡기는 건 괜찮은데, 고른 이유까지 맡기면 포트폴리오에 내가 없어진다고요.

 

 

 

그리는 사람에서 고르는 사람으로

11년 전 제가 신입일 때, 디자이너의 실력은 손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픽셀을 다루는 정교함, 툴의 숙련도 같은 것들이요. 지금 그 부분은 빠르게 값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는 사람 > 고르는 사람

 

대신 값이 오르는 쪽도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일, 제약을 읽는 일, 여러 안 중에 하나를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 화면을 그리는 사람의 자리는 좁아지지만, 판단을 파는 사람의 자리는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뭘 준비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툴을 하나 더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판단의 흔적을 남기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세요. 왜 골랐는지, 뭘 버렸는지, 어떤 제약이 있었는지. 그 기록이 쌓이면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대체되지 않는 문서가 됩니다. 결국 포트폴리오도, 실무도, AI 시대의 몸값도 같은 곳으로 수렴하는 것 같아요.

판단의 증명. 저는 거기에 걸고 있습니다.

 

 


우디 (우디디자인랩)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