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검색의 종말 그리고 내가 세우는 콘텐츠의 규칙

 


푹푹 찌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낮 동안 달궈진 도시의 열기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식지 않는다. 창문을 열면 습기와 열기가 한꺼번에 방 안으로 밀려들고, 창문을 닫으면 작은 선풍기 소리만이 조용히 방을 채운다. 바람은 약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그 미약한 회전이 없으면 이 밤은 너무 뜨겁고, 너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책상 위에는 반쯤 식은 아메리카노가 있다. 얼음은 거의 녹았고, 커피는 미지근해졌다. 몇 번이나 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흔적처럼 컵 가장자리에는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다.

 

모니터에는 익숙하지 않은 화면이 떠 있다. 터미널 창이다.

AWS Lambda function deployed successfully.
CloudFront distribution updated.
Domain propagation in progress..

 


검은 화면 위로 하얀 글자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들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정책을 분석하고, 기업의 리스크를 이야기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터미널 창 앞에 앉아 있다. AWS 배포 로그를 읽고, 도메인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오류 메시지를 복사해 AI에게 다시 묻는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낯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에게 이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화면으로 꺼내고, 인터넷 어딘가에 조용히 띄워놓는 일.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이 바뀐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검색창을 닫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검색창을 여는 일이 귀찮아졌다. 처음에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정보를 보고, 회의 자료를 읽고, 기사와 보고서를 넘기다 보면 검색어 하나 입력하는 일조차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음 날도 그랬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검색창을 열기 전에 먼저 AI를 연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보면 사진을 찍어서 묻는다.

 

“이거 무슨 제품이야?”
“대략 얼마 정도 해?”
“이거랑 비슷한 모델도 있어?”

 

오늘 입은 옷을 찍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 재킷에는 어떤 넥타이가 어울릴까?”
“이 구두를 신으면 너무 과해 보일까?”
“이 색 셔츠랑 같이 입어도 괜찮을까?”

 

 

예전 같으면 검색어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브랜드명, 제품명, 색상, 모델번호, 후기, 가격 비교, 코디 추천.

 


검색을 잘하기 위해서 먼저 검색어를 잘검색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검색어를 잘 만들어야 했다. 무엇을 물어야 내가 원하는 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 작은 문장 하나를 먼저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화면을 캡처하거나 사진을 찍어 보여주며 묻는다. 그게 훨씬 빠르다. 훨씬 덜 피곤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다.

 

네이버 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하면, 내가 원하는 답보다 먼저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파워링크. 광고. 협찬. 제휴. 추천.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많은 경우 누군가의 마케팅 예산이 내 검색 결과보다 먼저 나를 맞이한다. 나는 정보를 찾으러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설득당하고 있다.

 

‘이걸 사세요.’
‘이 글을 보세요.’
‘이 업체가 좋습니다.’
‘이 링크를 누르세요.’

 

속는 셈 치고 들어간 글에는 정작 내가 원하는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빈약한 정보 위에 검색 최적화를 위한 문장만 길게 얹혀 있다. 문장은 많은데 정보는 적고, 제목은 그럴듯한데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정보는 없고, 글자만 있다.

 

구글은 다를 것 같았지만, 요즘은 그것도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검색 결과 상단에는 AI가 대량으로 만들어낸 듯한 페이지들이 섞여 있고, 몇 년 전의 글이 최신 정보인 척 올라와 있기도 하다.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 가려내는 것 자체가 일이 됐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찾으러 들어갔는데, 알고리즘은 내가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영상을 먼저 보여준다.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보다, 내가 얼마나 오래 화면 앞에 붙잡혀 있을지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언론사 웹사이트도 다르지 않다. 기사를 읽으려 들어갔는데, 제목 아래와 본문 사이, 화면의 옆과 아래에는 광고가 빼곡하다. 글을 읽는 흐름은 자꾸 끊기고, 화면은 기사보다 광고를 먼저 보여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정보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광고를 피해 정보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 됐다.

 

그 피로가 조금씩 쌓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검색창 대신 AI에게 묻기 시작했다.

“요즘 스타트업 투자 트렌드는 뭐야?”
“이 계약서에서 리스크가 될 만한 조항을 찾아줘.”
“클라우드플레어와 AWS는 정확히 뭐가 달라?”
“이 사업 아이디어의 약점은 뭘까?”
“내가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나?”

 

AI는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 협찬 표시를 먼저 보여주지도 않는다. 동문서답하지도 않는다. 내게 무언가를 팔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너무 전문적인 언어를 써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해준다. 더 쉽게 말해달라고 하면 더 쉬운 말로 바꿔준다. 개떡같이 질문해도 찰떡같이 답해준다. 질문을 던질 때 불안하지 않다. 어떤 키워드를 써야 할지, 검색어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경험이 검색보다 훨씬 편안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몸으로 알고 있다.

 

네이버검색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하지만 신뢰를 잃고 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AI가 채우고 있다.

 

 


 

 

AI는 지식을 먹고 자란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긴다. AI는 무엇을 먹고 그렇게 똑똑해졌을까.

 

  • 누군가는 새벽까지 취재했을 것이다.
  • 누군가는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을 문장으로 남겼을 것이다.
  • 누군가는 작은 블로그에 자신만의 분석을 기록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몇 달 동안 자료를 모아 보고서 하나를 완성했을 것이다.
  • 누군가는 삶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며 에세이를 썼을 수도 있다.
  • 누군가는 자기만의 실패와 후회, 생각과 감정을 오래 붙잡고 문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AI는 그것들을 읽는다. 읽고, 학습하고, 요약하고, 재조합한다. 그리고 사용자에게 답을 건넨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선택지가 있습니다.”

 

사용자는 편하다. 나도 편하다. 그런데 콘텐츠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복잡해진다.

  • 내 글을 읽었을까.
  • 그렇다면 어디에 썼을까.
  • 몇 명에게 보여줬을까.
  • 내 이름은 남았을까.
  • 내 사이트에는 누군가 한 번이라도 들어왔을까.

 

예전 검색엔진은 적어도 원문으로 가는 길을 남겨뒀다. 검색 결과에서 링크를 클릭하면 이용자는 기사를 쓴 사람의 홈페이지나 원문 페이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글쓴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다른 글을 읽고, 사이트를 구독하거나 광고를 보기도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콘텐츠를 만든 사람에게 독자가 찾아갈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있고, 그것을 찾는 사람이 있고, 검색엔진은 둘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그 통로가 좁아지거나, 때로는 보이지 않게 사라질 수 있다. 내 글이 AI의 답변 속에 녹아들어도,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며칠 동안 자료를 찾고 문장을 고쳐가며 붙잡았던 글이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내 사이트를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어디에서,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조차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사용자는 답을 얻는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든 사람에게는 방문도, 반응도, 보상도 남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콘텐츠의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가 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존의 문제다.

언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시대다. 광고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있고, 구독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좋은 기사를 쓰고, 오래 취재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반드시 충분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콘텐츠는 어느 날 저절로 인터넷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취재에는 비용이 들고, 글에는 시간이 들고, 영상에는 사람의 노동이 든다. 누군가는 현장을 찾아가야 하고, 누군가는 자료를 여러 번 확인해야 하며, 누군가는 문장 뒤에 숨은 오류와 맥락을 끝까지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AI의 답변 속에서만 소비되고 원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약해진다면, 다음 콘텐츠를 만들 동력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AI 시대에 고민해야 할 것은 단지 “AI가 콘텐츠를 읽어도 되는가”가 아니다. AI가 읽은 콘텐츠의 가치가 누구에게 돌아가고, 그 가치가 다시 다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더 본질적인 문제에 닿게 된다. 바로 ‘선택권’이다.

  • 나는 내 글이 검색에 보이기를 바랄 수 있다.
  • 누군가가 우연히 내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콘텐츠가 AI 학습에 쓰이고, AI 답변 속에 녹아들고,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까지 모두 허락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검색에 노출되는 것과 AI에게 사용되는 것은 다르니까. 누군가가 내 집의 주소를 알고 찾아오는 것과, 누군가가 내 집 안으로 들어와 책장을 훑어보고 그 내용을 자기 말로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그 지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클라우드플레어의 7월 1일자 보도자료 제목이 내 마음 속에 강하게 남았다.

 

 

“Your Content, Your Rules.”
당신의 콘텐츠. 당신의 규칙.

 

 


이 문장은 단순한 보안 설정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선언에 더 가깝다. “내가 만든 것을 누가 읽을 수 있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그 대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나는 말할 권리가 있다.”

 

AI 에이전트가 내 사이트를 방문할 때, 이제 나는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대신해서 왔습니까?”
“무엇을 가져가려 합니까?”
“그것을 어디에 쓰려 합니까?”
“그 대가는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그것은 AI를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 시대에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자기 자리를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AI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AI가 콘텐츠를 읽고 가져가는 일을 나쁘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나 역시 AI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정책을 분석하고, 기업이 마주한 리스크를 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콘텐츠 기획과 정책 분석,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오랫동안 내가 쌓아온 전문성이자 생존의 무기였다. 지금은 기업들에게 AX 전환을 이야기한다. AI가 조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변화 속에 어떤 위험이 숨어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나 자신이 AI로 가장 크게 달라진 사람 중 하나가 됐다. 요즘 나는 클로드 코드에게 묻는다.

 

“Lambda 함수랑 API Gateway는 어떻게 연결해?”
“이 오류 메시지는 왜 뜨는 거야?”
“CloudFront 캐시가 갱신되지 않는데 어디를 봐야 해?”
“DNS 레코드가 제대로 연결됐는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구조가 보안상 문제는 없을까?”

 

그러면 화면 속 AI는 차분하게 답한다.

 

“먼저 이 부분을 확인해보세요.”
“이 설정을 바꾸면 됩니다.”
“오류 원인은 여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명령어를 실행해보세요.”

 

나는 그 설명을 따라간다. 하나씩 클릭하고, 설정하고, 저장한다. 오류가 나면 화면을 그대로 복사해 다시 묻는다. 설명이 어렵게 느껴지면 더 쉽게 풀어달라고 한다.

 

“내가 지금 어디서 막힌 거야?”
“이걸 초보자도 이해하게 설명해줘.”
“처음부터 다시 알려줘.”

 

그러다 어느 순간 화면에 이런 문장이 뜬다.

Build successful.
Deploy complete.

 

 

그 짧은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의 기분은 뿌듯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낯선 나라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동안 내가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세계에, 이제는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고 있는 느낌.

예전 같으면 개발자에게 부탁했을 질문들이다. 누군가의 시간을 얻어야 했고, 기술 문서를 한참 뒤져야 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막막함 앞에서 시작조차 미뤘을 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단 AI에 묻는다. 모르면 묻고, 틀리면 다시 묻고, 이해가 안 되면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AI는 내게 정답만 건네는 도구가 아니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세계의 문턱을 낮춰준 안내자에 가깝다.

 

‘지니랩’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상상했던 서비스가 실제 인터넷 어딘가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확신하게 됐다.

 

‘세상이 진짜 달라졌구나.’

‘이제는 상상만 하던 것을, 적어도 작은 형태로나마 직접 구현해볼 수 있는 시대가 됐구나.’

 

지난달 나는 META-X라는 테크 미디어 플랫폼을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까지 직접 기획하고 구현했다. 기사 입력기에는 AI 생성 기능도 넣었다. AI 에이전트 기능 역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 자신감에 힘입어 국제 메타버스 협회 사이트를 만들었고, 학술 행사 플랫폼도 구축했다. 주변에서 웹사이트나 서비스 플랫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작은 서비스들을 하나씩 실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DynamoDB 테이블을 설계하고, Lambda 함수를 연결하고, CloudFront 배포 설정을 건드린다. 클라우드플레어의 WAF 규칙을 확인하고, Amplify로 배포하고, DNS 레코드를 직접 수정한다.

 

1년 전의 나에게 이 문장을 보여줬다면 아마 웃었을 것이다.

“내가 그걸 왜 해?”
“그게 가능해?”
“나는 개발자가 아닌데?”

 

하지만 지금은 말이 된다. AI 덕분에. 나는 AWS 자격증을 따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개발 부트캠프를 다닌 것도 아니다. 두꺼운 책을 붙잡고 몇 달 동안 코드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물었다. 모르면 물었고, 틀리면 다시 물었고, 이해가 안 되면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기여한 것은 딱 하나였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나는 지니랩을 만들며 몸으로 배웠다.

 


 

 

차별화는 지식이 아니라 직관이다


기업들의 AX 전환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AI 시대에 우리 회사는 무엇으로 경쟁해야 하나요?”

 

나는 요즘 이렇게 답한다. 지식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예전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앞섰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기회를 먼저 발견했고, 더 넓게 아는 조직이 더 나은 전략을 세웠다. 지식은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르는 것은 AI에게 물으면 된다.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코드 구조를 설계하고, 시장을 분석하는 일까지 AI가 함께한다.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활용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모두가 AI 구독료 하나로 상당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제는 남의 것을 모방하거나 배껴서 사업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 작은 아이디어라도 ‘차별화는 어디에서 나올까’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 답이 직관이라고 생각한다. 창조는 늘 모방에서 시작됐다. 인간은 기존의 것을 배우고, 흡수하고, 연결하고, 재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왔다.

AI도 다르지 않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학습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고, 가장 그럴듯한 답을 조합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답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AI는 가능성을 나열한다. 인간은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거다.”

어쩌면 AI 시대에 인간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유레카’를 찾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완성도 높은 초안과 분석이 눈앞에 쏟아질수록, 지금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생각해서다.

AI는 수십 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가장 안전한 선택과 가장 효율적인 방법, 비슷한 사례와 예상되는 결과를 정리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답 가운데 무엇을 붙잡을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어떤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 것인지, 어떤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인지, 남들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할 것인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감각아닐까.

‘유레카’란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 중 물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지금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붙잡고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하며 외치는 감탄사에 가깝다.

유레카는 언뜻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번뜩임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실은 오래 들여다본 문제와 반복해서 실패한 질문, 쉽게 포기하지 않은 호기심이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될 때 찾아온다. AI 시대의 인간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 속에서 자기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사람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 AI는 데이터를 정리한다. 인간은 그 데이터가 왜 지금 중요한지 느낀다.
  • AI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인간은 그 사례들 사이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흐름을 발견한다.
  • AI는 패턴을 학습한다. 인간은 때때로 패턴을 깨뜨린다. 그것이 직관이다. 영감이고, 인사이트고, 어쩌면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감각이다.

 

기업의 AX 전환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AI를 도입했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AI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그 안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끌어낼 것인가. 그 질문의 수준이 결국 기업의 미래를 가른다.

 

그래서 나는 AI시대, 내 삶의 철학(Rule)을 세워나가고 있다.

 


 


밤이 깊어졌다. 모니터 불빛만 방 안을 밝히고 있다. 창밖에는 일요일 저녁의 적막한 도로가 가로등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건너편 건물의 창문에는 아직 몇 개의 불빛이 남아 있고,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젖은 도로 위로 길게 스쳐 간다. 늦은 밤인데도 도시는 완전히 잠들지 못한다. 어딘가에서는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아직 퇴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니랩의 대시보드를 바라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면들. 연결해야 할 기능들. 고쳐야 할 버그들. 내일 또 클로드 코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들. 그런데 이상하게 무겁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보다, 아직 더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나만의 AI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콘텐츠 기획자가 서비스를 직접 만드는 시대.
  • 정책 전문가가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는 시대.
  • AX를 컨설팅하는 사람이 자기 삶의 AX를 직접 실험하는 시대.
  •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구현까지 해볼 수 있는 시대.

 

 

내 마음 속에 스며든 단어들을 계속 되뇌여본다.

나의 콘텐츠. 나의 규칙


나는 생각한다.

‘AI가 내 콘텐츠를 읽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AI 덕분에 나는 이미 더 멀리 왔다. 내가 몰랐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고, 상상만 하던 서비스를 실제로 만들어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렸을 일들을, 이제는 직접 질문하고, 직접 시도하고, 직접 고쳐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콘텐츠에 대한 주도권까지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내가 결정한다.
  • 누구에게 열어줄 것인가도 내가 결정한다.
  • 어떤 조건으로 공유할 것인가도 내가 결정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되, 내 규칙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AI를 밀어내기 위한 방어가 아니다. 오히려 AI와 함께 더 멀리 가기 위해, 내가 지켜야 할 기준을 먼저 세우는 일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으니, 그 변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내 자리를 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커서가 깜빡인다. 브런치 화면 위에서 규칙적으로. 나는 그 빈 화면에 내가 생각하는 규칙들을 적어 내려간다. AI 시대에 내가 만들고 싶은 것들, 지키고 싶은 것들, 그리고 쉽게 넘겨주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AI 시대의 차별화는 지식이 아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이기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더 날카롭게 느끼는 사람이, 더 깊이 질문하는 사람이, 그리고 자기만의 규칙을 세우는 사람이 앞서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고민한다.

나의 콘텐츠. 나만의 규칙. 그리고 나만의 직관을 가지고…

 

 


광화문덕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