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창업자 이성원 님의 AI 네이티브 인사이트 (1)
마케팅 실무하시는 분들, 요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시나요?
버즈빌에서 마케팅을 하는 저의 업무 일부는 대충 이렇습니다. 아침에 메타 성과를 확인하고, 소재 고도화 전략을 클로드 코드와 논의하고, 챗GPT와 함께 광고 소재를 만들고, 수정을 반복하다 다시 메타 광고를 세팅합니다. 여기까지는 몇 년째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달라진 건 그 사이사이에 AI 창이 하나 더 떠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어제도 소재 카피를 AI에게 맡겼다가 40분을 터미널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초안을 받고, 톤을 바꾸고, 문장을 줄이기를 몇 번. 제가 확인하고 다음을 지시해야 작업이 움직였으니까요. 빨라진 건 일 한 덩어리를 끝내는 속도였지, 하루의 모양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트너는 2028년까지 일상 업무 의사결정의 15%가 AI 에이전트에 의해 자율적으로 내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24년에는 사실상 0%였던 수치죠. 그런데 동시에 2027년 말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습니다. 이유로는 비용 증가, 불분명한 비즈니스 가치, 미흡한 리스크 통제 등이 꼽혔어요.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AI를 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치가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격차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요. 최근 버즈빌 사내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꽤 명확한 진단을 들었습니다. AI가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에는 반복해서 나타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번 콘텐츠에서는 마케터의 하루를 기준으로 그 네 지점을 짚어보고, 지금 우리 팀이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버즈빌 사내 강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마케팅 실무 관점에서 재구성한 글입니다. 강연자인 성원님은 버즈빌의 전 CPO로, 현재는 실리콘밸리에서 슬랙 안에서 일하는 AI 팀메이트를 만드는 런베어(RunBear)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팀은 AI 운전석에 누구를 앉히고 있을까?

성원님은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하기 전 AI 활용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질문 네 가지를 던졌습니다. 챗GPT나 클로드를 매일 쓰는가, 시킨 작업이 한 시간 넘게 혼자 돌아가는가, 팀이 쌓아둔 지식을 에이전트가 보고 답하는가, 그리고 시키기 전에 에이전트가 알아서 먼저 움직이는가.
실제로 버즈빌 강연 현장에서 이 질문을 순서대로 던졌을 때, 첫 번째 질문에는 거의 모든 손이 올라갔지만 두 번째부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도구 도입률과 실제 활용 수준 사이의 격차가 이렇게 드러납니다. 눈여겨볼 것은 뒤의 질문으로 갈수록 반드시 더 좋은 모델이나 더 비싼 요금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오히려 일이 많아지고, 팀의 맥락을 참고하고, 스스로 움직이게 할수록 필요한 것은 더 명확한 기준과 더 잘 정리된 맥락입니다.
강연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 AI를 활용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AI 어시스티드는 사람이 결정하고, AI에게 묻고, 답을 받아 다시 사람이 실행하는 방식이에요. 반대로 AI 드리븐은 AI가 일을 진행하다가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만 사람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자동차로 치면 사람이 계속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 AI가 운전하다 필요한 순간에만 사람에게 핸들을 넘기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해진 이유는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혼자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강연에서는 AI로 일하는 속도를 제한해 온 요인을 토큰, 컴퓨팅 파워, 사람의 어텐션 순으로 설명했습니다. 앞의 제약이 줄어들수록 마지막에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결과를 읽고 판단하고 다음을 지시하는 사람의 시간이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AI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일이 막히는 지점은 도구에서 사람 쪽으로 이동합니다. AI 툴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이유예요.
AI를 활용할 때 사람이 필요한 지점은 딱 네 가지입니다
강연에서는 AI가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시키고, 알려주고, 확인하고, 내보내는 것입니다.
마케터의 하루에 대입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소재 브리프를 작성해 시키고, 지난 캠페인 성과와 브랜드 가이드, 타겟 정의를 찾아 알려주고, 나온 카피와 크리에이티브를 읽으며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승인을 받아 광고를 세팅해 내보냅니다. 지금 많은 AI 활용은 이 네 지점 모두에서 여전히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40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AI가 한 번에 일을 끝낸 것이 아니라, 제가 다음 지시를 내리고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작업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네 지점은 성격이 서로 다릅니다. 앞의 두 지점은 AI에게 무언가를 넣어주는 일이고, 뒤의 두 지점은 AI가 만든 결과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앞의 둘만 자동화했을 때 문제가 생겨요. AI가 만들어내는 양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확인과 승인 방식이 그대로라면, 사라진 병목은 뒤쪽에서 더 크게 나타납니다.
AI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팀이 초기에 오히려 더 바빠진 것처럼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재를 만드는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지만, 소재가 열 배로 만들어져도 모든 결과물을 사람이 하나씩 검수하고 승인해야 한다면 조직 전체의 처리량은 열 배가 되지 않아요. 병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생산 단계에서 검수와 승인 단계로 이동했을 뿐이죠. 그래서 이 네 지점은 순서대로 올라가는 계단이라기보다, 하나의 작업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네 개의 병목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자리를 쉽게 놓지 못할까요. 첫 번째는 신뢰의 문제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현재 단계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에요. 두 번째는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그냥 익숙해서예요. 최근 앤트로픽은 클로드의 최신 세대 모델에 맞춰 클로드 코드의 시스템 프롬프트에서 기존 지시의 약 80%를 덜어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모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했던 세세한 규칙 가운데 상당수가, 모델의 판단력이 좋아진 뒤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제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행 절차와 규칙을 세세하게 지정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델의 판단 능력이 좋아질수록 원하는 결과와 기준을 높은 수준에서 명확히 주고, 그 사이의 판단은 AI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실무에서는 손에 익은 방식이 쉽게 남습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과거에 익힌 사용법을 다시 의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이제 사람에게 필요한 중요한 AI 활용 역량에 가깝습니다.
결국 남는 건 기준을 말로 정의하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소재를 세 개밖에 만들 수 없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어떤 세 개를 만들 것인지 고르는 안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과 제작비가 한정되어 있으니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곧 실력이었어요. 그런데 AI 덕분에 같은 시간에 소재를 서른 개 만들 수 있게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여전히 무엇을 만들지 결정해야 하지만, 마케터의 판단력이 쓰이는 위치가 조금 이동해요.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능력만큼, 만들어진 것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를 판별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팀이 그 기준을 명확한 언어로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마케팅 조직은 오랫동안 레퍼런스 몇 장과 “이런 느낌으로”라는 말로도 꽤 잘 일해왔습니다. 받는 사람이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과거 작업을 기억하고, 브랜드의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고, 말하지 않은 의도까지 어느 정도 눈치로 채워줬으니까요.
AI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하면 그동안 사람이 암묵적으로 채워주던 부분이 드러납니다. 좋은 소재란 무엇인지, 어떤 표현은 우리 브랜드답고 어떤 표현은 아닌지, CTR이 높더라도 절대 쓰지 않을 방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자동으로 집행해도 되고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을 때의 비용은 생각보다 조용히 쌓입니다. 요청할 때마다 브랜드 톤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게 되고, 같은 조건을 준 것 같은데 결과물은 매번 다르게 나와요. 나온 결과를 보고 나서야 “이건 아닌데”를 알게 되니 수정 요청이 길어지고, 몇 번 반복하다 결국 담당자가 직접 다시 쓰는 편이 빠르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AI가 못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통과인지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반대로 기준이 문서로 남아 있으면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팀원이 바뀌어도 결과의 편차가 줄고, 무엇보다 어디까지 AI에게 맡기고 어디서부터 사람이 봐야 하는지를 정할 수 있게 되고요. AI 시대에 기준을 말로 정의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 팀의 AI는 어디에서 멈췄을까?
오늘 하루 중 AI가 멈춰 선 순간이 있었다면 네 가지 질문으로 한번 돌아볼 수 있어요. 담당자가 다음 지시를 내려야 했는가, AI에게 필요한 자료가 전달되지 않았는가, 사람의 검수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아 멈춰 있었는가.
팀 단위로 보면 증상은 조금 더 선명합니다. 시키는 데서 막히는 팀은 AI 창을 켜둔 채 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고,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작업도 함께 멈춥니다. 알려주는 데서 막히는 팀은 같은 자료를 한 주에도 몇 번씩 붙여 넣으며, 브랜드 가이드와 지난 캠페인 결과, 타겟 정의를 매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요.
확인하는 데서 막히는 팀은 AI가 만들어내는 소재는 크게 늘었지만 실제 집행되는 소재 수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보내는 데서 막히는 팀은 결과물은 이미 완성됐는데 승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전체 리드타임에서 가장 깁니다.

대부분의 팀은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생산 단계의 병목을 줄이면 검수 단계가 새롭게 막히고, 검수를 자동화하면 최종 승인 과정이 병목이 되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우리 조직이 AI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를 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무에서 AI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하루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하루의 모양이 그대로라면, 그런 하루 열 개를 모아놓은 조직의 모양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카피를 쓰는 시간도 줄고 리서치 시간도 줄지만, AI가 일을 할 때마다 결국 담당자가 다시 확인하고 판단하고 승인해야 한다면 조직 전체의 처리량은 사람의 처리 능력을 크게 넘어서기 어려워요. 앞으로 AI를 잘 쓰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는 어떤 도구를 도입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말로 정의해 두었느냐에서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고 나쁨의 기준이 있어야 AI에게 더 많은 판단을 맡길 수 있고, 어디까지 자동으로 진행해도 되는지 결정할 수 있으며, 어떤 순간에 사람을 불러야 하는지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기준이 있는 팀만이 사람의 자리를 실행에서 판단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일하는 사례는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디어 하나를 던져두면 에이전트가 검토하고, 만들고, 수정하고, 전후 스크린샷까지 정리해 담당자 앞에 가져옵니다. 사람은 모든 과정에 붙어 있는 대신,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해요. 그 출발점은 더 좋은 프롬프트가 아니었습니다. 훨씬 오래되었고, 마케터라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다음 콘텐츠에서는 이 기준을 바탕으로 AI가 사람을 기다리는 네 번을 실제 업무에서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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