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카와 삼쩜삼이 트렌드 대신 선택한 ‘유입 곡선의 기울기’

 

 

쏘카 이우철 프로덕트 리드와 자비스앤빌런즈 김보경 삼쩜삼 마케팅 리드가 한자리에 모였다. 모비인사이드 정지성 모더레이터가 던진 화두는 하나였다.

 

“대표 서비스를 넘어선 플랫폼은 어떻게 다음 성장을 만드는가.”

 

두 회사의 출발점은 단단하다. 쏘카는 전국 5,000여 개의 쏘카존, 2만여 대의 차량, 그리고 1,0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삼쩜삼 역시 가입자 2,450만 명을 자랑한다.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8명이 거쳐 간 셈이다. 누적 환급 신청액만 해도 2조 760억 원에 달한다. “세금 환급” 하면 가장 먼저 삼쩜삼을 떠올린다는 응답이 70%,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는 응답은 90%에 이른다. 김보경 리드는 이 같은 강력한 인지도를 두고 “설명 비용이 들지 않는 자산”이라고 정의했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별도의 마케팅 예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올라섰다는 의미다.

이날 대담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AI를 ‘얼마나 잘 활용했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실패했는가’를 다룬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털어놓은 실패담은 각기 다른 산업과 직무에서 비롯되었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동일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Max Summit 2026,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100명이 100가지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쏘카는 올해 초 전사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당선 팀에 파격적인 포상금까지 내걸자 수많은 아이디어와 제품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우철 프로덕트 리드가 결과물을 점검하며 목격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100명의 구성원이 제각기 다른 100가지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AI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춰졌지만,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도가 저마다 달라 결과물 역시 제각각으로 파편화되었다.

쏘카의 해법은 새로운 AI 도구 도입이 아닌 표준의 수립이었다. 전년부터 준비해 오던 디자인 시스템 구축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전사에 배포했다. 디자인 시스템이란 버튼의 형태와 색상, 폰트 크기, 여백 등을 회사 차원에서 규격화해 둔 일종의 부품 상자다. 이를 AI가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구조로 재설계하자, 누가 무엇을 개발하든 쏘카만의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성원이 AI로 작업할 때 회사의 품질 기준을 자동으로 따르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운 셈이다. 이 리드는 이를 AI 시대에 회사가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정리했다.

체계가 잡히자 효과는 압도적인 속도로 나타났다. 최근 출시된 신규 서비스의 경우 PM 1명과 개발자 1명이 단 한 달 만에 프론트엔드 UI부터 어드민, 백엔드, 데이터베이스 설계까지 전 과정을 끝마쳤다. 단순 프로토타이핑은 단 몇 시간, 일관된 UI를 갖춘 완성형 서비스 개발조차 며칠이면 충분한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사례는 예약 캘린더 UI 도입 건이었다. 이 기능을 구현해 낸 이는 개발자가 아닌 마케터였다.

 

디자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AI에게 코드를 작성하게 한 뒤, 자연스러운 예약 유도 문구와 함께 실제 서비스에 바로 적용했다. 이전 같았으면 개발팀에 요청표를 전달하고 우선순위에 밀려 흐지부지되었을 일이 순식간에 현실화된 순간이다.

 

 

Max Summit 2026,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누구에게 보낼지는 맡겼고 무슨 말을 쓸지는 못 맡겼다


삼쩜삼의 사례는 정반대 방향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삼쩜삼은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핵심 창구로 기존 이용자 대상 알림톡과 앱 푸시를 활용해 왔다. 문제는 메시지를 자주 발송하면 알림을 차단하는 이용자가 늘어나고, 너무 뜸하게 발송하면 경쟁사로 이탈한다는 점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략 회의에서 가장 길게 논의되던 난제였다. 삼쩜삼은 올해 이 타깃 선별 과정을 확률 모델에 전면 맡겼다. 이용자 개인별로 지금 메시지를 받았을 때 반응할 확률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주는 시스템이다. 반응 확률이 높은 순서대로 발송하고 그 결과가 다시 AI 학습 데이터로 축적되면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정교해졌다. 무작위 발송과 비교했을 때 퍼포먼스는 무려 6배나 차이가 났다.

김보경 리드가 주목한 지점은 단순히 6배라는 성과 수치가 아니었다. 누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를 두고 길게 이어지던 회의가 사라졌다는 점, 즉 타깃팅은 기계가 담당하고 사람은 전체적인 목표와 기준을 설계하는 역할로 전환되었다는 변화였다.

 

 

누구에게 보낼지 선별하는 영역만큼은 AI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반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의 영역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세무 분야 특성상 법령 내용에 오류가 생기면 곧바로 컴플라이언스 문제로 이어지는데, AI가 생성한 블로그 콘텐츠에서 그럴듯한 오답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현재 삼쩜삼은 AI가 작성한 글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전, 법무팀 기준의 사실 관계 검증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더 큰 난관은 퍼포먼스와 CRM 광고 소재였다. 같은 세금 환급 대상자라 하더라도 고객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니즈는 천차만별인데, AI는 자꾸 뻔하고 일반화된 메시지만 내놓았다. 실제로 진행된 A/B 테스트에서도 숙련된 마케터가 기획한 소재가 AI가 만든 소재를 지속적으로 압도했다.

이처럼 현실적인 한계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솔직하게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의 AI 도입 사례 발표에서는 쉽게 생략되곤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핵심은 쏘카와 삼쩜삼 두 회사가 도출해 낸 해법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쏘카가 디자인 시스템을 규격화해 배포했듯, 삼쩜삼 역시 세그먼트에 대한 상세 정의와 과거 이력, 기존에 좋은 성과를 냈던 소재의 성공 요인을 AI가 학습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으로 시스템을 개편하고 있다. 단순히 더 성능 좋은 최신 AI 모델로 교체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고유의 노하우와 맥락을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정리해 주었을 뿐이다.

 

 

Max Summit 2026,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안에서 하던 정리를 이제 밖에다 한다


이날 대담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미래를 내다본 대목은 그다음 이야기였다. 조직 내부에서 진행하던 작업, 즉 우리가 가진 노하우와 맥락을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이 이제 조직 울타리 너머 외부를 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쏘카는 올해 초 공식 웹사이트를 새로 구축했다. 모바일 전용 앱으로 출발한 서비스 특성상, 그동안 대부분의 정보가 앱 안에만 갇혀 있었다는 것이 이우철 리드의 설명이다. 이전까지는 로그인하지 않으면 쏘카존의 위치나 차량 대여 가격조차 확인할 수 없는 구조였다. 문제는 AI 검색엔진이 앱을 실행하거나 로그인해 들어가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AI가 접근해 학습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주소만 치면 들어갈 수 있는 공개된 웹페이지뿐이다. 소비자들이 AI에게 여행 일정이나 이동 수단을 물어보는 시대에, 그 대화의 답변 속에 쏘카가 등장하려면 AI가 읽을 수 있는 웹 환경이 필수적이었다. 쏘카가 제공하는 가치와 이용 가능한 차량 정보를 웹으로 옮겨 담았고, ChatGPT와의 연동까지 마쳤다. 나아가 Open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추진 소식도 덧붙였다.

삼쩜삼은 AI 환경에서의 ‘측정’ 관점으로 접근했다. 고객들이 AI에게 실제 던질 법한 대표 질문 수백 개를 사전에 도출했다. ‘종합소득세 환급받는 법’, ‘프리랜서 세금 신고 대행해 주는 곳’ 같은 검색어들이다. 이를 유형별로 분류한 뒤, 매주 AI 검색엔진에 직접 질문을 던져 답변 결과에 삼쩜삼 브랜드가 노출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철저한 사실 관계 검증 파이프라인을 거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 검색 시대에는 정확한 정보가 곧 브랜드의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세운 엄격한 품질 기준이 외부 AI 검색 생태계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Max Summit 2026,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그래서 이 흐름이 얼마나 빨리 커지고 있나


김보경 리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던져봐야 할 질문을 제시했다. AI 노출을 최적화하는 스킬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실제로 내 서비스와 관련된 정보를 찾고 판단하는 과정 전체를 AI 에이전트에 맡기는 사용자 행동 패턴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삼쩜삼은 AI 답변 내 브랜드 노출 빈도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웹사이트 방문자 분석 도구를 활용해 AI 검색엔진을 거쳐 유입된 실제 이용자 수의 월별 추이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방문자가 어떤 경로를 지나 유입되었는지는 분석 도구에 유입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삼쩜삼은 이 유입 성장 곡선의 기울기와 속도에 맞춰 리소스 투입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출 최적화 기술에 뛰어드는 것 못지않게 변화의 실제 규모와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핵심을 짚은 셈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광고 지면을 판매하는 매체사들의 고민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사 오프라인 매장과 앱을 광고 매체로 확장 중인 올리브영 역시 측정 불가능한 매체는 아무리 효과가 좋아 보여도 재집행을 망설이게 된다는 지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환기한 바 있다. 새로운 지면이나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무작정 올라탈 방법이 아니라, 그 지면의 영향력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커지고 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확실한 잣대다. 최근 AI 답변 내 브랜드 노출을 최적화하는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가 기존 SEO의 뒤를 잇는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지만, 리소스 투입 범위를 유입 곡선의 기울기에 맞춰 전략적으로 조율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보기 드물 만큼 실용적이고 청량하다.

 

 

Max Summit 2026,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도구가 똑같아지면 격차는 다른 데서 벌어진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 이우철 리드는 ‘AI 네이티브 쏘카’를 답으로 내놓았다. 창업 10년이 넘은 회사인 만큼,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는 전혀 AI 네이티브가 아니었다는 솔직한 회고가 이어졌다. 김보경 리드는 고객이 삼쩜삼을 찾을 때는 AI가 서비스를 추천하고, 삼쩜삼이 고객을 찾을 때는 AI가 최적의 타이밍과 접점을 판단하는 구조로 미래를 정리했다.

두 사람의 답변 모두 표면적으로는 AI를 주어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보여준 본질은 그 반대에 가깝다. 100명의 구성원이 제각각 만들던 결과물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AI가 아닌 ‘디자인 시스템’이라는 기준이었고, 확률 모델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던 바탕 역시 수년간 축적된 시즌 데이터와 고객 행동 패턴 위에서 정교한 질문을 설계해 낸 인간의 기획력이었다. 김보경 리드가 마케터의 본업을 ‘소비자의 심리를 읽어내고 이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일’이라 정의하며, AI 시대가 되어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고 다만 검증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을 뿐이라고 덧붙인 대목이 바로 이날 대담의 핵심 결론이다.

 

 

강력한 도구가 모두에게 화폐처럼 주어지는 순간, 경쟁력의 격차는 더 이상 도구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무엇을 축적해 왔으며, 그것을 기계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얼마나 밀도 있게 정리해 두었는지에서 격차가 벌어진다. 안으로는 디자인 시스템과 세그먼트 정의서로, 밖으로는 AI가 학습할 웹 환경과 브랜드 노출률 추적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노력이 결국 같은 궤를 그리는 이유다. 마케터가 만든 광고 소재가 AI 소재를 계속해서 압도했다는 사실은 AI의 무능함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마케터가 머릿속에 가두어 둔 핵심 노하우와 직관이 아직 회사의 시스템 어디에도 문서화되어 기록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이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