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동맹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자국의 핵심 이익과 무관한 타국의 분쟁에 원치 않게 휘말리는 ‘연루(Entrapment)’의 덫과, 정작 결정적 순간에 동맹국으로부터 안보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기(Abandonment)’의 공포 사이에서 끊임없이 비용과 편익을 저울질해야 한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 글렌 스나이더(Glenn Snyder)는 이를 ‘동맹의 딜레마’라 불렀다. 그리고 현재 중동과 유럽의 전쟁과 요동치는 한반도 안보 정세는 이 두 가지 상반된 리스크가 대한민국에서 동시에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초유의 복합 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미-이란의 군사적 대치가 장기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선이 진흙탕 소모전으로 굳어지면서, 미군의 글로벌 방위 역량은 전례 없는 과부하 상태에 직면했다. 패트리엇과 사드(THAAD)를 비롯한 핵심 전략 자산이 빠르게 고갈되자, 워싱턴은 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우크라이나 방공 무기(천궁-Ⅱ) 지원이라는 막대한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우리의 안보 우선순위와 동떨어진 역외 전장에 국력과 방어 자산을 차출당할 ‘구조적 연루’의 위험이다.

 

 

여기에 제이비어 브런슨(Xavier Brunson)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반도를 “중국 앞에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하고 다영역특임부대(MDTF) 배치를 언급하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기본임무를 대북 억제에서 ‘대중국 견제(전략적 유연성)’로 확장하려는 이 구상은, 유사시 한반도가 대만해협 등 미·중 패권 충돌의 최전선으로 자동 연루될 위험을 크게 높인다.

반면, 우리가 보장받아야 할 방어 공약의 실효성은 오히려 희미해지고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전 참전을 매개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전수받으며 전술핵과 극초음속 타격 수단을 고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이 이미 두 개의 전쟁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증원 전력이 적기에 전개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군사 전문가들도 의문을 제기한다. 고고도 상층 요격망 부족에 대해서도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북한 및 중국의 비대칭 미사일 도발에 대한 방어 유연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착 부당한 연루 위험에 대한 주권적 거부권을 담보하는 전작권 환원에는 까다로운 잣대만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배제’ 원칙을 견지하고, 호르무즈 파병 요청에도 비살상 소해함이나 다국적 임무단 참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연루를 차단하려 애써왔다.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시험발사 성공, 고위력 탄도미사일 현무-5 운용, L-SAM과 천궁-Ⅱ 대량 양산, 8,000톤급 핵추진잠수함(SSN) 추진 등 독자적 다층 방어망을 확충하며 방기 위험에도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별로 대처하는 수동적 방식만으로는 이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스나이더는 ‘동맹의 딜레마’ 이론을 제시한 명저 《동맹 정치(Alliance Politics)》에서 ‘자율성과 안보의 교환(Trade-off)’ 개념도 제시했다. 방기의 공포에 짓눌려 동맹에 매달릴수록 자율성을 잃고 연루의 늪에 빠지며, 반대로 연루를 피하고자 거리를 두면 결정적 순간에 고립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동맹을 영구불변의 낭만적 우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지속적인 협상의 장’이자 냉철한 ‘이익 계약’으로 정의하며, 상대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대안적 선택지(Exit Option)’를 확보한 국가만이 연루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강력한 레버리지를 쥔다고도 했다.


글로벌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의 2026년 평가 기준,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세계 5위다. 동맹국들의 방위산업 공백을 적기에 메울 수 있는 독보적인 K-방산 제조 역량 또한 갖추고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대체 불가능한 전략 거점이며, 미군 역시 동아시아 전초기지로서 주한미군 기지가 절실하다.


이제 미국과의 지나친 감정적 충돌은 지양하되,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이나 심지어 철수까지 포함한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화를 각오하는 적극적 ‘밀당(전략적 협상)’에 나서야 할 때가 왔다. “주한미군 규모가 조정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안보 패닉에 빠지는 방기의 공포를 떨쳐낼 때 비로소 상호 호혜적인 ‘조건부 거래(Conditional Bargaining)’의 공간이 열린다.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혈맹은 완성된다.

 

 

 


박승룡님의 브런치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