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주권이라도 지키기 위한 기획자의 고민

 

 

‘데이터는 4차 산업 시대의 원유’라는 정의가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새로운 시장 발굴과 기존 사업 모델의 효율화에 별 다른 아이디어가 떨어진 기업들이 데이터를 통해 직관으로 다 파악할 수 없는 부분까지 사업의 영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데이터는 최근 가장 핫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데이터 엔지니어는 예전에 존재하던 가치 대비 최근 찾는 곳이 더 많아졌고 분석가는 공급이 부족해 전공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름 있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배우고 전향하는 직업의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빅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들만 매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때죠.

하지만 이런 활발한 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기업들이 대응하는 방향은 아직 보수적입니다. 철저히 기존 프레임 안에서 데이터 시대를 바라보는 철학을 가진 회사들이 많습니다. 사실 IT 기반이 아닌 기업에서는 데이터에 그렇게 목맬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기업의 핵심 역량은 제조나 서비스로 이미 시장의 진입 장벽을 어느 정도 만든 상태니까요. 굳이 99%를 100%로 만든다는 빅데이터에 의지하지 않아도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것은 크게 상관없으니까요. 사실 데이터 분석은 어느 기업에서든 주류는 되기 힘든 게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데이터는 분명 기업 활동의 부수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자금이나 상품의 흐름과 저장에 비하면 데이터는 신경 쓸 비중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기업에게 데이터는 관심 밖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의 가치가 쉽게 절하됩니다. 데이터 경영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이미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까지 말이죠. 이게 기업을 위한 방향일까요?

사실 데이터에 문외한 기업이라도 데이터는 충실히 쌓여 있습니다. 언급한 상품과 자금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관련 데이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출과 재고, 서비스 이용에 대한 데이터는 오히려 오랜 기간 개선활동을 통해 안정화가 된 기업이 더 좋은 체계와 품질의 데이터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제가 만나 본 많은 ‘구식’의 기업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말씀드린 대로 거기서 가치를 찾을 생각이 없거나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전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부 사일로의 위력이기도 하고 전문 기획/개발 자원이 없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기업들의 데이터를 노리는 기업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정말 원유의 개념으로 이 데이터를 바라보는 것이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기업들의 충실한 레거시 시스템에서의 데이터를 모아서 가치 있는 양으로 만들어서 다른 의미를 창출하고 데이터 자체를 판매하거나 본인들이 영위하는 사업에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싼 값으로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존 기업들은 데이터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손쉽게 외부 기업에 내부 데이터를 넘겨줍니다.

 

이전에 데이터 관련 미팅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데이터를 깔고 앉은 사람이 결국 이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뛰어난 딥러닝 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스펙 좋은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이 이기지 않을까 하는, 기획은 했지만 데이터는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의 편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말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보유한 만큼 영향력을 가지는 기업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모든 기업들이 고객 정보를 제삼자 제공 동의 여부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원합니다. 처음에 돈이 되어 보이지 않았던 무작정 많은 고객에게 받았던 멤버십 정보는 이제는 공공 데이터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데이터가 돈이라는 인식이 먼저 들어간 기업들이 투자해서 모은 고객 정보는 이미 그 위에 쌓인 고객의 구매와 행동 정보가 더해져 대체 불가능한 양의 인사이트를 갖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많은 쪽이 발언권을 갖고 같은 기업 내부에서도 고객 수가 더 많은 쪽이 주도권을 갖고 데이터 정책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데이터 주체성을 스스로 잃는 정책을 자초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데이터를 노리는 기업에서 기존에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용할 의지가 없는 기업을 상대로 저렴하거나 무료로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면서 데이터 소유권은 본인들이 가져가게 만드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렇게 제안이 이뤄지면 ‘구식’기업들은 돈 안 들이고 분석을 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눈 앞의 경제적 이익에 선뜻 응하고 맙니다. 물론 기업의 전략이 저마다 다르니 이를 가지고 모두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데이터의 가치를 알아버렸을 때 이미 종속되어버린 시스템이나 더 많은 돈을 주고 서버나 분석 솔루션을 제공한 업체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당장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갖고 있는 데이터를 넘겨주게 되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고 기업의 중요한 정보가 이미 외부로 새어나가고 난 다음이니까요.

고객들이 여기서 무엇을 사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여기서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무엇인지 찍히는 데이터는 굳이 많이 말하지 않아도 중요한 대외비입니다. 귀납적으로 데이터를 통해 기업 내부의 전략이나 운영 상황을 대부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외부 빅브라더가 이 정보를 경쟁 업체나 결국 돈 써서 받을 컨설팅 업체에 주게 된다면 ‘구식’기업은 자기가 어렵게 만든 데이터로 다른 기업에게 전략을 노출하고 자기 돈 들여 다시 컨설팅을 받는, 장기적으로는 웃지 못할 경우를 맞이하게 됩니다.

데이터 자산이란 무엇인가. 데이터를 자금이나 상품처럼 하나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 고객과 우리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준비와 접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활동들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죠.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와 활용 방법을 계속 고민해서 작은 것이라도 연속적으로 계속 시도해보는 것. 그것을 기다리고 믿는 구성원들의 합의. 이런 토대 없이는 당장의 비용, 당장 사업 모델을 유지하는 매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데이터는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죠. 소중하게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생각 하에 적어도 데이터 주권만큼은 서로 주고받는 효과가 비슷하지 않으면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 머리가 있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접근하는 쪽은 자신에게 유리한 설계를 가지고 만남을 만듭니다. 대응하는 쪽은 ‘구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고 서로의 어깨를 비슷하게 맞추는 활동이라도 해야 제대로 된 비즈니스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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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