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셜커머스(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쿠팡이 깜짝 소식을 발표합니다.

쿠팡은 31일 투자개발실을 신설하고 정상엽 전 캡스톤파트너스 투자팀장을 투자개발실장으로 영입했다고 31일 밝혔다. 개발실은 앞으로 사업 가치가 높은 회사를 대상으로 투자나 M&A를 추진할 계획이다. 쿠팡은 우선 기존 사업과 연계 가능성이 큰 ▲ IT기술 기업 ▲ 커머스(상거래) ▲ 디지털 콘텐츠 ▲ 핀테크(금융기술) 분야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 – 쿠팡, 본격적으로 M&A 나선다…투자개발실 신설(연합뉴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소식이 이제야 기사화된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일 텐데요. 쿠팡이 투자개발실을 신설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발실은 앞으로 사업 가치가 높은 회사를 대상으로 투자나 M&A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잖아!!”

네, 그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이를 논하기에 앞서 투자개발실 신설 소식이 나자마자 빠르게 출고된 이코노믹리뷰의 분석 기사를 한 번 보겠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하나의 기술력과 서비스로 시장에서의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담론까지 관통하려는 쿠팡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데이터 분석으로 MD업종의 멸망을 예고하고 실시간으로 취향을 큐레이션하는 기술력과 결제, 기타 다양한 ICT적 발전을 원스톱 패키지 솔루션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아마존이 지향하는 거대한 플랫폼 생태계에 매우 미비하게 다가섰다는 분석이다. 다만 방향성은 필요해 보인다. 내부적으로 계획이 있겠지만, 아마존이 이커머스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파생 서비스를 힘있게 추진해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준 지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 인수합병에 꽂힌 쿠팡, “하나만 잘하면 곤란하죠”(이코노믹리뷰)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쿠팡의 그간 행보와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쿠팡은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제품 소싱, 판매, 배송/물류의 파이프라인을 완성해왔습니다. 즉, 관련 업체와의 협업으로 생태계를 만들어왔던 티몬과는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지난 해 10월에 인터뷰했던 신현성 티몬 대표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쿠팡은 ‘모든 걸 사들인 뒤 내재화하는 방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존이 막 설립됐을 1990년대 인프라가 없었던 시절에 통했던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에는 가용 가능한 자원이 많습니다. 티몬은 이미 주어진 자원들을 잘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시너지를 내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버를 볼까요? 자가용을 구매하지 않고도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차들을 앱으로 묶어서 50조 원 가치의 회사가 됩니다. 배송 역시 이러한 공유경제의 요소가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측면에서 다른 이커머스 업체와 협력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최근 알리바바의 티몰에 입점하기도 했죠. 이러한 부분도 공유경제의 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신현성 티몬 대표 “티몬의 미래? 공유경제커머스 플랫폼”(모비인사이드) 

서두에 수많은 물음표를 던졌는데요.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관점으로 정리했습니다.

#빠르게, 그리고 확장 가능하게

오늘 발표에서 모티브로 언급된 기업은 3개사입니다. 아마존, 페이스북, 카카오. 세 회사의 특징으로는 ▲빠른 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플랫폼 기업이며 ▲서비스 확충을 위한 공격적 인수합병을 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세 기업은 모두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거대 기업인데요. 쿠팡 역시 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더욱 빠르게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투자 개발실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쿠팡의 직원 수는 계약, 파견직 포함 4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앞으로 2년 간 3만9000명을 채용하겠다는 발표를 작년에 했으니, 거대기업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겠죠.

출처: 쿠팡

덩치가 커지면 당장 어려운 점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규모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커지면 당장에 회의 숫자부터 증가합니다. 그리고 프로세스 역시 복잡해질 수밖에요. 쿠팡 역시 이에 대처하고자 잦은 조직개편을 하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했단 후문도 있습니다.

이에 가장 좋은 방법은 초기 스타트업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 합병해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겠죠. 마침 기사에서 언급된 정상엽 실장의 전 직장 역시 모바일과 게임 분야 3년 미만의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인 것이 우연은 아니겠죠.

이러한 전략을 잘 펼치고 있는 회사는 카카오입니다. 지난 해부터 카닥, 파킹스퀘어, 카닥 등 스타트업들을 속속들이 인수하며 자동차 O2O의 파이프라인을 완성하고 있죠. 기술력을 가진 팀과 콘텐츠를 흡수해 자사의 청사진을 확대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쿠팡 역시 지난 5~6년 간 ‘소셜커머스’라는 혁신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대로 1~2년 뒤라면 오픈마켓처럼 ‘기존 전자상거래 업체화’가 되는 건 명약관화합니다. 쿠팡맨과 로켓배송으로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으나, 요즘 이러한 기업들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죠.

최근 1~2년 로켓배송 등으로 큰 돈을 소모하면서 적자폭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브랜드 이미지마저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악순환의 구렁텅이로 빠질 가능성도 높죠.

#돈을 벌어야 한다…실리콘밸리도?

쿠팡이 ‘쿠팡’이란 이름으로만 투자를 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쿠팡에 투자개발실이 신설된 건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 투자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포워드벤처스LLC입니다.

쿠팡의 지배구조는 다소 독특하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포워드벤처스는 미국법인 포워드벤처스LLC의 100% 자회사다. 포워드벤처스LLC의 사업실적이나 지분 등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10년 쿠팡을 설립한 김범석 포워드벤처스 대표이사가 최대주주라는 것만 알려진 정도다. 결국 쿠팡은 김 대표가 미국에서 포워드벤처스LLC를 창업하고 이 회사가 한국 내 포워드벤처스를 설립해 운영하는 구조로 보인다. 업계에서 쿠팡을 사실상 외국계 기업으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1조 품은 쿠팡] 주인은 美 벤처…해외 자본 100%(뉴스핌) 

쿠팡 USA 페이지

쿠팡의 지주사인 포워드벤처스LL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등록된 회사입니다. 그간 받은 투자금들은 일단 포워드벤처스로 간다고들 하죠. 이와 관련 항간에서는 쿠팡이 실리콘밸리에 투자할 조건 역시 갖췄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왜 쿠팡이 실리콘밸리 기업에 투자를 해야할까? 현재 상황과 대비해 생각할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쿠팡이 최근 1~2년 사이에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던 바 있습니다. 올해도 만만치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2014년부터 약 1조5500억원 규모의 거액 투자금을 받은 쿠팡으로서는 어떻게든 재무적인 성과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단기적 수익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말이죠. 결국에는 쿠팡이 한국에서 펼치고 있는 판매-물류-배송의 이상적인 모델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만한 투자, 혹은 수익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처투자사의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매력적일 것입니다. 투자기업을 세운 데브시스터즈의 상황이 오버랩되기도 하네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쿠팡이 물류, 배송의 혁신 성과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확장해갈 의지가 있다는 겁니다. 시장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한 관점이든,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하든 관점이든, 쿠팡의 투자개발실 설립은 사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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