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은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장소이다. HMD(Head Mount Display)를 착용하지 않지만, 자동차 모형 오락기에 앉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면 실제로 운전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딪히면 차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가상현실에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상황을 현실로 재현해주는 기기를 ‘시뮬레이터’라고 한다. 정적인 콘텐츠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용자는 더 몰입감 있는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VR HMD와 연동되는 시뮬레이터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킨텍스에서 진행된 플레이엑스포에서 ‘이노시뮬레이션’은 국내 최초로 개인용 VR 시뮬레이터를 공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설립된 이노시뮬레이션은 철도, 자동차, 군사훈련에 필요한 교육용 시뮬레이터를 제작해온 회사로 가상현실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한국 시장을 개척해왔다. 현재 국내를 넘어 해외 18개국에 시뮬레이터를 수출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및 중국에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가상현실에서 시뮬레이터는 어떤 존재일까. 지난 6월 8일 이노시뮬레이션 조준희 대표를 만나 그들이 걸어온 가상현실 시장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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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

1996년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니던 조준희 대표는 산학 프로그램에 선정돼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의뢰로 지도교수와 함께 자동차 시뮬레이터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기술개발을 위한 정보도 부족한 시절, 갖춰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는 조 대표가 시뮬레이터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 가상현실 기술은 인터렉티브 요소가 강조된 HMD 기반의 기술을 말하고 있는데요. 제가 처음 시뮬레이터를 접했을 때는 가상공간에서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느끼는 기술을 뜻했죠. 막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라 자료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교수님이 미국에서 보시던 책 몇 권이 저희에겐 유일한 희망이었죠. 그 때 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지금까지 발전해왔습니다.”

조 대표는 프로젝트 성공 이후 회사로 복귀했지만, 시뮬레이터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뮬레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은 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해보자’라는 각오로 지도교수와 함께 실험실 창업을 하게됐다.

“가상현실 및 시뮬레이터는 융복합 산업입니다. 기계, 전기, 전자, 콘텐츠, 교육, 심리 등 다양한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죠. 많은 시간과 비용 투자가 필요한데, 당시 내수시장은 이것을 충족할 여건이 안됐죠. 반면, 해외 상황은 달랐습니다. 벤츠나 도요타는 시뮬레이터 개발을 위해 약 700억~8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죠. 해외 서비스를 보며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시뮬레이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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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뮬레이터는 획기적이었고, 이 기술을 활용한 시장이 곧 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비싼 시스템 가격이었다.

“하이엔드 그래픽카드 한 장에 천 만원을 호가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그래픽카드에 비해 성능은 훨씬 떨어졌죠. 획기적인 기술이었으나,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할 소비자가 없었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아 시장 경쟁자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정해진 시장 가격도 없어서 고객 예산에 맞춰 납품하는 수준이었죠. 반면 2013년 약 300달러에 출시된 오큘러스 HMD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HMD와 콘트롤러로 가상현실 전체를 대변할 수 없었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모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시뮬레이터보다 저렴하고 HMD와 체험장치에 최적화된 솔루션이 필요했다.

“2014년 오큘러스가 회사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눈적 있습니다. 기술력은 충분했지만, 개인용 시뮬레이터를 납품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죠. 올해 가상현실이 주목받고 멀미에 대한 이슈가 커지면서 개인용 시뮬레이터 보급에 착수했습니다. 가격을 10분의 1로 낮추고 컴팩트하게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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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엑스포에서 이노시뮬레이션이 선보인 개인용 시뮬레이터

VR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멀미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VR HMD와 입체음향으로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지만, 화면과 몸으로 느끼는 움직임에는 괴리감이 존재했다. 그는 움직임이 추가 됐을 때, 멀미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에서 멀미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멀미현상을 줄일 수는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시스템의 조화입니다. 영상, 음향, 모션 등 한 부분에서 이질감이 발생하면 바로 멀미로 이어집니다. 영상과 음향에 대한 기술은 개발되고 있지만, 움직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죠. 작은 움직임만 추가 되도 멀미현상이 감소합니다. HMD를 빨리 벗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되죠. (웃음)”

이노시뮬레이션은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해 모션 데이터를 쉽게 관리 및 편집할 수 있는 툴 또한 공급할 예정이다. 이어서 조 대표는 가상현실의 성숙한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와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체간의 경쟁으로 하드웨어가 저렴하게 보급되면 가상현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할 것입니다. 이 때, 가상현실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콘텐츠 및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이용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개선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뮬레이터 기술은 가상현실에 필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오늘날 가상현실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감각 중 시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향후 모션을 비롯한 촉각 등 아직 발전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이노시뮬레이션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뮬레이터 기업으로 국내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노시뮬레이션은 아직 작은 회사지만, 시뮬레이터 기술은 해외 어디서든 밀리지 않습니다. 올해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하는 원년으로 생각하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업체와 협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내년 CES에서는 VR을 전시하는 많은 기업들이 저희가 개발한 개인용 모션 시뮬레이터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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