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네 뭐야…무서워”

1인 미디어가 탄력을 받으며 MCN이 고개를 들더니, 이제는 중국에서 ‘왕홍 경제’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카페24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의장에서 중국 전자상거래 수출 전략 세미나를 열었는데요. 중국에서 1인 모바일 방송을 하는 민은 씨가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민은 씨는 아프리카TV BJ나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와 비슷한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고 이를 중국에서는 ‘왕홍’이라 부르죠.

민은 씨는 메이리연합그룹(美丽联合集团) 산하 유니에 소속되어 있으며 패션 및 뷰티 전문입니다. 무려 57만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접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답니다. 생방송 평균 유입량만 10만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녀가 뜨면 하루 평균 1000개의 주문서가 날아온다고 합니다. 어마무시 그 자체입니다. 메이리연합그룹은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중국 4위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모구지에(蘑菇街), 메이리슈어(美丽说), 유니(UNI) 등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죠. 이들은 왕홍을 적극적으로 섭외해 5만 명 이상의 왕홍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시야를 넓혀 왕홍을 볼까요. 왕홍의 대표주자는 민은 씨를 비롯해 405만명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장다이’, 141만명의 ‘쉐리’, 30만명의 ‘자오다시’ 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발전하는 중국 ICT 인프라를 활동무대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유명 왕홍인 ‘파피장’의 경우 중국의 유명 콘텐츠 기업인 ‘뤄지스웨이’ 등 4개 기업으로부터 총 1200만 위안의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먼저 중국 ICT 인프라입니다. ‘제38차 중국 인터넷 발전상황 통계보고서(地38次中国互联网发展状况统计报告)’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 인터넷 사용자는 7억10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는 6억5600만 명, 전체 인터넷 사용자에 중 92.5%가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을 접속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45.8%인 3억2500만 명은 전자상거래에 있어 1인 미디어인 왕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참고로 전자상거래 사용자 인구는 4억4800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온라인 결제 사용자는 4억5500만 명, 모바일 온라인 결제 이용자는 4억24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왕홍은 이러한 거대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급성장했습니다.

물론 판만 깔린다고 왕홍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죠. 국내 MCN 사업의 발전과 비슷하게 왕홍도 각자의 캐릭터, 친근함, 전문성을 내세웠습니다. 내 취향을 저격하는 옆집 예쁜 언니의 친절한 설명이 온라인 및 모바일 플랫폼을 타고 마구마구 쏟아집니다. 왜 성공을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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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지점

국내 MCN들이 아직 소극적인 방법론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잡아가는 것과는 달리, 왕홍은 이를 전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분위기입니다. 특정분야 SNS 플랫폼과 대형 종합 SNS 플랫폼, 전자상거래 플랫폼 및 에이전트 플랫폼과 브랜드 제공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수준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는 국내 MCN과 유통 플랫폼과의 결합이 아직 간 보는 수준인 것과 비교해 상당한 발전입니다.

그 과정을 하나의 판매 포트폴리오로 삼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모구지에를 운영하는 메이리그룹의 천치 대표는 “이제는 상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소셜 커머스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유명인을 중심에 두고 그가 판매하는 상품이 아닌, 상품을 설명하는 과정까지 비즈니스 마케팅으로 치환시키는 극적인 장치를 보여줍니다. ‘정말 똑똑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누구나 생각할수 있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이에요.

하지만 잘 나가는 왕홍에도 불안한 지점은 있어 보입니다. 대단환 왕홍이지만 국내 1인 미디어, MCN의 오래된 문제이기도 한 수익성은 빠르고 영악하게 풀어가도 그 이상의 장기적 생명론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누누히 강조되는 부분이지만, 1인 미디어는 친근함이라는 생명력이 방대한 초연결의 네트워크를 타고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잡아내지 못했던 내밀한 욕망을 건드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쁜 화장법 알려줄게요, 이거 사봐요”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수익성을 향한 비전이자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왕홍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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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만 위에 말한 불안지점은 MCN 모두가 풀어나가야할 지점이며 굳이 왕홍에만 포커싱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상황을 두고 보면 더 불안해집니다. 정확히 말해 왕홍 경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나쁘지 않고 긍정적인 방법론이지만 ‘이것 정도는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느낌이 드는 대목을 말하겠습니다.

지난달 27일 모던캐피탈의 ‘제이슨 쉬(Jason Xu)’ 대표가 방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이슨 쉬 대표는 “중국에서 한국 제품이 워낙 인기가 많으며, 화장품을 넘어 다양한 패션 분야 등 디자인적 측면이 높은 제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한국으로 간다고 하면 쇼핑 목록을 적어주는 지인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도 부연해 눈길을 끕니다. 더불어 중국은 IT 및 전자 분야의 강세가 두드러지지만, 상대적으로 디자인 등 예술의 영역은 관심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한국 디자인, 즉 예술적 가치에 주목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민은 씨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민은 씨는 “한국 화장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제일 인기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파편적 단서들을 모아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재 중국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콘텐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왕홍 경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생각해 봅시다. 왕홍 경제가 열리면 이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우리가 거대한 대륙으로 진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콘텐츠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적자원이 강력한 우리는 콘텐츠를 무기로 삼아 그들의 플랫폼에 올라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지점. 전혀 문제가 없을까요? 미리 밝혀두지만 아주 성공적인 방법론이며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하지만, 여기서 한 번 정도는 곰곰히 생각할 대목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1차적으로 왕홍을 타고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겠죠. 하지만 칼자루는 그들이 가져갑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중국이에요. 심지어 중국은 공산당 체제의 강력한 동력으로 ICT 발전을 무지막지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체제에 불안이 되면 가차없이 쳐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손에 브랜드를 맡긴다? 처음에는 당연히 성공하겠죠. 하지만 그 다음은? 성공과 실패는 모두 그들의 구미에 달려있고, 선택에 의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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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한류열풍이에요. 2000년대 후반 한류 드라마의 성공으로 절정에 달한 한류 바람은 현재 K-POP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온라인 게임이 이어 받았어요. 한 때 국내 온라인 게임은 중국에 흘러가 엄청난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니즈’를 충분히 소비한 중국은 이제 텐센트를 중심으로 막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역공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게임산업은 거의 종속이 되어 버렸어요.

왕홍을 통해 콘텐츠를 뿌리며 성공을 거둔다? 좋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까요?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소위 팡 트리오의 플랫폼 전성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만 제공하다가 토사구팽당할 생각인가요? 벌써부터 그런 기미가 보입니다. 뷰티를 볼께요. 지금 왕홍 경제를 보는 국내 뷰티 업계는 희망에 차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 2위 화장품업체인 잘라의 브랜드 자연당(自然堂)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대표를 지낸 K씨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고 합니다. 상하이자화는 작년부터 LG생활건강과 애경산업 출신 인력을 말 그대로 폭풍흡수하고 있고요. 딱 지금 게임산업 꼴 나지 않을까요?

브랜드를 중국 플랫폼을 타고 입점시키면 다양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요? 이런 명제가 성립되려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먼저 브랜드가 영원불멸의 가치를 가지거나, 혹은 중국 외 시장에도 통해야 한다는 점. 전자는 말도 않되는 일이니 무시하고 후자를 봅시다. 플랫폼에 생사여탈권이 달린 콘텐츠가 중국 외 시장으로 뻗어갈 여지가 있다고 보이나요? 아편처럼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에 중독되어 사그라든다는 것에 한 표입니다. 어디서 애플뮤직같은 소리하고 있어요.

결론입니다. 물론 왕홍 경제 올라타야죠. 그들이 원하는 것 해 주면서 이용해야죠. 이건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플랫폼 전략을 아주 포기하면 곤란합니다. 조금이라도 시작을 하거나, 아니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중국 외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티라도 내서 협상의 여지를 남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테바글로벌이라는 기업에 집중한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세운 역직구 플랫폼인데요. 저는 이런 시도가 참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플랫폼이 작동하니까요. 하지만 테바글로벌은 최근 중국인에게 넘어갔습니다.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저만의 오해일까요.

중국의 당나라는 618년 이연이 건국해 907년 후량에게 멸망할때까지 중국 역사상 가장 글로벌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그 격변의 시기를 버텨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다양성입니다. 해신 장보고도 당나라의 외국인 부대인 무령군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신라의 최치원도 외국인 대상 시험인 빈공과에 합격했었죠. 당나라는 글로벌, 다양성을 자신들의 거대한 생태계에 집중해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각 주변 나라는 당나라에 필요한 것을 주었고, 당나라는 이를 이이제이로 활용했습니다.

지금의 분위기, 왕홍에 집중하는 그 대단함을 밀어내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합니다. 지금 당장 올라타서 호랑이 아가리에 사슴고기를 밀어 넣으세요. 하지만 사슴고기에 질린 호랑이가 등에 올라탄 우리를 물어 뜯어 버리기 전에 새로운 늑대 정도는 섭외하자는 겁니다. “어, 우리 늑대도 있어? 호랑이 너 등에서 확 내려 버린다?”라는 협상이라도 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