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휘 BARK 공동창업자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든, 기업에서 기획자나 마케터로 일을 하든, 기획자로서 피할 수 없는 업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피칭 (또는 프리젠테이션)일 것이다. 원래부터 언변이 화려하거나 무대에서 용기 백배한자는 피칭 그까이꺼 씹어먹어버리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에만 서면, 또는 프로젝터 앞에만 서면 머리가 하얘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피알못(피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은 어디서 피칭하고 나면 ‘저사람 피칭 왜케 못하냐’ 소리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걸 보면 (아니면 대놓고 얘기해준 사람이 없어서…)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다. 이런 본인은 사실 옛날에 대표적인 피알못이였다. 심지어 교정기 때문에 발음도 부정확하고 가끔 정신줄 놓으면 횡설수설하게 되는 안좋은 버릇도 있는 이런 피알못이 어떻게 피칭을 평균 이상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방법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pitching
본인은 원래 발음도 부정확하고 횡설수설 잘하는 대표적 피알못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피칭이 별로 두렵지 않다.

1. 바로 시작하지 말고 일단 청중 모두를 쓱~하고 훑어 지나가는 시간을 최소 3초 이상 가져라

당신이 무대에 올라가서, 또는 회의실에서 청중 앞에 서게되는 순간, 대부분의 피알못들은 바로 인사부터 하고 피칭을 서둘러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인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청중 앞에 서서 인사하기 전, 이 찰나의 순간에 나는 반드시 3초 이상을 할애해서 청중 모두를 쓱~하고 훑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가끔 필이오면 그 시간이 10초~20초까지 길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튼 청중 모두를 훑어보면서 오늘 어떤 사람들이 앉아있는지, 저들의 심리상태가 어때 보이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저 사람들의 ‘기(氣)’를 느껴보고 그걸 내 기운으로 들여마시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이걸 하게되면 일단, 소란했던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왜? 발표자가 아무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피부가 장내의 분위기를 무의식중에 파악해서 발표의 톤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효과가 있다. 이런 훑어보는 시간을 최소 3초 이상 가진 후에 인사하고 피칭을 시작하면 당신의 피칭 실력이 이것만으로도 50% 이상은 향상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 청중에서 내가 아이컨택할 상대 3-5명을 미리 골라놓는다

흔한 피칭 팁들에 보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있다. ‘청중들과 아이컨택을 하라!’ 이거 당연히 아주 중요한 팁이긴 한데, 우리같은 피알못들은 일단 무대에 서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피피티 읽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아이컨택 따위는 머리속에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런 피알못 시절 내가 취했던 방법은 바로, ‘모두랑 아이컨택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아이컨택 할 사람을 미리 3-5명만 미리 골라놓고 시작하자’이다. 즉, 위의 1번 행위를 할 때 미리 마음씨 좋아보이는 사람, 혹은 내 타입인 사람, 잘 웃는 사람 등 내가 1:1로 대화하면 잘 풀릴것 같은 사람을 몇명만 정해놓고 피칭할 때 그사람들만 계속 바꿔가며 아이컨택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청중들은 마치 내가 아이컨택을 잘 하는 것 처럼 보이고, 본인 역시 무대 발표가 아니라 마치 몇명의 사람과 소규모 미팅하는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어 긴장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골라놓은 사람이 마침 적극적으로 반응을 잘 해주는 사람이면 용기 백배되는 행운도 생긴다.

3. 절대 연단뒤에 숨지 말고 슬라이드 1/4지점에 겹쳐서라

피알못들 행동들 중 대표적인게 발표자료 미리 프린트해와서 (혹은 스크립트 뽑아와서) 이거 연단에다가 놓고 연단 뒤에 숨어서 발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표하면 청중들은 발표자는 보지도 않고 슬라이드만 쳐다보게 되고, 발표자의 존재는 그들 머리속에서 점점 잊혀지게 된다. 필자는 일단 무대에 서면 절대로 연단 뒤에 서지 않고 마이크 뽑아서 슬라이드의 1/4 지점에 겹쳐서 서서 발표를 시작한다. 1/4 지점에 겹쳐서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슬라이드에서 본인으로 자연스럽게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발표는 내가 하는거지 슬라이드가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처음에 내 쪽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은 아주 중요하다. 또한, 이 1/4 지점은 청중을 압도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이기도 하다. 뭔가 가운데도 아니고, 너무 치우치지도 않은 위치에서 마치 무게중심을 아슬아슬하게 유지시키는것 처럼 보이는 지점이 보통 1/4 지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는것 만으로도 분위기의 주도권을 내가 직접 쥐고 피칭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4. 피피티는 거들 뿐 발표의 주인공은 당신이다

피알못들 또 많이 하는 행동들 중 하나가 피피티를 습관적으로 쳐다보고 피피티 내용을 읽으면서 발표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3번에서 어렵게 내쪽으로 고정시킨 청중들의 시선이 다시 슬라이드로 집중되게 되서 역시 내 존재가 사라진다. 슬램덩크에서 레이업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왼손은 거들 뿐’ 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피칭에서도 역시 ‘슬라이드는 거들 뿐’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본인은 슬라이드가 없어도 발표가 가능할 정도로 발표를 미리 연습해 본 후에 피칭을 한다. 슬라이드는 그냥 내가 지금 어떤 순서에 있는지 정도만 가늠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피티에도 가급적 내용을 ‘제목 한줄’ + ‘그림 하나’의 조합으로만 채워 넣는다. 피피티는 어디까지나 청중들이 잠시 딴 생각을 하거나 내용이 이해가 안갈 때 도움을 주고자 보여주는 보조자료이지 발표의 주인공이 아님을 명심하자.

5. 예상치 못한 기술적 오류의 순간에 본인만의 필살기를 몇개씩 준비해놔라

피칭을 하게 되면, 특히 뭔가 데모를 보여준다던지 동영상을 띄워야 할 때 반드시 예상치 못한 기술적 에러가 발생하게 된다. 많은 피알못들이 저 상황이 되면 허둥지둥 대거나 그냥 아무말도 않하고 가만히 서있고, 저 에러가 고쳐질 때 까지 기다리고만 있는다. 본인은 이 시간을 대비해서 몇가지 필살기를 항상 준비해 놓는다. 예를들면 “우리 그냥 기다리는 것도 심심한데 스트레칭이나 다같이 합시다”라던지, “그 애플도 WWDC에서 매번 데모할때 뻑나던데요. 이거 누가 과학적으로 연구해봐야 하는것 아닙니까?”라는 썰렁한 농담을 던지는 등의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 놓는거다. 물론 이게 항상 먹히지는 않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멍청하게 서있는 것 보다는 10배는 나을테니 꼭 시도해 보길 바란다.

6. 처음에 지고 들어가는 멘트 좀 제발 하지 말자

발표의 서두에 꼭 이런말 하고 시작하는 피알못들이 있다. “제가 원래 이런거 잘 못하는데요. 실수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혹은, “제가 내성적이라서 무대에만 서면 많이 떨려요” 등등의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멘트들이다. 이런거 제발 좀 하지 말자. 가뜩이나 불안 불안해 보이던 발표자가 더 안쓰러워 보이고 발표의 신뢰도마저 떨어지는 역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런 멘트를 도대체 왜 날리는지 모르겠다. 지금 팁 10개중 반 이상이 다 초반에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인데, 그건 그만큼 피칭에서 가장 중요한게 초반부이기 때문인데, 이런 중요한 순간에 저런 지고 들어가는 멘트는 절대로 금물이다.

7. 1/4 지점에서 앞 뒤로 엑센트를 주는 동선을 그리자

음악에도, 영화에도, 소설 속에도,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엑센트를 찍어서 높낮이를 만드는 것이다. 원래 바디랭기지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야 피칭할때도 이런 엑센트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지만, 우리같은 피알못들은 대부분 저런거 없이 그냥 부동석 처럼서서 발표하게 마련이다. 이때 본인만의 팁이 있는데, 아까 3번에서 언급했던 슬라이드 1/4 지점에 포인트를 잡고 앞뒤로 1.5 걸음씩 동선을 그린다. 그리고 내가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반걸음씩 앞으로 걸어나가고, 다시 평이한 내용에서 뒤로 돌아오고 하는 엑센트 찍는 행위를 한다. 이건 처음부터 바로 가능한건 아니고 반드시 청중을 앉혀놓고 여러번의 예행 연습이 필요하다. 아까 1번에서 3초 이상의 시간을 가지는 부분에서 본인은 이 동선도 미리 잡아놓는다.

8. 마지막에 반드시 펀치라인 페이지가 있어야 한다

피칭에서 시작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실 시작만 잘하고 끝에 마무리만 잘해도 아무리 내용이 개판일지라도 피칭은 그럭저럭 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 마무리를 대부분은 아무런 펀치라인 없이 서둘러 종료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뭐 시간에 쫓겨서 종료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예 펀치라인 준비 자체를 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피칭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응축해서 청중들에게 펀치를 날리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피칭이 끝나고 나서 박수를 받고 Q&A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나올 수 있다. 이게 없으면 청중들의 박수도 못받고 어설프게 Q&A로 넘어가게 되고, 뭔가 질문하기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서 질문도 못받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9. 피칭에도 풀버전과 트레일러 버전이 존재한다

피칭할 때 발표할 슬라이드가 많지 않아야 하는건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피알못들은 예를들어 10장을 준비한다면 저 10장이 다 똑같은 밸류로 중요한 내용으로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도 본편과 트레일러가 있는 것 처럼 당신의 피칭도 트레일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즉, 10장의 슬라이드가 있다면 이걸 가지고 full ver, trailer ver으로 구성 가능하도록 피칭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 놔야 내가 시간에 쫓길 경우, 또는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피칭을 서둘러서 마무리해야 할 경우 내 피칭 길이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게 가능해 진다.

10. 열혈강호의 이미지트레이닝이 피칭 연습에 효과적이다

열혈강호같은 무협만화를 모르는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무협인들이 수행할 때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게 있다. 이게 실제로 싸우는게 아니라 머리 속에 상황을 상상하면서 상상 속에서만 연습하는 건데, 피칭 연습에 이게 제법 효과적이다. 무슨말이냐면, 피칭 연습을 실제로 말하면서 하는게 아니라 머리속에 피칭 상황을 그려보면서 머리속에서 발표를 연습하는 거다. 이게 필요한 이유는 우선, 피칭 연습을 실제처럼 말하면서만 하게 되면 나중에 지쳐서 본 피칭에서 기운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실제 말하는 연습을 한 2-3번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대체하면 아주 효과적이다. 또한 실제 말하면서 하는것 보다 시간을 반 이상 줄일 수 있어서 2-3번 연습할 시간을 10번정도 연습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심리학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이미지트레이닝으로 피칭연습을 하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효과도 있는데, 이건 그냥 개인적인 것 일수도 있다.

지금까지 피알못이 피칭을 평균 이상 하게 되는 10가지 방법론에 대해 소개해 봤다. 사실 성공적인 피칭을 만드는건 저런 10가지 꼼수같은 것 보다는 발표자가 준비한 내러티브가 얼마나 감흥이 있는 것인지, 혹은 진정성이 있는 내용인지에 따라 달려있다. 즉, 아무리 저런 10가지 꼼수를 잘 부려도 본인이 발표할 내용의 알맹이가 없으면 피칭은 절대로 성공적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10가지 팁은 어디까지나 내용이 충실한 상황에서 본인의 노고가 깃든 피칭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자료, 즉 ‘거들 뿐’ 임을 명심하자.

[조영휘의 스타트업 고군분투기] 시리즈

–  (14) 중독적인 서비스의 2가지 비밀 
(13) 초기 스타트업의 모바일앱 지표 분석 방법론
(12) 프리미엄 병에 걸리지 말자
– (11) 초기 스타트업의 무료 마케팅 채널
– (10) 인스타 마케팅의 헛수고를 줄이는 10가지 마케팅 방법론
(9) 문돌이의 이메일 마케팅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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