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도강(渡江)이다.’라는 말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변화를 불러오며 오늘의 중요가 내일의 불필요가 될 수도 있으니, 가라앉을 수 있는 현재에 서 있거나 강을 건너는 위험을 감수하며 안전지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주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인 듯하다.

그러면서 평생직장이 사라졌으니 평생직업을 찾아야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변화에 대해서 종용하면서도 직장을 옮기면 사회에선 또 이런 수식어를 준다.

‘…요즘 아이들은 참 참을성이 없어…’

20대에 한국에서 7~8년동안 일하며 3번의 이직, 20대 후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대략 15년의 시간동안 4번 이직을 한 ‘프로이직러’가 있다. 현 구글재팬의 광고성과분석팀 강철호 팀장은 어언 23년의 시간동안 7번 남짓하게 이직을 한 셈이다. 이직도 잘만 관리하면 좋은 경력 관리 방법이 될 수 있다는데, 그의 여정을 알아보았다.

강철호 팀장

“컴퓨터 공학을 졸업하고 윈도우용 어플리케이션, 무선통신에 관련한 여러 어플을 만들었습니다. 막연히 언젠가는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에게 이직 제의를 받았어요. 한인으로 꾸려진 SI 업체였습니다. 그 뒤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어 일본에서만 4번의 이직을 했네요. 바로 전 직장인 야후재팬에서는 10년 정도 개발, PM, 파트너 체결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이번 연도 초에 구글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광고를 어떻게 가시화, 평가할 수 있는지 기업 컨설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강철호 팀장은 리스크 테이커이지만 다양성을 중시하기에 이직에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 분야에서 기회가 보이면 이직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체감한 일본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었다.

 

경쟁 중심의 조직 vs 합의 중심의 조직

“경쟁이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조직은 유독 경쟁이 치열한 것 같네요. 한국과 일본을 둘 다 경험해 본 결과 일본의 기업문화는 조금 더 합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강한 리더쉽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발달해 있습니다. 리더가 방향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집단이 움직이는 탑다운 방식이 많지요. 일본은 내부의 합의를 얻기위해 조직 내 여러 사람의 공통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방향성도 자주 언급합니다. 조직 전체가 합의하는 과정을 즐기고, 천천히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정보 공유를 중요시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곳 

“겉에서 보면 일본은 고요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의 잣대로 보았을 때이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변화에 대한 척도가 다를 뿐입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개선을 조금씩 해나가는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합니다.

“가령 한국에서는 프로그램 개발을 끝내는데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일본에서는 2주~한 달을 줍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길게 줄까? 빨리 일주일 만에 완성해서 내가 잘했다는 걸 어필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다 보니 절대 넉넉한 시간이 아닙니다.”

“예로, 한국에서는 리뉴얼을 할 때 전후 변화를 크게 느낄 만큼 UX에 변화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픽셀 몇 개, 아이콘 하나씩 변경시키더라구요. 일본은 사용자 눈에 띄지 않게 점진적으로 변화를 주면서 UX 눈높이를 조금씩 높인다는 것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개발 후 예측되는 에러를 어떻게 대처할지, 해당 테스트에 사용할 프로그램도 다 개발합니다. 디테일에 대한 자부심, 정확히 만들고 싶다는 장인 정신이 깃들어져 있기에 시간으로 판단해 ‘일본은 일을 천천히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설렘은 곧 삶으로 바뀐다

“일본은 마켓크기도 그렇고, 경제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을 벗어나 보고 싶어서 해외에 오면 금방 또 다른 탈출구를 찾게 될 거에요. 외국에 오면 느끼는 설렘이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 오거든요. 언어적 문제, 가까웠던 이들과의 거리감,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있겠죠. 단순히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본에서 채용을 많이 한다니까…해서 일본에 오는 것보단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그걸 ‘왜’ 이루고 싶은지, ‘왜 일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와야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럼 앞서 말한 괴로움도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됩니다.”

“또한, 고생하지 않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많이 하고 오는 게 좋습니다. 저는 올 때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였는데요. 결혼도 안 했으니 무턱대고 와버린 케이스입니다. 초반에 일하던 SI 회사에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인이 있어 연봉협상 등 일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대신 다 처리해 주었기에 가능했죠. 하지만 일 외적으로도 살아남아야 하니 매일 퇴근하고 적어도 1시간씩은 공부했습니다. NHK를 듣는데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프로이직러가 말하는 ‘이직 조언’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일본에 와서 4번 정도 이직했습니다. 이제껏 회사에 불만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떠난 적은 없어요.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졌는데요. 경력 초기엔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이유가 컸죠. 하는 일이 비슷하더라도 기술이 달라지거나 사업군이 달라지면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회사가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회사의 철학, 비전, 사회적 역할, 구성원에 대해 먼저 조사해보죠.”

 

개인의 이직 철칙은?

“이직을 할 때 주의하는 것이 있습니다. 해당 회사에 적어도 2~3년은 근무합니다. 6개월~1년 근무했다고 업무를 다 경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내가 정말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나?’ 뒤돌아보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어려워지면 이직했습니다. 또한, 우선순위를 세웠어요. 그걸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결정할 때 부담이 없습니다. 그리고 리스크 테이커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직할 회사를 정해두지 않고 나온 적은 없어요.”

“기업 사전조사도 꽤 많이 합니다. 홈페이지 가보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있어요. 보도자료도 보고, 각종 모임에 참석해서 그 회사 구성원은 어떤 분인지, 그분은 어떤 대외 활동을 하는지 봅니다.”

아름답게 퇴사하는 법?

“이직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경력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떠날 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긴 합니다. IT업계는 교류도 많고, 콜라보 작업이 많아요. 엔지니어라면 오픈소스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높이기도 하죠. 투명하고 오픈되어 있는 곳이라, 내 평가를 몇 단계만 거쳐도 알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인수인계를 진행하기 쉽도록 문서 작업을 많이 해둡니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누구에겐 무엇을 알려야 하는지, 협업이 있을 땐 역할분담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문서화 해두고 떠납니다.”

“새로운 직장에 가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편입니다. 개선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관심 있는 동료를 모아 함께 해나가죠. 적응하는 것도 즐기는 편입니다.”

 

경력 관리 = agile survivor 

성장기의 도전 실패에는 차선이 있지만, 성숙기 도전의 실패는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직이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철호 팀장은 이직을 삶에서 큰 이슈로 생각하기보다 삶의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작은 이벤트로 보길 추천했다.

“살면서 검증해보고 싶은 가설이 있을 때 그 검증의 계기로 이직을 생각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을 거에요. 경력관리는 Agile survivor라고 생각해요. 최소의 필수 기능만 가지고 시장에 출시한 뒤, 피드백을 받으면서 빨리 개선해 나가는 개발 방법을 Agile 방법이라고 하죠. 이직을 이렇게 보다 보면 여러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 관련 링크: 강철호 팀장이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IT분야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들의 네트워크 Korean Meet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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