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도사 최재현님과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많은 글들을 읽을 때 몇 가지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관심이 많이 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스타트업의 인재는 다양한 일들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구절이 늘 눈에 들어온다. 대기업에서도 일해보았고 중소기업에서도 일해보았는데 재능만큼은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을 원하는 것 같다.

작년 늦여름부터 연말까지 스타트업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시작은 자문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스타트업의 특성상 자문만으로는 업무 진척이 더디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시간을 투자하게 된 일이었다. 당초 대표님과 자문 정도로만 이야기가 되었는데 막상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일들을 소화해내야 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글에서 읽던 멀티, 이야기로만 듣던 멀티가 이런 것이고 나하고 느낄 때 즈음에 나는 이미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기에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일당백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스타트업은 일당백의 느낌이 매우 강했다. 첫 두 달 정도는 대표님과 나를 포함해서 팀원 1명으로 시작했다. 시작이 비교적 순조로웠고 인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대표님은 또 다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탓에 전적으로 회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팀원은 있으나마나한 인력이었다.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다 온 사람이라 업무를 처리한다기보다 배워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결국 모든 업무처리는 나에게 넘어왔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해야만 했다.

팀원이 어느 정도 업무를 처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계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한 팀원에게 스타트업에 필요한 문서를 갖추고 정보를 찾아내는 일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일로 다가왔다. 매 시간마다 토로를 들어야 했고 매일 마다 꼭 한 번의 성토를 겪어야 했다.

다양한 직장을 거쳐온 경험이 있다 보니 나에게 몇 시간이면 걸릴 일이 그 팀원에게는 하루가 훌쩍 걸릴만한 일이었다. 답답한 대표님은 나에게 일을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자 나는 업무과다로 아파가기 시작했다. 팀원은 자신이 있으나마 나한 존재인 줄 알면서도 대응법을 딱히 마련해내지 못했다. 그저 느리니까 차츰 배워가겠다고 답할 뿐이었는데 나는 그런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재이니까 멀티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멀티로 일을 해야만 회사가 성장할 수 있으니까 힘들어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한번 해보겠다는 태도와 생각.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팀원에게는 이런 생각이나 의지조차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 팀원이 회사를 박살 내긴 했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난 기억이 되었다.

스타트업은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력이나 초기 역량이 부족한 기업의 형태를 일컫는 용어인데 이상하게 한국형 스타트업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 같다. 외국과 다르게 한국의 스타트업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일한다기보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재를 선호한다.

2명의 인건비를 지출해야 한다면 한국은 1명의 멀티형 인재를 채용하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를 보면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도출하고 자신의 전문분야에 적합한 역량을 기업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한다. 물론 외국의 사례도 면면히 살펴보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능력과 스킬을 보유한 인재를 선호한다. 다만 한국이 유독 한 사람의 희생이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은 매우 다양하다. 창업기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을 견인하기 위해 일감을 받아야 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한다. 마케팅과 홍보도 당연히 해야 하고 내부적으로 인력관리와 다양한 과업들을 수행해내야 한다. 겉보기에는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소한 문서부터 문구 하나를 정하는 일, 단순히 이메일을 회신하는 것까지 소소한 행위가 모여 하나의 큰 과업을 이루어 내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대표자 개인의 역량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오고, 업무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가급적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온다면 인건비 부담도 줄이면서 회사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경력직이 스타트업에 온다면 기존의 경력과 개인의 역량을 믹스해서 마치 구원투수가 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 말이다.

구원투수가 다양한 변화구를 시전 할 줄 안다고 해서 그가 직구를 던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구원투수는 강력한 직구를 구사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다양한 변화구를 시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재만이 구원투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구원투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채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멀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설령 그가 업무과다로 스타트업에 정을 붙이지 못한다면, 정말 유능하고 뛰어난 인재인데 그가 가진 역량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분야의 일을 시킨다면 그가 가진 역량이 잘 발휘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대표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한다. 처음에는 한 가지 일만 시키다가 서서히 하나둘씩 다른 업무를 시킨다. 어느 선까지의 업무처리역량이 확인되면 야금야금 업무를 넘긴다. 조금 숨이 넘어갈 듯하면 일을 덜어주고 숨이 넘어갈 듯하면 일을 덜어준다. 과다한 업무에 힘겨워하면 밝은 미래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조언을 한다.

기업은 유기체라는 말이 있다. 조직도 유기체다. 인적 구성원이 이루는 하나의 조직은 외면의 유기체이면서도 감정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외면으로 보이는 유기체를 ‘팀이나 프로젝트 단위의 구성, 조직문화’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내면으로 보이는 유기체는 ‘구성원이 공감하는 감정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자와 구성원이 감정선이 연결되어 있고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밤낮으로 열심히 업무를 수행한다면 대표자가 구성원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대표자도 멀티태스킹을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표자와 구성원이 감정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밤낮으로 열심히 업무를 수행한다면 대표자가 구성원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업무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대표자는 마치 고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대표자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밖에 없다. 분명 구성원보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해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구성원에게까지 멀티를 원해서는 안 된다.

필요 이상의 역량을 기대하고, 필요 이상의 기능이나 스킬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감이 불러오는 실패의 결과를 낳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가지, 제너럴리스트가 차츰 스페셜리스트가 되진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재가 스타트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스타트업에서 멀티태스커로 일했고 사무, 총무, 경리, 디자인, 홍보 등 모든 일을 도맡아 수행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뛰어난 실적을 만들어낸 분야는 한 분야도 없었다. 역량이 분산되면 성과가 고르지 않을 수밖에 없으니까.

[별별 창업 이야기] 이전 글

(11) 혁신의 포인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