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없는 원격 & 자율근무를 한지도 어언 3달, 체감상으로는 한 3년 정도 한 것 같은데 아직 3달 밖에 되지 않았다. 30살이 되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부디 체감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서당개는 석달이 지나고 나서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멍멍 짖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다가 3년, 1095일, 26,280시간이 딱 되는 시점에 시조 한수 외우며 풍월을 읊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 50일쯤부터 털이라도 빠지지 않았을까

 

무슨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 사람되는 소리도 아니고… 한 석달이 지나고 나서는 한글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신상 근무제도를 아직 체감상으로 밖에 3년 정도 경험했고 사바세계의 시간으로는 석달 정도 밖에 경험하지 못했기에 풍월처럼 원격 & 자율근무의 정수를 촤라락 읊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아, 저 사람은 원격 & 자율근무 안되겠다.’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매우매우 잘타는 사람

외로움은 사람의 매우 일반적인 감정이다. 괜히 새벽 2시만 되면 ‘뭐해… 자니?’라는 카톡이 여기저기서 울리는게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 속에 포함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원격 & 자율근무러는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혼자 일한다. 이는 일하면서 수다를 떨 사람도 없고, 고민되는 점이 생겼을 때 의논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뭐 그 정도는 괜찮을 수 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뭐 금요일 같은 때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불금을 보낼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원격 & 자율근무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제대로 써 먹어보고자 어디 머나먼 곳으로 길게 떠났을 때 발생한다.

인연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한다는 건 꽤나 외로운 일이다. 앞서 얘기한 일하면서 얘기할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 퇴근하고 만날 가족도 친구도 없다. 하루에 몇마디 말을 못해 입에서 단내가 날 수도 있다. 괜히 스타벅스 바자리에 앉아 같이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정이 갈 수도 있지만 말을 걸었다 간 미친 놈 취급을 당할 확률이 높고 애초에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면 말을 걸 용기도 못낼 것이다. 천성이 혼자서도 시간을 잘보내고, 사람 싫어하고, 집돌이여야 혹은 그런 기질이 있어야 프로 원격 & 자율근무러가 될 수 있다.

 

동기부여를 상사의 감시로부터 받는 사람

사무실은 권력 구조의 집합체다. 상사는 일어나면 모든 직원의 모니터를 볼 수 있고, 말단 사원은 사무실 끄트머리 혹은 모서리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일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무실의 구조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지만 조직에는 분명 남이 감시해야만 일하는 사람이 있다. 프리라이더, 월급루팡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상사의 관심어린(?) 눈길이 없으면 업무 효율이 뚝 떨어진다. 보통은 월급이 들어오면 새 옷을 사거나 매달 있는 휴일을 알차게 활용해 연차와 붙여 여행을 자주 가는 직원이 그러한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다.

직장인이 되어도 바뀌는건 없지!

 

만약 카페에서 일한다면, 카페에서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찾는데 30분, 메뉴를 고민하는데 20분, 보통 디저트까지 시켜서 먹는데 30분, 먹으면서 보던 유튜브가 재미있어 다음 편까지 보고 일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1시간을 사용한다. 그나마 오후에 이 루프가 발생하면 다행이다. 오전에 이 루프가 일어나면 점심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메뉴를 정하고 밥을 먹고 다시 카페로 복귀하는데 또 시간을 쓴다. ‘과장이 너무 심한거 아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학창시절에 공부하러 도서관 또는 독서실에 와서 비슷하게 시간을 버리는 친구들을 이미 많이 봤다. 그런 분들께는 조용히 사무실 근무를 추천해드리는 바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우선 한가지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회사에는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도 매우 귀하다. A를 시키면 Z를 해서 오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오는 것만으로도 마땅히 박수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율근무를 하려면 시키는 일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업무량을 스스로 조절해야 하고, 업무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서 해야한다.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 전체의 방향성에 맞춰 데드라인을 잡고 지켜야 하고, 회사의 성과에 기여해야 한다.(모두 입사 후 잊었겠지만, 우리는 회사에 업무로 기여하고 월급을 받아간답니다…^^;;;) 자율근무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근무제도보다 할일이 더 많다. 자기 일도 잘해야 하고, 자기 삶도 지켜야 하고, 회사의 방향성과 전체 프로젝트의 데드라인도 조율해야 한다. 막상해보면 ‘시키는 것만 하는게 편했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혼밥 못하는 사람

앞서 얘기한 외로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다. 원격 & 자율근무를 하면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 대학교 시절처럼 공강인 친구를 수소문해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혼밥은 필연적이다.

원격 & 자율근무를 하려면 혼자서도 당당하게 고기집 문을 열고 들어가 삼겹살 1인분에 소주 하나를 시킬 수 있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시키는 베이글이나 샌드위치로 때우는 일이 다반사다.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 자고로 한국사람은 쌀을 먹어야 한다.

 

신입사원

신입사원이 무슨 죄길래 원격 & 자율근무를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냐고 말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신입사원은 하면 안된다고 하기는 애매한 면이 있다. 누구나 신입인 시절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차원의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생 초짜 뉴비 신입은 업무에 대한 지식도 없고(머리가 비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원격 & 자율근무라는 새로운 업무 방식에 대한 경험이나 자각도 부족하다. 이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할 수 없다는 얘기이자 회사의 방향성에 맞춰, 시간 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일반적인 근무방식은 옆자리 사수가 하는 일을 보고 배울 수라도 있지 원격근무로는 눈팅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 회사의 곱절 이상으로 사랑과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초짜 신입사원의 회사 적응은 실제 원격근무를 도입하고 있는 회사가 갖는 문제 중 하나다. 바로 옆에서 얘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신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경력직인데 신입사원으로 오셨다면 조금 낫다고 할 수 있다. 직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케바케, 사바사기는 하다.) 그런 분들께는 새로운 근무 방식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더 일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의의와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잘 말씀드려야 한다. 원격 & 자율 근무를 위한 프로세스를 지키며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기존의 업무 방식에 익숙하다면 놓칠 귀찮아 할 확률이 높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뭐 나 역시 고작 3개월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많다. 농반진반으로 읽어봐주셨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원격 & 자율근무를 하다보니, ‘와 이런 문제도 있구나’ 싶은 것이 계속 보인다. 특히 이번에 제주에서 1개월 간 업무를 시작하면서, 처음 장기 원격 & 자율근무를 해외에서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과의 소통이나 새로운 지역에서의 적응에도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데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있었으면, 머무는 기간 내에 욕만 하다 돌아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새로운 근무 제도의 모르모트(?)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글로 남겨야겠다. 그래야 원격 & 자율근무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겪을 사람들에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길효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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