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무에 맞는 사람을 뽑는다

 

 

“당신은 우리 회사에 어떻게 기여할 생각인가요?”

 

위계 조직에 익숙한 사람들은 ‘조직에 충성하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배우고 헌신하면서 기여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답은 역할 조직의 면접을 볼 때는 너무나 이상한 대답이 된다. 

 

“이 문제 어떻게 풀 거야?” 

“잘.” 

이런 대화처럼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역할 조직에서는 위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직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래서 직무 기술서(Job Description)를 제대로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무 기술서에는 지원자가 어떠한 직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 사항이 자세히 나와 있고, 지원자는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해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엔지니어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세계적인 스케일의 소프트웨어 프로덕트를 여러 번 론칭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회사는 결제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결제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본 제 경험에 따르면, 먼저 아마존 웹 서비스를 이용하여 클라우드상에 여러 개의 서비스를 만들어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쿠버네티스(Kubernetes)와 도커(Docker) 소스를 이용하여 서비스 디플로이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이런 식으로 자신이 회사에서 무엇을 할지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원하는 회사 및 직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또한 회사 입장에서도 직무 기술서를 실용적이고 자세하게 써서 필요한 스킬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위계 조직에서는 말 잘 듣고 똑똑하고 인상 좋고 성실한 사람이 필요하고, 직무 기술서의 내용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축구팀에 비유하면, 위계 조직형 축구팀은 1등부터 11등까지 축구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서 제일 잘하는 사람은 스트라이커, 제일 못하는 사람은 골키퍼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역할 조직은 각 포지션 별로 따로 선수를 선발한다. 수비수를 뽑는 자리에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오든, 아주 성실한 미드필더가 오든 아무 의미가 없다. 수비수는 자신이 어떻게 수비를 잘하는지를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부모님의 직업이나 외모나 성적 지향, 종교 등과 무관하다.

역할에 딱 맞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직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고, 수행하기 위한 기술을 얼마나 잘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이, 성별, 혈액형, 가족사항, 인종, 종교, 성적 지향성 등은 전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위계 조직에서 위계질서상 서열과 명령 하복을 잘하는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군대에 갔다 온 젊은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지만, 한편 이해가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할 조직에서 그런 기준으로 선발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되지, 나보다 어릴 필요도, 남성이 필요도, 기독교인일 필요도, 동성애자가 아닐 필요도, 집이 부자일 필요도 없다. 

역할 조직에서는 새로 선발된 사람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배우려는 자세가 있는지, 말을 잘 듣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축구팀에서 동료 수비수를 뽑을 때, 당연히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내 수비 부담도 줄어들고 팀 성적도 좋아진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내가 밀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다른 팀에 가면 된다. 위계 조직에서는 지금까지 성장에 투자해 준 팀을 버리고 다른 팀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역할에 따라 언제든지 직원을 교체할 수 있는 역할 조직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아닌, 역할에 딱 맞는 사람을 뽑으려면 우선 공채를 없애고 획일적인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 잘하는 축구선수를 뽑으려면 체력시험, 슈팅 시험, 수비 시험을 일률적으로 보면 되지만, 왼쪽 윙백 수비수를 뽑으려면 완전히 평가항목이 달라진다. 그러한 경우 시험을 만들기보다는, 실제로 왼쪽 윙백 수비수 경험이 많은 이가 그 선수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실제로 여러 필요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역할 조직에서는 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할 사람이거나, 관련 직무에 있는 여러 사람이 면접을 본다. 모두가 회사가 필요한 직무에 맞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지원자에서 오퍼 레터를 제공하게 된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보고 뽑는다

 

우리나라는 신입사원 공채가 주요 인재 영입의 방법인데, 공부 잘하고 영어 잘하고 컴퓨터도 할 줄 아는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여 교육시키며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키워나간다. 그렇게 키워진 인재들은 엔지니어였다가, 인사팀에 있다가, 전략팀에 있다가, 영업팀에 있는 식으로, 회사의 주요 직무를 두루 경험한다. 전문성을 갖추기는 힘들지만, 회사에서 언제든지 어느 자리에든지 쓸 수 있는 인재로 키워진다. 

회사에서 그렇게 키워진 사람들은 다른 회사에 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전문 영역이 없고 현재의 회사에 맞추어 성장했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가면 새로운 시스템에 맞추어 재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사원을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온 기업 입장에서는 배신자가 된다. 이제 쓸만해졌는데 다른 회사로 도망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역할 조직은 상시 채용을 하고, 각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이 뚜렷하게 있기에 그러한 낭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역할 조직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사람을 선발하지 않으며, 새로 뽑는 직원이 지금 회사에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우리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으로 본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병이 아니다. 마케터, 인사 담당,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각 전문 분야의 가장 레벨이 낮은 전문 직원이다. 하지만 레벨이 낮은 직원이라도 그에 맞는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주니어 엔지니어는 버그를 고칠 수 있고 명확히 정의된 일에 대해 코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시니어 엔지니어에 비해 쓸모없는 엔지니어가 아니고, 할 수 있는 역량이 적은 엔지니어이며 그만큼 보상도 적게 주어진다. 

주니어든 시니어든, 전문가들은 쉽게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내 자리가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바로 다른 회사에 이직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력이 남는 회사는 인재가 빠져나가고, 인력이 부족한 회사에는 자연스럽게 충원된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하는 일은 어느 회사에 가나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다른 회사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회사에서 주니어로 들어가서 시니어로 수년간 성장한 전문가가 다른 회사로 가 버리면 그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간단하다. 다른 회사나 구직을 하고 있는 시니어 전문가를 데리고 오면 된다. 떠나는 사람도 다른 기회나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찾아 쉽게 떠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도 쉽게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순환보직과 연공서열이 아닌 전문가 문화와 기여 주의 보상이 자리를 잡고 회사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 회사는 더 이상 젊은 직원들을 자기 회사에 맞춰 성장시킬 필요가 없어진다. 어느 시점에서도 각 전문영역별로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면 되고, 전문직 직원들도 자신이 필요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조건과 도전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인턴십 정도를 제외하면, 젊은 직원들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 올 전문가의 능력이 지금 회사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기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제공한다. 작은 기여에는 작은 보상을, 큰 기여에는 큰 보상을 제공한다. 역할 조직의 프로페셔널에게 성장은 개인의 문제이고 회사는 성장을 위해 도움이 되는 자원을 제공할 뿐 줄 뿐 학교나 위계 조직처럼 특정한 방향으로 성장을 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위계 조직에서 흔히 강조되는 성실한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역할 조직에서는 별로 유용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반면 자신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정확히 소통하고 어떠한 기여를 어떠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역할 조직에서는 내가 지금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를 나타내 주는 “코드 리뷰를 최고로 잘하는 엔지니어”, “스마트폰 전문 디자이너”, “코드를 빨리 쓰는 엔지니어”, “최신 기술을 잘 아는 엔지니어”, “설계를 잘하는 엔지니어” 등의 개인 브랜딩이 중요하다. 

 

 

 

 

 

 

유호현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