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자기다움을 펼치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누구나 자기다움이 있지만 회사에선 감춰두기 마련이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개성을 발휘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을 한 후에야 본업인 A면이 아니라 개인적 활동인 B면으로 자기다움을 채운다. 요즘 사이드 프로젝트, 부캐, 퍼스널 브랜딩 등이 화두인 데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목적이 크다.

그런데 여기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일하는 동안에는 자기다움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말이다. 자기다움을 채우고 펼치는 역할을 온전히 개인에게 맡기는 듯 하다.

 

그런데 일터에서도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개인은 회사 일을 빌어 자기다운 일을 할 수 있어 좋고, 회사도 직원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이 상상을 실행에 옮긴 어딘지 수상한 팀이 있다. 일본 최대이자 글로벌 5위 광고 회사 덴츠가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덴츠 B팀‘. 덴츠 B팀은 서로 다른 B면을 가진 56명의 직원을 섭외해 만든 덴츠 소속의 특수 크리에이티브 팀이다. 각자의 B면 분야에 특임 리서처가 되어 자신만의 안테나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발적으로 일을 벌인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느슨하게, 그러면서도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사내 동아리 같은 비영리 조직이 아니라 수백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대외적으로 인정도 받고 엄연히 수익도 낸다.

 

 

 

 

 

이렇듯 덴츠 B팀은 직원의 개인적인 B면을 회사 일인 A면에 살리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른바, ‘일하면서 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한 회사와 직원의 본격 협업 프로젝트’.

일하는 방식을 엿볼 겸 덴츠 B팀의 대표 구라나리 히데토시가 전해준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 덴츠 B팀이 온갖 상을 휩쓴 음악 레이블 <인더스트리얼 제이피(Industrial JP)>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다.

 

 

 

 

 


 

2014년 가을 무렵이었다. 대학교 친구인 오쓰보 마사토와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에서 ‘유키 정밀’이라는 3대째 이어오는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쓰보는 위기에 빠졌던 회사를 V자로 부활시켜, 중소기업의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경제 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 1면에 자주 등장했다. 우리는 도쿄 신바시에서 함께 이탈리아 요리를 먹으면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 막 시작한 B팀에 관해 설명했고, 오쓰보는 일본의 동네 소규모 공장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네 소규모 공장을 포함해 중소기업은 일본 국내총생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일본 산업의 근간을 맡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실적이 악화되는 암울한 상태에 빠져 있어. 기획력을 갖춘 인재가 중요하다면서도 보조금은 설비 투자 등 하드웨어 쪽에 집중되어 있거든. 기획과 마케팅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분야에는 자금 지원이 부족해”

 

나는 오쓰보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함께 뭐라도 해보자.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할 수 없는 부분을 프로젝트로 만들어 해결해보자.”

 

그때 나는 제품을 함께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소규모 공장의 기술을 직관적으로 반영한 제품을 만들어 그 제품 자체가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에 오쓰보는 덴츠와 협업하는 거니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제품과 영상,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제품은 중소기업 진단사 자격증이 있는 야쿠시지 하지메, 영상은 미디어 아트 담당 시모하마 린타로에게 각각 맡겨 구체화하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모하마가 도쿄 오타구 모노즈쿠리 페어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며 나를 찾아왔다. 공장 기계로 나사를 만드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촬영한 영상이었다. 공장 직원이 직접 찍은 전시용 영상이어서 세련되지는 않았는데, 시모하마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테크노 음악을 넣었는데 어때요? 괜찮죠?”

 

확실히 독특하고, 느낌도 강렬했다. 이것을 디제이 무드맨으로 활동하는 음악 담당 기무라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기무라는, 보통의 프로모션 비디오는 일회성에 그치므로 음악 레이블을 만들어 지속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우면 어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술력이 높은 동네 소규모 공장을 음악으로 지원한다니, 근사한 생각이었다.

 

 

인더스트리얼 제이피 프로젝트에 참여한 B팀 구성원의 B면 이력서. 모두 덴츠 소속으로 A면은 광고이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기무라의 인맥을 활용해 세계적인 디제이들을 섭외했고, 그 디제이들이 다양한 사업 분야의 동네 소규모 공장에 직접 가서 소리를 녹음해 곡을 만들었다. 여기에다가 각 공장의 기계를 확대해서 찍은 영상을 덧붙여, 시모하마가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인더스트리얼 제이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프로젝트 발표 후 국내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도 호응을 얻었고, 몇 군데 공장에서 우리에게 일을 의뢰했다. 상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우수상, 굿디자인상 금상 그리고 도쿄 아트 디렉터스 클럽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칸 국제 광고제를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해 메시지 전달과 일하는 방식 면에서 동종 업계는 물론, 다른 업계까지도 놀라게 했다.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까지 12개의 음반을 발표했음

 

 

이처럼 덴츠 B팀은 누가 의뢰하지 않아도 스스로 떠올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자체 프로젝트 외에도 시대를 선도하는 가치관을 개발해 컨셉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외부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펼쳐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개인과 회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관, 그리고 그 가치관에 걸맞은 일하는 방식을 질문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유연하고 즐거운 덴츠 B팀을 레퍼런스 삼아 한국에서도 더 흥미로운 사례가 쏟아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덴츠 B팀 구성원의 말을 몇 마디 인용해본다.

 

“취미가 연장된 것처럼 즐겁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취미에 가깝기 때문에 모두 100퍼센트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요. 그뿐 아니라 B면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게 하면 접점이 계속해서 생겨 새로운 아이디어와 일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B팀입니다.”- 일러스트 담당 후루야 모에

 

“회사원으로서 개인이 가진 가능성은 회사라는 조직의 힘이 더해졌을 때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B면은 있으니 그것을 활용하면 A면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 페스티벌 담당 나카지마 에이타

 

“기업은 직원의 모든 것을 회사의 자원으로 만들 수 있으니 이익이지 않을까요? 직원의 개인 활동을 회사의 업무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다면 기업의 인재 활성화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학 담당 다나카 히로카즈

 

 

B면을 발견하고 키우는 법부터 B팀을 만들고 운영하는 법까지 덴츠 B팀이 성과로 입증한 노하우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