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직을 한 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경력이 있든 없든 간에 대부분의 정규직 입사자라면 보통 세 달 정도의 수습기간을 지난다. 나 또한 지난 기간 동안 수습사원이었다. 누군가는 이 기간을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깎인 월급을 받는 불운하고 부당한 시간이라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내기에 이 짧고도 긴 시간에 누릴 수 있는 설렘과 낯섦을 놓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지난 3개월간의 수습기간 동안 ‘누렸던’ 낯섦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지금 그 3개월이 앞으로 당신의 회사 생활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지금 그곳에서 오직 그 기간에만 할 수 있는 당신만의 멋진 추억을 쌓아보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편견 없는 다양함에 대한 모험

 

당신은 수습 기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정의하는 수습기간이란 이렇다.

 

편견이 없이 최대한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험의 시간

 

머지않아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어쩌면 지겨워질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푸릇푸릇하고, 생기 있는 유일한 시기. 그리고 스스로 지경을 넓혀가는 모험가가 되어본다.

돌이켜보니 그 지경은 크게 네 개로 구분될 수 있었다: 사람, 출퇴근길, 장소, 상황. 그리고 그 네 개의 점 위에서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나름의 할 수 있는 여러 두께로 점선, 실선 등의 제각기 다른 선들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1. 사람: 사고와 세계의 확장

 

‘사람’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많은 사람이 애정해 마지않는 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피상적인 모습만을 아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과거 겪었던 일들,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꿈꾸는 미래를 모두 알아가는 것이다. 사실 나는 쾌활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마음속으로는 회사에서 마주치는 동료에 대한 관심도가 100이라면, 실제 내비치는 것은 1 정도가 될까말까하다. 생각과 감정을 말보다 글로 하길 좋아하는 키보드 앞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내성적인 사람.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같은 팀에 외향적인 선임을 만나 꽤 빈번하게 점심시간마다 새로운 동료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만약 스스로가 낯을 많이 가려서 먼저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주변에 자신보다 말주변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출퇴근길: 다른 자아를 찾는 시간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나의 출퇴근 시간은 꽤 길다. 편도로 2시간이 조금 넘고, 왕복으로는 다섯 시간이 채 안 된다. 회사에서 가장 긴 통근 거리의 보유자. 어디에서 사냐는 질문에 답을 들은 상대방의 반응 중 열의 아홉은 “안 힘들어요?”였다. 물론 야근을 하는 날이면 체력적으로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어쩔 방도가 없다. 이런저런 사정에 따른 나의 선택이자 결정인 것을.

어떠한 이유에서든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써야 한다면, 그에 따르는 장점을 잘 활용해보면 좋지 않을까? 읽고 싶던 책이나 듣고 싶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침저녁 도시의 풍경을 제 3자의 눈으로 고요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복잡하게 얽혀있던 상념과 고민을 간섭 없이 할 수 있는 시간. 마음 먹기에 따라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길거리 위에서 얻을 수 있다. 또, 이런 길 저런 길을 가보면서 새로운 통근길을 발견하고, 익숙한 것들에 변화를 주어 낯설게 만드는 것도 삶의 지루함을 깨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월부터 이번 달까지 매월 출근길에 다른 공부를 해왔다. 자격증 공부, 영어 공부, 오디오 클립으로 강연 듣기, 글쓰기, 관심사 및 취미 서치, 뉴스레터 읽기… 그러다 집중이 안 되거나 피곤한 날에는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곤 했다. 물론 장시간 통근길이 힘든 순간이 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렇기에 얻는 값진 것들도 많다.

 

 

3. 장소: 감성이 맞는 아지트의 발견

 

집 주변 주 생활 반경을 벗어나 잘 가보지 않던 장소로 매일 출퇴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처음 가보는 공간과 장소들이 생긴다는 뜻. 매번 같은 곳만 반복해서 가는 것보다는 매일 다른 곳을 찾아가기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길 추천한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마음이 끌리고, 자주 가고 싶은 장소들의 교집합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의 취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회사가 종로 돈화문 근처이기 때문에 안국, 익선, 종로 등으로 많이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을 시도해본 결과, 지난 3개월간 방문한 곳 중 강한 끌림을 느끼는 곳들의 교집합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 동네 유명세에 비해 인파가 한산한 공간
  •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서비스
  • 확실한 콘셉트
  • 감상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식물들

 

그뿐만 아니라 조용한 돌담길과 산책길로 하루 한 번은 발걸음을 돌리고, 하루 20분 정도는 그곳에 머무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찾는 장소가 리스트업 되고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4. 상황: 낯선 감정들과의 조우

 

 

 

 

 

변화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움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반면,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는 당황스러움과 좌절감을 맛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낯섦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참 많다.

 

“인생은 모험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헬렌 켈러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무게감이 들면서도, 다르게 생각하면 모험과 기회의 경험의 연속일 수 있다.

 

가령 이런 것에서 변화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 이전과 현재 나의 일 처리 방식과 소통의 차이
  • 이전 회사 업무의 속도와 범위의 차이
  • 팀원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역량과 성향의 차이 등..

 

맞닥뜨리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지를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나의 변화와 성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수습기간이 마친 후 첫 월요일 퇴근길. 첫 출근을 앞두었던 3개월 전의 나를 떠올린다. 짧고도 길었던 3개월. ‘낯섦’을 통해 사고를 확장했고,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앞으로의 직장 생활도 수습 사원의 눈으로 매일 새롭게 관찰하고 느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lena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