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O리단’이라 부르는 곳들이 많습니다. 경리단, 연리단, 송리단, 해리단, 황리단, 봉리단 등등.. 이런 곳엔 항상 웨이팅을 부르는 가게들이 있게 마련이죠. 

근데 언젠가부터(아마도 을지로에서부터) 간판이 없거나 찾기 힘든 가게가 등장하기 시작했죠. 사실 간판, 네온사인은 자본주의의 상징이잖아요…? 그런데 간판이 없다뇨..!

이런 곳들 뿐이 아닙니다. 포시즌스 호텔에는 찰스 H.라는 바가 있는데요. 여긴 간판은 물론 입구도 찾기 어려워요. (커버 이미지는 찰스 H. 의 내부, 아래 사진은 외부 모습) 이곳은 금주령 시대에 숨어서 술을 마시던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하죠. 그런 스토리와 게임적인 재미 요소 때문인지 일부러 찾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한도전에 등장한 찰스 H. 기둥 같아 보이는 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다. (ⓒ무한도전)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이야기

 

예전에 10대가(Z세대) 페이스북 메신저를 쓴다는 얘기를 듣고… 왜?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죠 기성세대가 없으니까..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 블로그가 다시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에서 분석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TikTok이 뜬 것도, 잠깐이지만 Clubhouse가 뜬 것도 비슷합니다.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새로운 것을 써보고 싶은 겁니다. 

기본적으로 ‘이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하면 더 집중해서 들으란 뜻이고,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면 나 빼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이듯, 뭔가 숨기려고 하면 더 관심을 끌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보통 나와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이들에게 다시 공유하게 되죠. 

우리는(마케터는) 흔히 브랜딩을 하면 어떻게 더 ‘볼드’하게 보이도록 할까,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들을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했죠. 지금 개인들이 각자의 미디어에 노출해 주어야만 합니다. 돈을 주고 파워(또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쓸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올리게 만들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죠. 

그러려면 그들이 공유할 만한 강력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시그니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간판이 없다는 게 뭔가 공유할 수 있는 ‘비밀’이 될 수는 있어도, 공유할 ‘가치’를 만들어주진 못합니다. 다시 식당 얘기로 들어가 볼게요. 

요즘 지하철에 ‘어묵’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났습니다. 왜일까요? 일단 지하철에서 내리면 역 안에 어묵 냄새가 강력하게 퍼져옵니다. 원래 뭘 먹으려던 생각이 1도 없었지만 어느새 우린 냄새의 근원지로 찾아가 어묵과 떡볶이를 주문하고 있는 겁니다. 지하철이라는 밀폐된 환경과 어묵은 잘 어울리는 셈이죠. 

사람들 SNS에서 추천하는 가게엔 반드시 시그니처 메뉴가 있습니다. 하지만 SNS에서 냄새나 맛을 공유할 순 없습니다. 오직 ‘사진’ 뿐이죠. 그냥 맛있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거나 독특해야 사진을 찍어서 공유할 가치가 느껴집니다. 

 

 

을지 미팅룸 시그니처 메뉴인 구름 파스타, 이곳의 방문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이 사진을 올린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조이서(김다미)가 충고하죠. 이것저것 있는 메뉴 다 없애고 확실한 것 하나만 밀라고. 동네에 있는 가게도 아니고, 누가 평범한 음식 먹으러 이태원까지 오겠냐는 거죠. 

 

 

우리에겐 소비자가 공유하고 싶은 스토리가 있을까

 

계속 식당 얘기만 했군요. LG 스탠바이미의 예로 바꿔볼게요. 사실 스탠바이미는 대대적인 마케팅을 한 케이스는 아닙니다. 어떤 광고를 했는지, 누가 모델인지, 메인 카피가 무엇인지 떠오르시나요? 

하지만 소비자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에서 자발적으로 제품에 대한 사진과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스탠바이미가 성공한 진짜 이유는 그 이동의 편리함이라는 기능 자체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사진 찍기 좋다는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취미 생활 또는 나의 일을 공유할 때 멋진 아이템 역할을 하는 거죠.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스탠바이미와 함께 하는 사진을 올린다 (ⓒLG 스탠바이미)

 

 

비슷한 제품인 ‘룸앤TV‘도 마찬가지입니다. ‘캠핑’이라는 콘셉트와 결합하면서 소비자의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정작 캠핑 때 얼마나 TV를 얼마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캠핑과 영화라는 로망, 또 그걸 즐기는 나의 모습은 충분히 사진에 담아 공유할 가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구매할 동기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을지 미팅룸에 가서 ‘구름 파스타’를 먹었지만.. 딱히 맛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사장님 죄송) 저희 집엔 ‘룸앤TV’가 있지만 한 번도 캠핑에 가져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른들 말씀대로 사진은 남았죠. 그리고 여기에 글도 쓰고 있구요.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겁니다. 정말 많은 마케터가, 그리고 식당 사장님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구요. 

 

 

제품이 좋으면, 음식이 맛있으면 공유한다는 건 착각입니다. 공유하기 좋은 제품과 음식이 팔리는 겁니다. 

 

 

 

최프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