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체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겠다. 칼퇴하는 회사를 다녔는데 몸이 망가졌다. 야근을 한 것도 아니고 외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게 전부였는데 소화 불량에 두통으로 매일 타이레놀을 먹어야 했다.

그랬던 내가 며칠 전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너의 엄청난 슈퍼 파워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귀를 의심했다. 너 나한테 물어보는 거 맞아? 되물으려던 순간 그 친구의 진심 가득 호기심 어린 눈빛을 봤다. “회사 다니면서 글도 쓰고 강연도 하고, 매일 리추얼도 리딩하잖아! 도대체 그 시간과 에너지가 다 어디서 나오는 건지 너무 궁금해!”

그러게. 어쩌다 체력 소진율로는 남부럽지 않게 1등인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내 저질 체력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보자면 저질 체력으로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얻게 된 몇 가지 능력 때문이었다.

 

 

나가 놀 힘이 없어서 하게 된 공부

 

학생 때부터 줄곧 모범생이었다. 머리가 좋아서 한 번 본 내용을 모조리 외우는 암기왕도 아니었고 밤을 새우며 시험공부를 하는 악바리도 아니었지만 늘 성적이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언니의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던 내용이 있다. “동생이 맨날 침대에만 누워있고 같이 놀자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100원 주면 나랑 밖에 나가 놀겠지?” 정말이지 나가 노는 게 너무 싫었다. 정신없고 힘들어서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게 나에게는 최고의 놀이였다. 가만히 앉아 읽고 쓰는 일이 몸에 밴 거다. 공부는 자연스럽게 내 루틴이 되었다.

 

 

벼락치기 대신 계획-정리-시스템

 

매일 읽고 쓰는 공부와 시험공부는 달랐다. 시험공부는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고 암기하는 게임이다. 시험날이 다가오면 잠을 줄여서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한 문제라도 더 맞힐 수 있다. 문제는 내 몸은 잠을 줄일 수가 없다는 거다. 안 그래도 에너지가 없는데 잠까지 줄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정리와 계획에 공을 들였다. 친구들이 시험 2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4주 전부터 시작했다. A4를 접어 4주 캘린더를 만든 후 매일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정해서 조금씩 외웠다. 오늘 외우고 내일 외우고 모레 외우고 계속 반복해서 외우다 보면 밤을 새우지 않아도 시험 볼 때 까먹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계획적인 성격은 회사를 다니면서 더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학교 다닐 때야 못하면 나 하나 잘못될 뿐이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못하면 여러 사람이 고생한다.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싫고 수습할 에너지도 없어서 할 일을 잊지 않고 관리하는 시트,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시각화하는 시트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었다. 똑같은 일을 여러 번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엑셀 수식, SQL, 데이터 분석 툴을 공부했다. 한 번 세팅하면 계속 반복해서 쉽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노션으로 만든 회사 업무 대시보드

 

 

정리할 힘도 없으니까 미니멀리즘

 

이런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자연스러운 성향이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집 정리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어느 날 집을 치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치울 것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면 되잖아?” 그때부터 매일 버리고 비우고 안 사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게 되었다. 뭔가를 살 때 그 물건을 쓰면서 느낄 만족보다 택배 박스를 뜯고 버리고, 정리하고, 관리할 힘듦이 먼저 떠올랐다. 쇼핑이 일상인 이커머스 회사를 다니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짐’이라는 게 없다. 지금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보관하지 않는다. 지금 안 쓴다는 건 앞으로도 안 쓴다는 뜻이다. 먼지 쌓인 물건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버린다.

남들 다 사는 물건이라고 해서 꼭 살 필요는 없다. 우리 집에는 필수 가전이라는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 청소기, 무선 청소기, 스타일러가 모두 없다. 집안일은 그냥 내 손으로 한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옷은 기본 아이템 몇 가지를 사서 이리저리 믹스매치하며 입는다. 가짓수가 적으면 빨래 횟수도 줄어든다. 부엌에는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반찬 접시 4개, 물컵 2개가 전부다. 그때그때 쓰고 바로 씻어버리면 설거지가 간편하다.

미니멀리즘은 집안일을 넘어 일상 전반을 서서히 바꾸었다. 인간 관계도, 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쓰고 싶은 글도 정리했다. 내 마음과 에너지가 허락하는 만큼만 욕심내기로 했다.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살다 보면 “남들 다 이렇게 산다던데”라는 말에 허무하게 속아 넘어갈 때가 많다. 미니멀리즘은 그 말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남들 다 하는 거 안 하고 살아도 괜찮다. 명품가방 없이도 잘 산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 없이도 잘 산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에너지가 부족한데 남들 다 하는 거까지 따라 하면서 온전히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정말 필요한 것 맞아? 정말 원하는 것 맞아? 그렇게 몇 가지 루틴을 덜어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 취미였지만 요즘은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다. 도서관에 왔다갔다할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서 전차책을 사는 거다. 전자책은 정리할 필요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서 편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요리와 베이킹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렵고 힘들고 예쁜 요리 말고 애쓰지 않아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간단 채소 요리를 한다. 마트 장보기를 횟수를 줄였다. 2주에 한 번 채소 박스를 배송받는다. 시간이 나면 감각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집에서 차를 우리고 커피를 내려 마신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회사로 이직하기

 

아무리 업무를 효율화하고 집안일을 줄여도 줄어들지 않는 노동이 있었으니 바로 ‘출퇴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밥 먹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커피를 사서 사무실에 도착하면 하루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나가 근처 식당에 가서 속도 경쟁하듯 후다닥 밥 먹고 커피를 마신다. 칼퇴를 하면서도 매일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건 다 이 단체 점심 때문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남들이 보기에 마치 몸이 열 개라도 되는 것 같은 나의 퇴근 후 활동은 출퇴근 해방에서 시작되었다.

8시 반까지 푹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스트레칭하고 밥 먹고 출근해도 9시 반이다. 점심시간에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음악도 듣지 않고 영상도 보지 않고 온전히 식사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밥을 먹은 이후로 소화 불량에서 드디어 졸업할 수 있었다.

6시 반에 퇴근하면 바로 글 쓰고 리추얼 메이커 활동을 시작한다. 두 시간 내리 글을 써도 아직 8시 반이다. 이직 후 매일 퇴근 후 2시간씩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활동은 기록이 남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로 갑자기 비대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대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출간 제안을 받았다. 브런치에 꾸준히 써온 채소 일기는 채소 에세이 <매일매일 채소롭게>로 출간되었다.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꿈꾸던 오프라인 북토크는 하지 못했지만 온라인 프로그램이 다양해졌다. 온라인으로 북토크, 커리어 세미나, 콘텐츠 연재, 독서 모임, 리추얼 메이커 활동을 했다. 오히려 모든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기에 힘들게 장소를 이동할 필요 없이 집에서 할 수 있었다. 퇴근하고 바로 줌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고, 하루에 여러 개의 온라인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이라면 세미나 장소까지 이동하는 시간 외에 오프라인 행사를 위해 자리 배치, 물품 세팅까지  신경 써야 했을 텐데 온라인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힘이 들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활동이 기록이 되어 아카이빙으로 남는다. 오프라임이라면 모임이 끝나고 따로 글과 사진을 정리해서 어딘가에 올려야 기록으로 남지만, 온라인으로는 활동하는 과정이 실시간 기록이 되어 남는다. 따로 정리하고 편집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바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내 안으로 숨어들 수 있는 능력

 

살면서 누군가와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 싸우고 화내는 사람을 보면 그 에너지가 부러웠다. 나에게 익숙한 대처는 외면, 포기, 회피였다. 불편하고 낯선 상황에 놓이면 ‘나는 겁이 많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몸을 숙여 내 안으로 숨어들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날 때면, 대들지 않고 가만히 앉아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마치 유체 이탈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책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를 읽으면서 나의 대처 방식이 ‘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반응은 각성 또는 해리다. 쉽게 설명하자면, 각성은 맞서 싸우는 것이고 해리는 내 안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각성이 아닌 해리를 선택하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내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순응하는 소극적인 사람 같았다.

책의 공동저자인 오프라 윈프리 또한 각성보다는 해리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공동 저자인 페리 박사는 ‘해리’가 꽤나 긍정적인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모든 반응 성향은 절대적으로 나쁘지도 절대적으로 좋지도 않다. 그 성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단지 성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상대를 이해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그러면서 정작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굴고 자신의 성향을 약점으로 받아들인다.

오프라 윈프리는 해리를 완벽하게 강점으로 만든 케이스다. 오프라에게 페리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책 읽기를 좋아하죠. 책은 언제나 도피의 한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아주 사색적이죠. 또 당신은 머릿속으로 여러 장소에 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지요. 그것이 해리입니다. 건강하고 치유적이며 생산적인 해리지요.

자기가 지닌 해리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은 매우 강력한 것입니다. 그건 사색적 인지에 능하게 해 주죠. 특정 과제에 맹렬히 집중하게 해 주기도 하고요. 최면과 몰입, ‘무아지경’은 모두 해리가 가능하게 해 주는 몰입경 상태의 예들입니다. 자기가 언제 어떻게 몰입경에 들어갈지를 통제할 줄 아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에요. 저는 오프라 당신이 해리를 정말 잘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그건 당신이 지닌 초능력 중 하나예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의 공상과 몽상이 초능력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부족한 에너지는 나에게 ‘맞서 싸우라’보다는 ‘내 안으로 숨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덕분에 사색과 몰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언제 내 안으로 빠져들 수 있는지, 언제 빠져나와야 하는지 알고 조절하는 훈련을 했다. 일할 때마저 공상 속에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바로 그 조절 능력이 에너지 없는 내가 가진 초능력이 되었다.

해리 덕분에 회사가 끝나고 바로 다른 세계에 진입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하고, 시각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쌓아서 기록하고 아카이빙 한 덕분에 세미나, 책 쓰기, 모임 기획을 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나에게 “슈퍼 파워 에너지의 비밀”을 묻던 친구에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나의 체력을 뛰어넘는 에너지가 나오는 것 아닐까?”라는 대답을 해버렸으니까 말이다. 그 대답을 바로잡아야겠다.

친구야, 사실…

내 에너지의 비밀은 바로 저질 체력이란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