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사우나가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3의 공간은 제1의 공간인 집, 그리고 제2의 공간인 직장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카페가 대표적이며, 서구문화권에서는 동네 펍(pub)도 중요한 제3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3의 공간, 사우나가 인기를 얻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의 ‘소셜 사우나’ 숫자가 2023년 45개에서 2025년 147개로 급증했다고 한다.

 

 

영국의 소셜 사우나들

 

사진출처 & 참고링크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공중목욕탕(센토)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한국에서 그러하듯 일본에서 공중목욕탕은 점차 사라져 가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최근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함께 아트 갤러리, 카페, DJ 부스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흥미롭게도 서구권 사우나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중목욕탕 내에 있는 사우나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사우나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젊은 층 사이에서 건강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알코올, 카페인이 포함된 음료 소비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요한 사교 공간이었던 펍·카페를 대체하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면서도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한 공간으로 사우나·공중목욕탕이 등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우나는 정신건강 관리에 매력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에서 사우나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만화 ‘사도(사우나의 길)’ 의 영향이 컸는데, 해당 만화에서 사우나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을 ‘리셋(reset)’하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영미권의 소셜 사우나에서도 사람들은 명상이나 요가, 치유를 위한 글쓰기 워크숍 등을 즐긴다. 새로운 제3의 공간 주제가 될 만큼 ‘멘털 웰니스’는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멘털 웰니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국내 20대에서 40대 여성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건강한 삶을 위해 중요한 것’의 1순위로 전체 응답자의 약 60%가 ‘스트레스 관리’를 꼽았다. ‘신체운동’(22.6%), ‘식단 관리’(12.8%)를 택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조사 대상이 여성이었으나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정신건강 관련 치료를 받은 응답자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대의 36.4%, 30대의 29.6%가 ‘올해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이것은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3명 중 1명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을 만큼 정신건강 관리를 중요한 자기관리로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신건강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신체 건강검진처럼 마음 상태 진단을 챙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온라인상에는 도파민 중독 테스트, 우울증 진단, 번아웃(burn-out) 진단 등 정식 검사는 아니지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문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질환과 성향 검사도 있다.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HSP(초민감자) 성향 검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검사는 개인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구체적인 처방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자주 지각하는 사람이 본인의 문제가 단순히 의지 부족이 아니라 ADHD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약물치료 등 전문적인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

 

철학에 관한 관심도 높다. 몇 해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쇼펜하우어, 니체, 소크라테스, 부처 등 철학자의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책들은 공통적으로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고전 철학자의 통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실생활 고민에 적용해 조언을 주는 일종의 실용 철학서다.

 

유튜브에서도 ‘충코의 철학’ ‘5분 뚝딱 철학’ 등 어렵지 않은 언어로 일상의 고민을 철학으로 풀어내는 영상이 수십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젊은 세대가 철학을 소비하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가 지적 호기심도 많고, 무엇보다 어지러운 세상을 이해할 자원을 찾고 있다고 설명한다.

 

 


 

 

멘털 웰니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위험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1,500명의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8.1%가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이 ‘좋지 않다’라고 답했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응답자들은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타인·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 분위기를 꼽았다고 한다.

 

번아웃 멘털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전문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2030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키워드를 ‘자책’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만큼 이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다.

 

멘털 웰니스는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관광업에서는 최근 ‘수면 투어리즘’이 생겼다. 한마디로 숙면을 위한 여행으로 좋은 침구를 갖춘 호텔에서 숙박하며 관광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자연을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뷰티와 식품 산업에서는 ‘이너뷰티’의 하나로 스트레스 완화나 숙면을 돕는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선보인다. 조직에서도 정신건강 관리를 중요한 복지로 여기기 시작했다. 상담 서비스를 지원해 주거나 근무 시간 사이에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휴식 전용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 예측기관 WGSN은 최근 웰니스 트렌드로 ‘치유적 게으름(Therapeutic Laziness)’이란 용어를 제안했다. 수동적인 태도로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무기력해진 상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무런 행위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회복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말로 ‘허클더클(hurkle duckle)’도 쓰인다. 스코틀랜드말로 ‘(침대에서) 뒹굴뒹굴’이라는 뜻인데 마찬가지로 생산성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충분한 휴식을 내어주는 행동을 나타낸다. ‘갓생’이란 단어가 유행했을 만큼 이제까지 너무나 치열하게 산 사람들을 위해 휴식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 이번 내용은 공저로 집필한 <스물하나, 서른아홉 – 요즘 여성들이 쓰는 뉴노멀 (2025)> 을 참고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