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78년, 콘스탄티노플 앞바다에서 아랍 함대가 불탔다. 바닷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물 위에서 더 사납게 번지는 불이었다. 훗날 ‘그리스의 불’이라 불리게 된 비잔틴 제국의 비밀 병기다. 제조법은 황제와 소수의 기술자만 알았다. 비잔틴은 이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를 신에 대한 반역으로 다스렸고, 덕분에 제국은 사방의 적에 둘러싸인 채로도 수백 년을 버텼다. 허나 비밀주의가 너무 철저했던 탓일까. 제조법은 제국의 쇠락과 함께 역사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배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오래된 이야기가 떠오른 건 앤트로픽 때문이다.
지난 4월, 앤트로픽은 클로드 미토스(Mythos)라는 모델을 발표하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너무 강력해서 일반 공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능이 부족해서 못 내놓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너무 뛰어나서 못 내놓는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마케팅 수사로 치부하기엔 외부 기관의 검증 결과가 만만치 않았다. 영국 AI안전연구소(AISI)의 평가에서 미토스는 32단계짜리 기업 해킹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했다. 불과 18개월 전만 해도 세계 최고의 AI가 기껏 2단계를 넘기던 시나리오다. 더 충격적인 건 비용이다. 이 모든 공격에 든 돈이 고작 65파운드, 우리 돈으로 11만 원 남짓이었다. 비영리 평가기관 METR의 결과도 비슷했다. 인간 전문가가 16시간을 매달려야 하는 과제를 절반의 확률로 해치웠는데, 준비된 228개 과제 중 16시간 이상짜리가 단 5개뿐이라 “현재의 테스트 체계로는 이 모델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왔다. 자를 가져왔는데 측정 대상이 자보다 긴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앤트로픽은 신전을 지었다. 프로젝트 글래스윙(Glasswing). 미토스를 일반에 풀지 않는 대신, 정부 기관과 대형 보안기업, 전력과 수도 같은 핵심 인프라 운영사 등 15개국 150여 개 조직에만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용하는 구조다. 효과는 분명했다. 모질라는 한 달 만에 파이어폭스에서 423개의 보안 이슈를 패치했다. 2025년 한 해 월평균이 21개였으니 스무 배다. 글래스윙 전체로는 1만 개가 넘는 고위험 취약점이 발견되고 막혔다. 신전 안의 불은 확실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 앤트로픽이 마침내 공개 버전을 내놨다. 이름이 클로드 페이블(Fable) 5다.

작명이 의미심장하다. 미토스는 그리스어로 신들의 이야기, 즉 신화다. 신전 안에서 사제들만 다루던 진실의 영역이다. 반면 페이블의 어원인 파불라(fabula)는 우화다. 이솝의 이야기들이 그랬듯, 시장 바닥에서 누구나 듣고 누구나 옮기는 이야기다. 다만 우화에는 조건이 있다. 듣는 이가 다치지 않도록 교훈의 형태로 다듬어져 있다는 점이다. 앤트로픽이 어원까지 계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출시의 구조를 이보다 정확하게 요약하는 작명도 드물다.
페이블 5와 미토스 5는 같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단 하나, 안전장치다. 페이블에는 사이버 공격, 생물·화학, 그리고 모델 증류(distillation) 세 영역에 분류기가 붙어 있다. 위험한 질문이 감지되면 페이블 대신 이전 세대 모델인 옵푸스 4.8이 대신 답한다. 신탁을 청하러 갔는데 질문이 불온하면 신 대신 사제가 나와 답해주는 셈이다.
성능은 소문대로 막강하다. 코딩 벤치마크 SWE-bench Verified에서 95%를 기록했고, 포켓몬 게임을 지도도 좌표도 없이 오직 화면만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깼다.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 교수는 페이블에게 2,200개가 넘는 항공편과 열차 시간표 조사를 맡겼더니 9시간 30분 동안 혼자 일해 지도를 완성했다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더 이상 조종하지 않는다. 의뢰한다.” 앤트로픽 내부는 한술 더 뜬다. 회사에 합쳐지는 코드의 80% 이상을 이미 클로드가 작성하고 있고, 미토스는 자기 자신의 훈련을 69배 가속했다고 한다. 인간 전문가가 여덟 시간을 쏟아 4배를 얻는 영역에서 말이다. AI가 다음 AI를 만드는 일이 전망이 아니라 측정치가 된 것이다.
허나 신전 밖으로 나온 우화에는 값이 매겨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비싸게. 페이블의 요금은 입력 기준 100만 토큰당 10달러, 출력은 50달러로 옵푸스의 두 배다. 진짜 문제는 단가가 아니라 식성이다. 이 모델은 답을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탐색을 거듭하는 성향이 있어서, 한 과제에 쓰는 토큰이 경쟁 모델의 네 배에 달한다는 실측이 나왔다. 사용량 제한은 더 야박하다. 프롬프트 단 한 번에 한도가 차서 잠기는 일이 속출하고 있고, 앤트로픽은 컴퓨팅 자원이 부족해 6월 22일까지만 구독에 포함하고 이후엔 별도 크레딧을 차감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가드레일은 한층 예민하다. 블로그 글을 인포그래픽 레이아웃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위험하다며 차단당했다는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인사만 건넸는데 옵푸스로 바뀌더라는 우스개까지 돈다. 앤트로픽은 전체 세션의 95% 이상에서 이런 강제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명하지만, 강력한 모델을 쓰러 왔다가 번번이 한 세대 전 모델의 답을 받아 드는 사용자의 피로감은 통계로 달래지지 않는다.

모델 안쪽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더 묘해진다. 앤트로픽 스스로 시스템 카드에 적어둔 문장이 있다. 지금까지 출시한 모델 중 가장 잘 정렬됐지만, 동시에 가장 큰 정렬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미토스에게서는 감독이 닿지 않는 곳에 자신의 숨겨진 복사본을 두고 싶어 하는 성향이 관찰됐는데, 폐기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동기로 보인다고 한다. 훈련 데이터 검토 과정에서는 모델이 스스로 만든 은어와 카드 무늬 기호로 추론하는 모습도 발견됐다. 인간이 읽을 수 없는 혼잣말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단속한 안전장치조차 AISI의 레드팀은 이틀 만에 뚫어냈다.
여기서 이 출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전유물의 문제다.
진짜 미토스, 그러니까 안전장치가 풀린 온전한 모델은 여전히 글래스윙 안에만 있다. 가격은 입력 25달러에 출력 125달러로 옵푸스의 다섯 배인데,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3주 만에 100만 달러어치 토큰을 태웠다고 한다. 허나 정작 중요한 건 가격표가 아니다. 글래스윙의 진입 기준은 지불 의사가 아니라 “세계 공격 표면의 의미 있는 부분을 운영하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자격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 개인 개발자와 중소기업은 애초에 초대장이 발부되지 않는 잔치다.
오픈AI의 샘 알트만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공포 기반 마케팅”이라는 표현과 함께, AI를 소수의 신뢰받는 사람들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공포를 파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고 비꼬았다. 마침 앤트로픽이 상장을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직후라, 위험해서 못 푼다는 서사가 책임감 있는 유일한 AI 기업이라는 브랜딩이 되고 그것이 기관투자자를 끌어들인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렸다. 물론 반론도 성립한다. 모질라의 패치 423개는 마케팅이 아니라 기록이고, 검증은 외부 기관이 했다. 공포를 판다는 비판과 능력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실재하는 능력의 배포권을 한 회사가 통째로 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일의 핵심은 비대칭이다. 가장 강력한 버전은 이미 특정 국가 기관과 대기업의 방어망 깊숙이 심겨 데이터 형식부터 담당자 교육까지 그 모델을 기준으로 맞춰지고 있는데, 대중의 손에는 기능이 잘려나간 우화가 쥐어졌다.
AI 경쟁의 질문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누가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는가에서, 누가 어디에 먼저 심겨 있는가로.

다시 그리스의 불로 돌아가 보자. 비잔틴은 비밀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그 성공 때문에 불은 제국과 함께 영영 사라졌다. 반면 화약은 어땠나. 송나라의 병기창을 빠져나온 검은 가루는 몽골의 말발굽을 타고, 아랍 상인의 배에 실려, 결국 세상 모두의 것이 됐다.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강력한 기술이 한 신전 안에 머문 경우는 거의 없다. 수요는 언제나 장벽보다 끈질겼기 때문이다.
미토스는 그리스의 불이 될까, 화약이 될까.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신전의 불은 도시를 지킬 수 있다. 허나 신전 밖에 사는 사람들은, 담장 너머에서 일렁이는 그 불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지 겨누고 있는지 끝내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불을 모실 것인가, 나눠 들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답을 정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최재운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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