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유남생?(you know what I’m saying)
최근 어느 AI 스타트업과 미팅을 갖게 됐다. 자리에는 스타트업 대표도 있었고, 개발자도 있었고, 기획자도 있었다. 서로의 BM(비즈니스 모델)을 이야기하고, AI를 활용한 특정 기술 개발(에이전트 등)까지 다양한 논의를 거쳤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서로가 원하는 포인트에 닿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쓰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기획 단계’는 매우 중요한 법인데 그런 의미에서도 이런 미팅은 필수다. 기획 내용이 대략 그려지고 나면 R&R은 어떻게 나눌지, 실제 개발에서는 마일스톤을 어떻게 구성해서 진행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예전에 ‘판교 사투리’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영어라고 하기엔 한국어에 가깝고, 한국어라고 하기엔 영어가 곳곳에 박혀 있는 그 독특한 대화체 말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걸 알아듣는 어쩌면 기이한 현상들을 회사에서도 그리고 스타트업과의 미팅에서도 똑같이 겪고 있는 중이다. 킥오프 미팅부터 기획 단계에서도 그랬지만 개발 이슈가 본격적으로 끼어들자 영어인지 판교사투리인지 모를 언어의 밀도가 한층 더 짙어졌다. 기획자도 개발자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화에 집중했다. 옆에 있던 팀장이 귓속말을 건넸다.
“혹시 잘 이해하고 있어요?”
“네, 뭐… 대충 알아듣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나 역시 100%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국 되물었다.
“그럼 여기 이 포인트에서 대표님 말씀하신 내용은 이렇게 가져간다는 거죠?”
내뱉어진 말을 다시 한번 통역(?) 해야 하는 순간. 한국어로 말했어도 마찬가지였을까. 서로 잘 이해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늘 중요한데 대학 시절 배웠던 ‘SMCRE’ 모델이 문득 떠올랐다. 발신자(Sender)-메시지(Message)-채널(Channel)-수신자(Receiver)-효과(Effect)로 이어진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그 깔끔한 흐름 말이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실무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세세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모두 들여다볼 ‘틈’이 없다. 그랬다간 회의 자체가 하염없이 늘어질 테고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의사결정에도 발목을 잡힐 테니까.
“오늘 이야기 나눈거 메일로 공유 좀 해주세요”
“네 저희가 PRD랑 SoW부터 준비해서 메일로 전달하겠습니다”
이쯤 되니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영어를 새로 배우면 되는 건가? 개발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건가? 영어를 잘하면 개발자들이 말하는 개발 용어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거꾸로 개발 언어를 잘 배우면 영어도 자연스럽게 따라올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일부) 우리말도 그렇지만 영어 단어 하나에도 여러 뜻이 겹쳐 있는 경우가 있다. ‘right’이라고 하면 ‘맞다’는 뜻도 되고, ‘권리’도 되고, ‘오른쪽’도 된다. ‘object’라는 단어도 물체, 대상, 객체 등으로 두루 쓰이는데, 개발 미팅에서는 이 단어가 번역 없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모든 인스턴스는 오브젝트죠.”
“네…? 뭐라고요?” (뭔소리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건 한국말 안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주소가 어떻게 되죠?”
잠깐 휴대폰 만지작 거리던 내게 질문이 들어온다.
“아, 네. 여기는 서울시…”
“아 아뇨, 그거 말고요. 이거, 사이트 어드레스요. 그러니까 여기 사이트 주소. 그거 말고 이거이거”
파이썬에서도 ‘오브젝트 어드레스’, 즉 객체 주소라는 말을 쓰긴 한다.
결국 언어라는 게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단어도 전혀 다른 옷을 입는다는 거다.
그 맥락만 잘 잡아낼 수 있다면, 단어 자체를 몰라도 대화는 얼추 굴러간다. 완벽한 사전적 이해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단어가 뭘 가리키는지’ 감을 잡는 능력이 오히려 더 실전적이다. 이러니 경험은 중요한 법. 그래서 신입도 경력 좀 있는 신입을 뽑게 되는 건가? 결국 실무에서 부딪히며 차근차근 몸으로 익히는 게 가장 빠른 습득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다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실무 미팅에서 최소한의 진땀은 흘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예습은 하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네이버나 구글에서 하나하나 뒤질 필요 없이 생성형 AI에게 슬쩍 물어보면 된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편리한 시대인가 말이다.
물론 애초에 어려운 용어 없이 다들 쉬운 말로 풀어 이야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바닥에서는 앞서 말한 판교 사투리나 영어 섞인 개발 용어가 오히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통할테니 결코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더 했으면 더 했지.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언어가 누군가에겐 진입장벽이 되는 셈인 것도 (어쩌면 불편한) 사실. 편리함과 소외감이 한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보면서 가끔은 그 미묘한 괴리감을 느낀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니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다.
대충 왜 이렇게 쓰는지 알 것 같다.

해당 콘텐츠는 Pen잡은 루이스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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