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 스타트업의 연대에서 3,000개 회원사로

‘증명의 10년’을 지나 시장·AI·자본·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코스포의 다음 장

 

 

지난 9월 9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 출범 10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S6에서 미디어데이 ‘NEXT Chapter’가 열렸습니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김봉진 초대 의장부터 박재욱 3대 의장, 한상우 4대 의장, 취임 6개월 차의 김재원 5대 의장까지 코스포를 이끌어온 네 명의 리더가 한 무대에 오른 특별대담이었습니다.

2016년 50여 개 스타트업의 연대로 시작한 코스포는 현재 약 3,000개 회원사가 함께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무대에서 반복된 이야기는 ‘얼마나 커졌는가’보다 조금 달랐습니다.

 

10년 전에는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실제 시장에서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창업가 역시 사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규제와 싸우며 시작된 지난 10년,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변곡점에서 시작된 다음 10년. 숫자로는 담기 어려웠던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가 네 명의 대화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 S6에서 열린 코스포 출범 10주년 미디어데이 ‘코스포가 걸어온 10년의 여정(Beyond 10 : The Journey of Innovation)’ 세션에서 지난 10년의 성과와 여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콜버스 아세요?” — 창업자 20~30명이 모였던 그날

 

김봉진 초대 의장은 코스포의 출발점으로 2016년 ‘콜버스’ 이슈를 꼽았습니다. 당시 규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스타트업 창업자 20~30명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협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결정적 계기는 야놀자 이수진 대표의 한마디였습니다. “야놀자나 배달의민족은 이슈가 생기면 대응할 인력이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회사들은 어떻게 대응하냐”는 물음이었죠.

김 의장은 당시를 돌아보며 “규제 문제로 스타트업들이 모인 협회가 있는 나라가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그때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협회가 여전히 규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게 그의 진단입니다.

박재욱 의장은 타다 사태 당시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동행했던 기억을, 한상우 의장은 김봉진 의장이 셋째 아이 이름도 못 외울 만큼 협회 일에 매달렸던 일화를 꺼내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딱딱한 협회 역사가 아니라, 그 시절을 함께 버틴 사람들의 온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9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 S6에서 열린 코스포 출범 1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역대 의장들이 코스포 특별대담(KSF Special Dialogue)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박재욱 3대 의장(쏘카·에이펙스모빌리티 대표), 김재원 5대 의장(엘리스그룹 대표), 김봉진 초대 의장(그란데클립 의장·우아한형제들 창업자), 한상우 4대 의장(위즈돔 대표).

 

 

 

타다가 남긴 것 — “우리는 배민팀 없는 회사를 만들자”

 

가장 무거웠던 이야기는 역시 타다였습니다. 김봉진 의장은 타다 사태를 “업계 전체에 좌절감과 상실감을 준 사건”이라 표현했습니다. 이후 재창업할 때 팀원들과 처음 나눈 다짐이 “배민팀(대관·홍보 대응 조직) 필요 없는 회사를 만들자”였다는 대목은, 그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박재욱 의장은 여기에 언론의 프레이밍 문제를 더했습니다. 새로운 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을 “기득권 대 혁신가의 싸움”으로만 소비하려는 시선 때문에, 정작 필요했던 “이 선택으로 피해받는 사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라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유산 — 정당성, 공동의 목소리, 연대, 연결

 

이날 발표에서는 코스포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것을 ‘4가지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정리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정당성, 공동의 목소리, 연대, 연결 — 네 가지 키워드로 지난 10년을 되짚는 프레임이었는데, 숫자로 보여주는 성과보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 정당성: 혁신가가 ‘도와줘야 할 약자’ 또는 ‘눈여겨봐야 할 잠재적 문제아’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체로 인정받는 일

  • 공동의 목소리: “한 사람이 말하면 민원이 되지만, 모두가 말하면 사회적 의제가 된다” — 회원사 50개에서 3,000개로 늘어난 만큼, 이 목소리의 밀도도 달라졌다는 진단

  • 연대: 창업가와 창업가가 서로에게 건넨 도움들이 쌓여 만들어진 자산. 코로나 시기 잠시 느슨해졌지만, 다시 미래지향적 연대로 재편이 필요한 시점

  • 연결: 컴업(COMEUP)을 통해 만들어온 글로벌 네트워크. “연결해서 뭐가 됐냐”는 질문에, 이제는 그 연결을 발판 삼아 실질적 존재감을 만들 차례라는 답

 

 

 

“선망받는 기업가 1위가 이재용, 2위가 정의선” — 창업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김재원 신임 의장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초·중학생이 선망하는 기업가 1위가 이재용, 2위가 정의선”이라는 설문 결과를 전하며 소감을 물었다고 합니다. 김 의장은 “창업가가 아직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한 끝에, 결국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창업자 스스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규제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만큼, 창업가 스스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사회적 기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협회의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스스로 브랜딩하고 증명하는 주체로 — 이 지점이 이날 대담에서 가장 결을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김재원 5대 의장이 대담을 진행하는 모습 

 

 

다음 10년, 5개의 키워드: 시장·혁신·확산·성장·유산

 

김재원 의장은 이어진 비전 발표에서 다음 10년의 방향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시장: 보조금을 넘어, 정부가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는 구조
  2. 혁신: “허용된 것만 하라”가 아니라 “금지된 것 외엔 다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3. 확산: 초기 투자 → 성장 투자 → 회수 → 재투자로 이어지는 자본 선순환, 글로벌 VC와의 연결
  4. 성장: RSU 등 주식 보상 제도를 창업자·임원뿐 아니라 구성원 전체로 확대
  5. 유산: 성공한 창업가의 자본과 경험, 그리고 실패의 경험까지도 다음 세대에 넘기는 ‘페이 포워드’

김 의장은 이를 “증명의 10년을 넘어 성장의 10년으로”라는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Q&A에서 나온 더 뾰족한 이야기들

 

특별대담과 비전 발표가 큰 그림이었다면, 이어진 기자 질의응답에서는 훨씬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질의응답을 진행중인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와 5대 의장 김재원님

 

 

① AI 크레딧, 이미 회원사에 풀고 있다
김재원 의장은 “AI가 필수재가 됐다”며, 코스포가 최근 앤스로픽 클로드, 오픈AI의 코덱스·챗GPT, 노션 등의 AI 크레딧을 회원사에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네이버클라우드 크레딧도 곧 추가될 예정입니다. 이사사로는 하이퍼엑셀, 리벨리온, 마키나락스, 본에이아이 등 AI 기업들이 새로 합류하며, 코스포의 무게중심이 플랫폼 중심에서 AI 기업 중심으로도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② “정부를 매입이 아니라 구독으로 설득하겠다”
‘정부가 첫 고객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는지도 나왔습니다. 방위산업협의회, 피지컬AI협의회 사례를 들며, 정부 조달 방식을 기존의 ‘전량 매입’에서 ‘월 구독료’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훨씬 낮아지는 변화입니다.

③ “유럽을 벤치마킹하지 말라”
가장 날 선 발언은 데이터 규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김 의장은 국내 AI 기본법이 유럽 규제를 참고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럽에 AI 기업이 뭐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 산업이 위기”라고 꼬집었습니다. 규제를 설계할 때 산업을 실제로 선도하는 국가(미국·중국)를 참고해야지, 먼저 법을 만든 국가를 참고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④ 고용 경직성 — AI 시대의 숨은 규제
기존 제조업 기반으로 설계된 업무시간 규제가, 업무시간과 성과의 상관관계가 옅어지는 AI 시대 스타트업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대기업 대상으로 만든 규제가 스타트업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 자체가 “다시 도전하기 두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⑤ 코스닥 상장폐지 기준, “만족스럽지 않다”
정부가 유예기간을 늘린 것은 긍정적이지만, 매출·이익이 성장 중인데도 시총만으로 퇴출 위기에 몰리는 상황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투자 회수 시장이 흔들리면 신규 투자 자체가 위축되고, 스톡옵션·RSU 같은 인재 보상 체계도 결국 상장이라는 출구가 있어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⑥ 딥테크 쏠림은 문제가 아니라 “옥석 가릴 시점”
김 의장은 딥테크 쏠림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쏠림 속에서 아직 주목받지 못한 로컬·비(非)딥테크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게 투자자에게는 기회라는 겁니다. 최지영 대표는 비바테크 현장에서 프랑스 대중이 가장 반가워한 건 ‘K’가 붙은 소비재·콘텐츠 기업들이었고, 이들이 오히려 해외 VC의 관심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사례를 더했습니다.

⑦ 폐업률 증가, “폐업이 아니라 재도전이 핵심”
창업 5~7년 내 폐업은 원래도 흔했다는 전제 위에 “폐업 자체보다 폐업 이후 재도전 로드맵이 관건”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코스포가 없어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대담 마지막 질문인 “10년 뒤 20주년 기사 제목이 뭐였으면 좋겠냐”라는 질문에 박재욱 의장과 김봉진 의장의 답은 방향이 같았습니다. 코스포가 더 커지는 미래가 아니라, 코스포가 없어도 되는 미래를 그린 겁니다. 규제와 싸우려고 모인 단체치고는, 꽤 역설적인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설은 이 협회가 10년간 지켜온 목적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협회의 존속이 아니라 협회가 없어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게 애초에 코스포가 답하려 했던 질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