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UX의 역사 1편

 

UX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어디서 시작이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헨리 드레이퍼스는 제조 방식이나 유행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정립한 인물이다. UX의 기초를 마련한 헨리 드레이퍼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무대에서 내려온 산업 디자인 1세대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는 190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여섯 살 무렵 당대 최고의 무대 미술가였던 노먼 벨 게디스(Norman Bel Geddes)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브로드웨이 연극의 무대를 디자인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무대 디자인은 그에게 인간중심의 디자인을 준비하는 훈련장이 되었다. 배우의 동선과 소품의 위치, 관객의 시선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무대 위에서 그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먼저 살피는 기초를 익혔다. 1929년 그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건 디자인 사무소를 열었고, 이 사무소는 이후 40년 넘게 미국인의 일상용품을 바꿔 놓았다.

 

 

 

 

사무소를 열기 전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은 그에게 매장에서 팔릴 상품의 겉모습을 손봐 달라는 일을 제안했다. 드레이퍼스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제품의 형태는 매장 진열대가 아니라 공장에서, 즉 제조와 사용 방식의 자체에서부터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 월터 도윈 티그(Walter Dorwin Teague) 등과 함께 미국 산업 디자인 1세대로 꼽히지만, 유선형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대에도 늘 사용자의 몸과 습관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결이 달랐다.

 

사무소의 운영 방식도 그의 철학을 닮아 있었다. 드레이퍼스는 한꺼번에 많은 일을 받는 대신 소수의 회사와 수십 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벨 전화, 존 디어, 후버, 허니웰 같은 회사들은 한 번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 세대에 걸친 파트너였다. 제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관찰하고, 개선하고, 다시 관찰하는 순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갈색 정장만 입어 갈색 정장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디자이너는, 화려한 쇼맨십 대신 데이터와 관찰을 앞세우는 새로운 디자이너의 초상을 만들어 갔다.

 

 

 

전쟁이 만든 학문, 인간공학


2차 세계대전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학문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전쟁 중 미군에서는 충분히 훈련받은 조종사들이 멀쩡한 비행기를 착륙 도중 부수는 사고가 반복되었다. 심리학자 알폰스 차파니스(Alphonse Chapanis)는 B-17 폭격기의 조종석을 조사한 끝에, 사고의 원인이 조종사의 부주의가 아니라 플랩과 착륙 장치의 스위치가 똑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설계에 있음을 밝혀냈다. 스위치 손잡이에 서로 다른 모양을 입히자 같은 유형의 사고는 급격히 줄었다. 조종사 과실이라 불리던 것이 실은 설계 과실이었던 셈이다. 레이더 화면, 대공포 조준기, 조종석 계기판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지각과 기억의 한계에 기계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전장의 데이터로 증명해 갔다.

 

 

 

전쟁이 끝나자 이 지식은 민간으로 흘러들었다. 1949년 영국의 심리학자 머렐(K. F. H. Murrell)은 그리스어로 일을 뜻하는 에르곤과 법칙을 뜻하는 노모스를 합쳐 에르고노믹스(ergonomics)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같은 해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인간공학 학회가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57년 휴먼 팩터스 소사이어티가 창립되면서 인간공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전후 미국의 소비 붐 속에서 세탁기, 청소기, 전화기 같은 기계가 처음으로 보통 사람들의 집 안에 쏟아져 들어왔고, 훈련받지 않은 사용자가 기계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었다. 군용 장비에서 태어난 인간공학이 민간 제품으로 영역을 넓힌 배경이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학계의 인체 측정 데이터를 상업적인 디자인 실무로 적극적으로 끌어온 인물이 드레이퍼스였다.

 

 

같은 시기 학계에서는 인간의 수행 능력을 수식으로 기술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전시에 조종사의 조작 오류를 연구했던 심리학자 폴 피츠(Paul Fitts)는 1954년, 목표물이 멀고 작을수록 그것을 가리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관계를 정량화한 법칙을 발표했다. 훗날 피츠의 법칙이라 불리게 되는 이 공식은 반세기 뒤 마우스 커서와 버튼 크기를 다루는 화면 인터페이스 설계의 기본 도구가 된다. 1950년대의 인간공학은 이렇게 관찰과 측정, 수량화라는 과학의 언어로 무장해 갔고, 디자인은 더 이상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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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사람을 위한 디자인’


1955년 드레이퍼스는 25년 넘는 실무 경험을 정리한 책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ing for People)’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디자이너가 다루는 대상이 사물이 아니라 사람임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디자인된 물건에 타고, 앉고, 그것을 보고, 누르고, 돌리며 살아간다. 따라서 물건이 사용되는 순간의 경험이 좋지 않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형태도 실패라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이다. 디자이너는 제조사의 이익과 사용자의 필요 사이에서 사용자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는 직업 윤리도 함께 제시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명확한 문장으로 남겼다. 드레이퍼스는 “제품과 사람 사이의 접점이 마찰의 지점이 되면 산업 디자이너는 실패한 것이다”라고 썼다. 반대로 그 접점에서 사람들이 더 안전해지고, 더 편안해지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거나 그저 더 행복해진다면 디자이너는 성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품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이라는 표현은 반세기 뒤 인터페이스와 터치포인트라는 이름으로 UX 디자인의 중심 개념 중 하나가 된다. 책이 나온 1955년은 아직 컴퓨터 화면도 소프트웨어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접점의 품질이 곧 디자인의 품질이라는 명제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드레이퍼스의 방법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었다. 그는 트랙터를 디자인하기 위해 직접 트랙터를 몰았고, 재봉틀을 맡았을 때는 바느질을 배웠으며, 전화기를 맡았을 때는 교환 업무를 지켜보았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현장 관찰과 맥락 조사를 디자인 프로세스의 표준 절차로 만든 것이다. 제품을 쓰게 될 사람의 자리에 직접 앉아 보는 이 태도는 이후 사용자 리서치라는 직능의 원형이 되었다. ‘사람을 위한 디자인’은 출간 직후부터 산업 디자인의 고전이 되었고, 지금도 디자인 교육 과정에서 읽히는 몇 안 되는 1950년대 저작으로 남아 있다.

 

 

 

조와 조세핀, 평균 인간의 초상


‘사람을 위한 디자인’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사람 그림 두 장이다. 드레이퍼스는 군과 학계에 축적된 방대한 인체 측정 데이터를 종합해 평균적인 미국 성인 남녀의 신체 치수를 담은 도판을 만들고, 조(Joe)와 조세핀(Joseph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와 조세핀은 키와 팔 길이, 앉은키, 손가락 치수, 시야각까지 수치로 정의된 가상의 사용자였다. 두 사람은 트랙터에 앉은 자세, 전화기를 든 자세, 다림질하는 자세 등 갖가지 상황으로 그려졌다. 드레이퍼스는 이들을 단순한 치수표가 아니라 성격과 사정을 가진 인물처럼 대했고, 디자인 회의에서 조라면 이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겠느냐는 식의 질문이 오갔다. 사무소의 디자이너들은 이 도판을 벽에 붙여 두고 새로 디자인하는 모든 제품을 조와 조세핀이 편하게 앉고, 잡고, 닿을 수 있는지 검증했다.

 

 

 

 

이 작업은 1960년 ‘인간의 척도(The Measure of Man)’라는 독립된 도판집으로 확장되었다. 사무소의 디자이너 앨빈 틸리(Alvin R. Tilley)가 그린 정밀한 도면들은 평균값만이 아니라 백분위수 개념을 도입해, 작은 체구의 여성부터 큰 체구의 남성까지 인구 분포 전체를 설계 기준으로 삼게 했다. 평균 사용자만을 위한 디자인은 결국 수많은 사용자를 배제한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어린이와 노인, 휠체어 사용자의 치수까지 포괄하려 한 이 도판집은 훗날 접근성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의 토대가 되는 자료로 이어졌다.

 

드레이퍼스 사후 그의 회사는 1974년 닐스 디프리언트(Niels Diffrient) 등의 주도로 회전식 카드 형태의 인체 측정 도구 ‘휴먼스케일(Humanscale)’을 펴내며 이 자산을 이어 갔다. 다이얼을 돌리면 특정 백분위수 인체의 치수가 창에 나타나는 이 도구는 수십 년간 전 세계 디자인 스튜디오의 표준 참고 자료로 쓰였다.

 

 

구체적 수치와 이름을 가진 가상 인물로 사용자를 대표하게 한 조와 조세핀은, 오늘날 UX 디자인에서 쓰이는 퍼소나 기법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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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전화기, 손에 맞춘 기계


1930년 벨 전화 연구소는 유명 예술가와 디자이너 열 명에게 미래의 전화기 스케치를 의뢰했다. 드레이퍼스는 이 의뢰를 거절했다. 전화기의 형태는 종이 위에서 바깥부터 그려 넣을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와 함께 내부 부품과 사용 방식에서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벨은 오히려 이 고집에 설득되어 그를 고용했고, 이후 드레이퍼스 사무소와 벨의 협업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 그 첫 결실이 1937년의 모델 302다. 송화기와 수화기를 하나로 합친 핸드셋을 얹은 이 전화기는 이후 십여 년간 미국 가정의 표준 전화기가 되었고,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20세기 중반 미국 가정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남았다. 수백만 가정에 놓일 물건의 형태를 한 디자이너가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사건이었다.

 

 

 

1949년에 나온 모델 500은 인간공학이 대량 생산품에 적용된 교과서적 사례다. 드레이퍼스 팀은 벨 연구소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수천 건의 인체 치수 자료를 참조해 수화기의 무게와 형태, 얼굴에 닿는 각도를 다듬었다. 가장 유명한 개선은 다이얼이다. 이전까지 손가락 구멍 안에 있던 숫자와 문자를 구멍 바깥의 링으로 옮겨, 다이얼을 돌리는 손가락이 숫자를 가리는 바람에 잘못 거는 실수를 줄였다. 사용자 테스트와 통계 자료가 형태를 결정한 이 과정은, 디자이너의 감각이 아니라 사용자의 수행 데이터가 디자인의 근거가 되는 방식의 이른 사례였다.

 

이 협업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상대였다. 벨 연구소는 당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간공학 심리학자를 고용해 제품 개발에 참여시킨 기업 연구소였고, 전화 걸기라는 행위 자체를 실험실에서 연구했다. 디자이너의 스케치와 심리학자의 실험 데이터가 한 제품 안에서 만나는 이 구조는, 훗날 컴퓨터 업계에서 디자이너와 인지과학자가 한 팀을 이루는 방식의 원형이 되었다. 모델 500은 이후 수십 년간 수천만 대가 생산되며 20세기에 가장 널리 쓰인 전화기 중 하나가 되었고, 전화기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오르는 형태 그 자체가 되었다. 드레이퍼스 사무소는 이후에도 1959년의 프린세스 전화기, 1965년의 트림라인 전화기까지 벨의 제품 계보를 이어 갔다. 특히 트림라인은 다이얼을 수화기 안으로 옮겨 침대나 소파에 앉은 채로도 전화를 걸 수 있게 한 제품으로, 사용 맥락의 변화를 형태로 번역한 사례로 꼽힌다.

 

 

 

후버 청소기에서 기관차까지


드레이퍼스의 원칙은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1936년의 후버 150 진공청소기는 겉모습을 매끈하게 다듬는 데 그치지 않고 무게와 손잡이, 조작부의 위치를 청소하는 사람의 자세에 맞춰 재설계한 제품이었다. 1938년에는 존 디어의 트랙터를 맡아 농부가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좌석의 형태와 계기의 배치를 개선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실제로 밭에서 트랙터를 몰아 보았고, 이후 존 디어와의 협업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트랙터는 하루 열 시간 넘게 몸이 닿아 있는 기계다. 좌석의 곡면과 발판의 높이, 흙먼지 속에서도 읽히는 계기의 크기 같은 세부가 곧 농부의 피로와 안전을 결정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같은 1938년 그는 뉴욕과 시카고를 잇는 특급 열차 20세기 특급(20th Century Limited)의 디자인을 총괄했다. 기관차의 외형부터 객차 인테리어, 식당차의 식기와 성냥갑까지 여행의 모든 접점을 하나의 언어로 통합한 이 프로젝트는, 제품 하나가 아니라 경험 전체를 디자인한다는 오늘날의 관점을 앞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1953년에 디자인한 허니웰의 원형 온도조절기는 이 관점의 결정판이다. 벽에 붙은 네모난 기계 장치였던 온도조절기를 그는 둥근 다이얼 하나로 바꾸었다. 돌리는 동작 하나로 조작이 끝나고, 모서리가 없어 어느 각도로 달아도 비뚤어져 보이지 않으며,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반세기 넘게 생산되며 온도조절기의 표준 이미지가 되었고, 2010년대의 스마트 온도조절기들이 다시 원형 다이얼로 돌아간 것은 이 디자인에 대한 오마주였다. 웨스트클록스의 빅 벤 알람시계, 폴라로이드 카메라, 여객기 객실 인테리어 역시 그의 사무소를 거쳤다. 품목은 달라도 방법은 같았다. 쓰는 사람을 관찰하고, 치수를 재고, 접점을 다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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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기계를 맞춘다는 원칙의 유산


드레이퍼스가 평생 반복한 원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계에 사람을 맞추도록 강요하지 말고, 사람에게 기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다. 산업화 이후 훈련과 적응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었고, 기계는 기술이 허락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뒤 인간이 거기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드레이퍼스는 그 방향을 뒤집었고, 인체 측정과 현장 관찰이라는 방법으로 뒤집기가 실제로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는 1965년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의 초대 회장을 맡아 직업의 기준을 세웠고, 1972년에는 전 세계의 그림 기호를 집대성한 ‘심벌 소스북(Symbol Sourcebook)’을 펴내 언어 없이 소통하는 시각 기호 체계를 정리했다. 오늘날 화면 속 아이콘 디자인의 먼 뿌리가 되는 작업이다. 그는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그의 방법이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평균적인 인체를 대표하는 조와 조세핀이라는 발상은 훗날 평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실제 인간도 모든 치수에서 평균이 아니며, 표준 사용자를 상정하는 순간 그 표준 바깥의 몸들이 지워진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비판조차 드레이퍼스가 열어 놓은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백분위수 도판으로 이미 평균 바깥의 인구를 설계 기준에 포함시키려 했고, 사용자를 측정하고 대표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면 그 시도의 한계를 논할 언어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데이터로 이해하되 데이터가 인간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긴장은, 지금도 사용자 조사와 퍼소나를 다루는 모든 디자이너가 해결해 가고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의 유산은 산업 디자인의 경계를 넘는다. 접점이 곧 디자인이라는 명제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제1원리가 되었고, 조와 조세핀은 퍼소나로, 현장 관찰은 사용자 리서치로, 인체 측정 도판은 접근성 가이드라인으로 이어졌다.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정식화한 인간 중심 디자인과 오늘날의 UX 직군은 컴퓨터 화면 위에서 일하지만, 그 밑에 깔린 사상은 드레이퍼스가 1955년에 이미 완성해 놓은 것이다. 사용자를 관찰하라, 데이터로 검증하라, 접점에서 마찰을 제거하라는 세 가지 지침은 이후 등장하는 모든 인터페이스 디자인 방법론의 뼈대가 되었다. 대상이 전화기에서 스크린으로, 다시 인공지능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이 물건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은 마찰의 지점인가, 아니면 만족의 지점인가. UX의 역사는 이 질문을 물려받으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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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유훈식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