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골 공항, 샤를 드골 광장, 항공모함 샤를 드골. 조국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장군은 어떻게 프랑스의 상징이 됐을까? 11월 개봉하는 영화 <드골>이 그린 1940년 ‘6월 18일의 호소’와 저항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해마다 7,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남자의 이름 위에 내려앉습니다.

파리행 비행기가 착륙하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이름, ‘샤를 드골 공항’입니다. 시내로 들어가 개선문 앞에 서면 또 그 이름이 기다립니다. 개선문을 둘러싼 광장의 공식 명칭이 ‘샤를 드골 광장’이기 때문이죠.

바다로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이름 역시 ‘샤를 드골’입니다. 하늘의 관문, 수도의 심장, 바다의 기함. 프랑스는 가장 상징적인 자리마다 이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86년 전, 이 이름은 전혀 다른 곳에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사형 선고문입니다. 1940년 8월, 프랑스 군사법원은 이 남자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은 법정에 없었습니다. 이미 조국을 떠나 바다 건너 런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이 사형을 선고한 장군은, 어떻게 조국의 공항과 광장과 항공모함이 됐을까요? 이 반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오는 11월 국내 개봉하는 <드골>입니다.

공항 이름으로만 알던 ‘드골’은 도대체 누구였는지, 지금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

 

CDG, 세 글자에 담긴 이름

파리 북부 루아시. 이곳에 들어선 공항은 원래 ‘파리 노르(북부) 공항’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계획됐습니다. 1966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1974년 3월 8일 문을 연 공항에는 다른 이름이 걸렸습니다. 샤를 드골. 공항 코드 ‘CDG’도 그의 이니셜입니다.

2025년 이곳을 오간 여객은 약 7,200만 명.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입니다. 프랑스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드골’이라는 이름을 지나 이 나라에 첫발을 딛는 셈이죠.

개선문 광장의 사연은 더 극적입니다.

열두 갈래 대로가 별처럼 뻗어 나가 오랫동안 ‘에투알(별) 광장’으로 불렸던 곳. 1970년 11월 9일 드골이 세상을 떠나자, 불과 나흘 뒤 광장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샤를 드골 광장’으로요.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개선문을 그의 이름으로 감싸 안은 것입니다. 지금도 광장 아래 지하철역은 두 이름을 합친 ‘샤를 드골-에투알’역입니다.

그리고 2001년, 프랑스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샤를 드골’호가 취역합니다. 하늘과 땅에 이어 바다에까지 그의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 이름의 연결고리는 영화에서도 이어집니다. <드골> 제작진은 8월 15일 바로 이 광장을 통째로 통제하고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드골의 이름이 붙은 광장에서, 드골의 이야기를 찍은 셈이죠. (→ 개선문 촬영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큰 아스파라거스’라 불린 고집불통 장교

1890년 11월 22일, 프랑스 북부 릴에서 태어난 샤를 드골. 사관학교 시절 동기들은 그를 ‘큰 아스파라거스’라고 불렀습니다. 키 196cm의 껍충한 체격 때문이었죠.

전장에서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베르됭 전투에서 독가스에 쓰러져 독일군의 포로가 됩니다. 수용소에서 그는 다섯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다섯 번 붙잡혀도 다시 달아나려 한 고집. 훗날 나라 전체가 항복했을 때,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도 바로 이 고집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말 안 듣는 장교’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30년대 그는 앞으로의 전쟁은 참호가 아니라 전차가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방어선에 기대던 프랑스 군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죠.

그리고 1940년, 그의 경고는 최악의 방식으로 현실이 됩니다.

쉰을 앞둔 마흔아홉 살의 장교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그 뒤 30년의 행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 샤를 드골의 행보
1940년 프랑스 항복 후 런던에서 저항을 호소, ‘자유 프랑스’를 이끎
1944~1946년 파리 해방 후 프랑스 임시정부 수반
1958년 정치적 위기 속에 복귀, 새 헌법으로 ‘제5공화국’ 출범
1959~1969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
1970년 11월 9일 콜롬베레두제글리즈 자택에서 서거

 

오늘날 프랑스가 쓰고 있는 헌법 체제, 즉 제5공화국을 연 사람도 드골입니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그의 이름을 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물론 대통령 시절의 드골을 두고는 지금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그를 ‘드골 장군(le Général)’이라고 부르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바로 1940년 6월입니다.

 

 

항복 대신 저항을 택한 ‘무명의 장군’

1940년 5월,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프랑스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경고해 온 바로 그 방식의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드골은 기갑사단을 이끌고 5월 17일 모코르네에서 전차 반격을 지휘했습니다. 이후 준장으로 진급하고 6월 초에는 국방·전쟁 담당 차관에 임명됐지만, 전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휴전, 사실상의 항복으로 기울던 6월 17일. 드골은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6월 18일, BBC 라디오 마이크 앞에 섭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랑스 저항의 불꽃은 꺼져서는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6월 18일의 호소(L’Appel du 18 juin)’로 불리는 이 방송은, 드골이라는 이름을 프랑스 역사에 새긴 출발점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드골은 프랑스 국민 대부분에게 ‘무명의 장군’이었습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방송을 들은 사람도 많지 않았죠.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항복을 택한 비시 정부의 군사법원은 1940년 8월 2일, 궐석 상태의 드골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조국의 정부로부터 반역자가 된 것입니다.

가진 것은 라디오 마이크뿐. 충분한 군대도, 자금도, 정부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를 받아준 영국의 처칠과도 수없이 부딪혀야 했습니다. 

오늘날 공항과 광장에 남은 이름의 무게는, 바로 이 절망적인 출발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항 이름 뒤의 이야기, 영화 <드골>이 그립니다

오는 11월 국내 개봉하는 영화 <드골>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룹니다.

영화는 프랑스가 항복한 1940년, 런던으로 건너간 드골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에서 출발합니다. 작품소개서가 소개하는 영화 속 드골은 ‘군대도 정부도 돈도 없이 런던에서 시작한 망명 스타트업’의 리더입니다. 공항과 광장에 이름이 남기 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시절의 드골을 보여주는 셈이죠.

앞서 소개한 모코르네 전차 반격도 영화 속 전장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북아프리카 사막의 전투, 점령된 파리에서 저항에 나선 젊은이들, 그리고 동맹인 영국·미국과의 협상장까지. 한 사람의 저항 선언이 어떻게 한 나라의 해방으로 이어졌는지를 2부작에 담았습니다. (→ 영화 줄거리가 궁금하다면?)

드골 역은 배우 시몬 압카리언이 맡았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역에는 사이몬 러셀 빌이 출연합니다. 영국 역사학자 줄리언 잭슨이 쓴 드골 평전 『A Certain Idea of France』가 원작입니다.

원작의 제목은 드골의 회고록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인데요. “나는 평생 프랑스에 대한 어떤 생각을 품어 왔다.” 항복이 당연해 보이던 순간에도 저항을 택하게 한 그 ‘생각’이, 영화가 따라가는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드골: 저항의 시작>은 11월 11일, <드골2: 자유의 시대>는 11월 25일 차례로 개봉합니다.

공교롭게도 개봉 이틀 전인 11월 9일은 샤를 드골의 서거 56주기입니다. 다음에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게 된다면, 그 이름이 조금은 다르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자료 및 이미지 제공: ㈜모비데이즈 배급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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