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을 떼고도 남는 진짜 어른의 태도와 품격
현장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을 컨설팅하다 보면 20대 사회초년생부터 50대 베테랑까지 다양한 연령과 사연을 마주한다. 얼마 전 한 시간 남짓 마주 앉았던 한 여성분의 이야기는 유독 오랜 시간 마음에 묵직한 파도를 남겼다.
그녀는 한 중소기업에서 인턴십을 시작한 지 막 한 달 차에 접어든 참여자였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과거 이력이었다. 전 직장에서 어엿한 ‘임원’의 자리까지 올랐던 분이었다. 한때 조직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던 리더가 지금은 최저시급을 받는 가장 낮은 직급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기업의 대표는 물론이고, 그녀보다 한참 어린 직속 상사조차 “업무 역량과 태도 모든 면에서 회사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되는 든든한 사람”이라며 입을 모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상담 테이블에 앉은 그녀의 표정에는 그늘이 깊었다.
“제가 임원 출신이다 보니, 지금 회사 직원들이 저를 대하기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늘 조심스러워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나이 많은 외부 사람이 들어와서 아는 척한다’고 느낄까 봐 말을 삼키게 됩니다.”
충분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실력자임에도, 혹여나 자신의 말 한마디가 젊은 동료들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조직의 분위기를 해칠까 봐 한 발짝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깊은 부끄러움과 함께 나 자신을 조용히 반추해보게 되었다.
중장년의 나이에 과거 화려한 경력까지 지니고 있다면 자만에 빠지기 십상이다.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내가 맞아봤고, 내가 해봤다’는 아집에 갇히는 기성세대를 우리는 일터에서 얼마나 수없이 보아왔는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내내 맴돌았던 말은 오직 하나였다.
“제 말 한마디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걱정돼요.”
내가 일한 만큼의 권리를 주장하고, 통장에 찍히는 연봉만큼만 일하겠다는 ‘가성비의 논리’가 지배하는 요즘이다. 그런 시대에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지우고, 보이지 않고 계량되지 않는 ‘내 영향력의 파장’을 먼저 염려하는 어른을 만난 것이다. 가장 낮은 직급의 인턴십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만으로 그 중소기업에서 가장 큰 그릇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나는 과연 조직의 말단으로 일하던 시절,
나보다 타인과 조직의 결을 이토록 깊이 배려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훗날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저토록 투명하게 나를 낮추고 동료를 먼저 세워줄 수 있을까?’
진짜 연륜이란 나이와 연차를 무기로 앞세우는 권위가 아니다.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넓혀주고 그들을 빛나게 받쳐주는 단단한 품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배웠다. 조심스러움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사람이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다 보니 조직의 서열과 주변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회의석상에서 불쑥 던지기보다는, 직속 상사와 단둘이 차 한잔하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의견을 나누어보세요. ‘나이 때문에 주변 눈치가 보여 조심스러웠지만, 사실 일에 대한 열의와 아이디어는 이만큼 가득 차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신다면 상사도 큰 안도감과 신뢰를 느낄 겁니다.”
그제서야 그녀의 굳어있던 얼굴에 비로소 편안한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이토록 근사한 태도를 지닌 어른조차 낯선 환경 앞에서는 여전히 흔들리고 주저한다. 그 떨리는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며 “당신은 이미 훌륭한 어른입니다”라고 용기를 건네는 일. 그것이 내가 컨설팅 룸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매일 다시 배우는 일의 보람이다.
K의 커리어 노트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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