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위즈 ‘P의 거짓’이 콘솔 소울라이크 시장에서 글로벌 흥행을 거두고, 시프트업 ‘스텔라블레이드’가 PS5를 넘어 스팀(PC)으로 이식되며 다시 한번 세계 시장을 두드렸다.
그리고 2026년, 콘솔과 PC를 정조준한 국내 대형 게임사들의 글로벌 신작 러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모바일 매출 성장이 정체되고 국내 시장이 포화하면서, 더 큰 객단가와 더 넓은 영토를 가진 PC·콘솔 글로벌이 한국 게임의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많은 게임사가 모바일에서 검증된 마케팅 공식, 즉 ‘설치(Install) 극대화’와 ‘CPI(설치당 단가) 최적화’라는 무기를 그대로 들고 스팀에 상륙한다. 그리고 대부분 깨진다. 스팀은 광고를 켜고 끄는 것으로 성과가 갈리는 시장이 아니다. 출시 1년 전부터 출시 1년 후까지, ‘쌓아 올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게임 마케터가 스팀 글로벌에서 반드시 다시 배워야 할 4가지를 정리했다.
1. 첫 번째 재정의: ‘설치’가 아니라 ‘위시리스트’가 통화(Currency)다
모바일에서 성과의 통화는 설치 수였다. 스팀에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위시리스트(Wishlist, 찜 목록)다. 단순한 허영 지표가 아니다. 위시리스트는 스팀 알고리즘이 게임을 ‘출시 예정’과 ‘인기 신작’ 코너에 노출할지를 결정하는 핵심 연료이며, 출시일에 보유 위시리스트 유저 전원에게 일제히 발송되는 출시·할인 알림 이메일은 첫날 판매량을 폭발시키는 방아쇠다.
그런데 이 통화의 환율은 가혹하고, 무엇보다 양극화가 극심하다. 게임 디스커버리 분석사 GameDiscoverCo에 따르면, 출시 시점 위시리스트 2.5만 건 이상을 보유한 타이틀조차 첫 주 판매 전환율의 중앙값은 0.15배 수준에 그친다. 위시리스트 5만 건을 모아도 첫 주 판매는 약 8,500건이라는 의미다. 성과가 좋은 게임과 저조한 게임의 편차는 수십 배까지 벌어진다. 즉, 위시리스트의 ‘양’이라는 숫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위시리스트가 얼마나 ‘뜨거운 상태’, 다시 말해 유저의 기대와 관여도가 살아 있는 상태인지가 성패를 가른다.
여기서 모바일식 발상, 즉 출시일에 예산을 몰빵하는 전략이 무너진다. 과거에 한 번 찜을 눌러두고 잊어버린 ‘식어버린 위시리스트’ 유저는, 출시일에 아무리 큰 광고비를 쏟아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 위시리스트의 숫자만 늘리는 마케팅이 아니라, 출시 전까지 지속적인 콘텐츠 공개와 커뮤니티 빌드업으로 유저의 기대감을 ‘뜨겁게’ 유지하는 설계가 핵심인 이유다.

2. 두 번째 재정의: 매체를 ‘사면’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 최대 매체는 스팀 그 자체다
모바일 UA의 본질은 미디어 바잉(Media Buying)이다. 구글·메타·틱톡에 예산을 넣으면 그만큼 노출과 설치가 나온다. 스팀에는 이 공식이 없다. 스팀에서 가장 강력한 ‘매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밸브(Valve)의 자체 추천 알고리즘과 피처링(Featuring)이며, 이 알고리즘은 오직 유저의 실제 행동, 즉 데모 플레이타임·동시접속자·위시리스트 추가 속도에 반응한다.
그 핵심 무대가 연 3회(2월·6월·10월) 열리는 스팀 넥스트 페스트(Steam Next Fest)다. 2019년 단발성 행사로 출발해 2021년부터 연 3회 체제로 자리 잡았으며, 각 회차는 대형 정기 세일 직전에 배치된다. 게임당 단 한 번만 참가할 수 있는 일회성 카드인데, 그 격전의 규모가 매 회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2026년 6월 행사에는 4,300개가 넘는 데모가 출품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GameDiscoverCo 집계). 1년 전 같은 행사(약 2,600개)보다 66% 급증한 수치다. 관심의 분산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상수가 됐다.
더 냉정한 진실은, 넥스트 페스트가 ‘발견 엔진’이 아니라 ‘모멘텀 증폭기’에 가깝다는 점이다. GameDiscoverCo 분석에 따르면 행사 직전 위시리스트가 2,000건에 못 미치는 게임은 행사 기간 알고리즘 부스트를 거의 받지 못했고(평균 추가 위시리스트 약 300건), 행사 직전 2주간의 위시리스트 추세와 행사 성과의 상관계수는 0.819에 달했다. 사전에 데워두지 않은 게임은 이 거대한 무대에 올라도 묻힌다는 뜻이다. 실제로 2026년 2월 행사에 참가한 3,500여 개 데모 중,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위시리스트 4~5만 건)에 도달한 게임은 약 140개, 전체의 4%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구조에서 외부 광고의 역할은 모바일과 완전히 다르다. 메타·레딧·유튜버를 통해 확보한 트래픽은 ‘설치’를 직접 사는 것이 아니라, 스팀 상점 페이지로 유저를 ‘되돌려 보내’ 데모 플레이와 위시리스트를 일으키고, 그 행동 신호로 알고리즘을 깨우는 보조 엔진이다. 외부에 태우는 광고비가 스팀 내부의 유저 행동 지표(데모 플레이, 체류 시간 등)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비싼 광고는 스팀 알고리즘을 깨우지 못한 채 공중으로 증발하고 만다.

3. 세 번째 재정의: ‘글로벌’은 영어 빌드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모바일 글로벌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앱스토어·구글플레이라는 단일 창구에, 광고 채널도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었다. PC 글로벌은 다르다. 스팀이라는 단일 플랫폼 위에 올라가지만, 그 안의 유저는 권역별로 전혀 다른 커뮤니티 문법 속에서 게임을 발견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서구권은 레딧(Reddit)의 서브레딧과 디스코드(Discord) 커뮤니티, 그리고 트위치(Twitch) 스트리머가 여론을 만든다. 중화권은 같은 스팀이라도 빌리빌리(Bilibili)와 위챗 생태계가 입소문의 진원지다. 일본은 X(트위터)와 유튜브, 그리고 트위치 스트리머 생태계, 특히 인기 스트리머들의 대형 합방 이벤트가 발견과 화제성의 핵심 통로다. 동일한 트레일러 하나를 전 권역에 똑같이 뿌리는 것은 ‘글로벌’이 아니라 ‘무국적’이다. 권역별 핵심 커뮤니티, 현지 스트리머·인플루언서, 언어를 넘어선 문화적 로컬라이징(현지화)을 하나의 캠페인 설계도 안에서 통합 운영하는 IMC(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PC 글로벌에서는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다.

4. 네 번째 재정의: ‘출시’는 끝이 아니라 롱테일의 시작이다
모바일의 성과 곡선은 출시 직후 정점을 찍고 빠르게 우하향한다. PC·콘솔은 정반대다. 스팀은 출시 후 수년에 걸쳐 매출이 누적되는 롱테일(Long-tail) 시장이며, 그 곡선을 만드는 것은 출시일의 광고비가 아니라 출시 이후의 운영 설계다.
연중 반복되는 스팀 정기 세일(여름·겨울·가을 세일 등)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재유입 이벤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밸브는 의도적으로 넥스트 페스트를 대형 정기 세일 직전에 배치한다. 실제로 2026년 6월 넥스트 페스트가 끝나고 사흘 뒤 곧바로 스팀 여름 세일이 열렸다. 데모로 데운 관심을 세일 구매로 곧장 전환시키는 구조다. 여기에 대형 업데이트와 DLC(추가 콘텐츠)는 잠들어 있던 유저와 스트리머를 다시 불러 모으는 모멘텀이 된다. 무엇보다 스팀의 생명선은 ‘평가(Review)’다. ‘매우 긍정적(Very Positive)’ 이상의 리뷰 등급을 유지하느냐가 신규 구매의 전환을 좌우하며, 초기 리뷰 폭탄 하나가 출시 부스트를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다. 모바일의 LiveOps(라이브 운영)가 일·주 단위의 인앱 이벤트라면, PC의 운영은 분기·연 단위의 세일·업데이트·커뮤니티 관리를 잇는 더 긴 호흡의 게임이다. 이 호흡을 출시 전 마케팅과 따로 떼어 운영하는 순간, 애써 쌓은 모멘텀은 출시 첫 주와 함께 휘발된다.

글을 마치며: 스팀은 ‘캠페인’이 아니라 ‘여정’을 산다
모바일 마케터의 가장 강력한 본능은 미디어를 켜고 끄며 실시간으로 효율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팀 글로벌에서 이 본능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이다. 스팀은 ‘출시일 D-day에 집행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출시 1년 전 첫 위시리스트부터 출시 1년 후 마지막 세일까지 이어지는 여정’ 전체를 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위시리스트를 연료로 데우고, 외부 매체로 알고리즘을 깨우고, 권역별 커뮤니티에 스며들고, 출시 이후의 롱테일을 설계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퍼포먼스와 브랜딩, 그리고 글로벌 권역 운영을 하나의 그림으로 잇는 통합 설계자(Architect)를 요구한다. 모바일의 문법을 잘 안다는 것은 분명한 강점이다. 단, 그 문법을 PC의 문법으로 ‘번역’할 수 있을 때에만 그렇다. 게임사의 글로벌 진출을 함께 설계하는 마케팅 협력 플랫폼 ‘게임더하기(GSP+)’에 협력사로 합류하며, 우리가 가장 치열하게 들여다보려는 지점도 정확히 이 ‘번역’에 있다.
한국 게임의 다음 무대는 이미 글로벌 PC로 넘어갔다.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스팀에 ‘광고’를 집행할 것인가, 아니면 ‘여정’을 설계할 것인가.
데이터 출처: GameDiscoverCo (Steam Next Fest 데모 수·위시리스트 전환율·모멘텀 분석, 2026년 2월·6월 에디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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