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길어지는 이유는 관련 데이터 공유할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회의(會議)는 모여서 의논하는 자리다. 이름 그대로라면 ‘모임’보다 ‘의논’에 방점이 있는데, 정작 많은 회의실에서는 의논해서 정하는 일보다 ‘모여서 나누는 일’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편이다. 이번에 만난 모 회사의 본부장도 비슷했다. 회의가 너무 길고 잦다며 답답해했는데, 그러면서도 그 회의를 어떻게 손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자료를 더 잘 정리하면 되지 않겠냐”는 기존 경험에 기댄 감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 글은 그와 상담했던 대화를 각색한 내용으로, ‘회의 때문에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다.


그날 그는 두툼한 회의 자료 한 뭉치를 테이블 위로 밀어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주 이만한 분량의 자료가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자료를 다루는 손이 익숙하면서도 지쳐 보였다. 아마 그동안 수없이 만들고, 수없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만큼의 소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담자)

“이거, 이번 주 정기회의 자료예요. 보시다시피 데이터가 부족하진 않아요. 팀마다 이렇게 꼼꼼히 뽑아 오는데, 이상하게 회의는 늘 두 시간을 넘겨요. 자료를 좀 더 간결하게 정리하면 나아질까요?”


(코치)

“자료는 충분해 보이네요. 그럼 반대로 여쭤볼게요. 이번 주 그 회의에서, 오늘 무엇을 ‘정하기로’ 하고 모이셨어요?”


(내담자)

“음… 딱히 뭘 정한다기보다, 각 팀 상황을 공유하고 이슈 있으면 같이 논의하는 자리죠.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다 같이 봐야 방향이 맞춰지니까.”

 


그의 말만으로는 자연스럽다, 전혀 이상하지 않게 들린다.

 

실제로 현장의 많은 회의가 그렇게 굴러가기도 한다. 다만 그 말 안에서, 회의가 원래 해야 할 일 하나가 슬그머니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라는 말에는, 정작 ‘무엇을 정하는 자리’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회의가 ‘결정을 위한 자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럼, 적어도 회의 목적과 내용이라도 정리되어 사전에 공유되었어야 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논리와 합리를 기반으로 회의가 굴러가도록 돕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원래 회의를 여는 목적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무언가를 (1) 알리기 위해서거나, (2) 정하기 위해서거나. 그런데 이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알리는 일은 한 방향이면 되고, 굳이 같은 시간에 모두를 붙잡아 둘 이유가 없다. 따라서, 회의의 형태를 빌려와야 된다면, 꼭 대면해서 말해야 하는 중요하면서도 오해가 없어야 하는 주제와 내용이어야 한다.

 

반면 정하는 일은 여럿의 판단과 책임이 한자리에 필요하다. 논의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이 오가야 하고, 거기서 어떤 안건이 도출되거나, 도출된 안건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로 들어가 실제 결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회의라는 값비싼 형식은 곧 ‘여러 사람의 시간을 동시에 묶어 두는 것’으로 가급적 값지게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다 같이 공유하고 논의하죠”라고 말하는 순간, 그 값비싼 형식이 그보다 낮은 가치로 볼 수 있는 ‘알리는 일’에 쓰이는 것이다. 그럼, 이 상황만으로 회의 참석자들에게 회의에 열심히 임해야 하는 명분이 줄어들 수 있다. 게다가 단순히 알리는 일(공유)에는 끝이 없다. 나눌 상황 속 관련 데이터는 항시 있을 수밖에 없고, 덧붙일 이슈도 늘 있으니, 회의는 자연히 길어진다. 

 

 

회의가 길어지는 건 자료가 많아서도, 공유할 시간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애초에 회의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인지를 미리 정하지 않고 참석자와 날짜부터 정하고 모였기 때문이다.

 

 

이때는 회의 소집과 이행, 회의 이후 활동 등에 대한 절차와 내용을 정례화시키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많은 회사가 공식적인 회의 관련 매뉴얼 등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대부분 구색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로 인해 많은 비효율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 삼는 이들도 없는 편이다. 분명 문제가 맞는데도, 문제로서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많은 회사가 ‘정하는 회의’ 대신 ‘모이는 회의’를 연다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중요 사안을 두고 대화를 하는 것을 회의라고 착각한다. 문제는 이것이 진행자 한 사람의 게으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조직적이고, 구조적이며, 관습적이다. 그동안 여러 회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이 장면을 너무 자주 봤다. 일반화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조직이 ‘정할 것’보다 ‘모이는 것’을 앞세워 회의 개최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근거는 멀리 있지 않다.

 

 

첫째, 회의가 열리는 계기를 보면 안다.

대부분의 회의는 ‘이걸 정해야 해서’가 아니라 ‘정기라서’ 열린다. 주간 회의, 월간 보고, 정례 미팅 등 캘린더에 반복으로 걸려 있으니 안건이 없어도 회의 시간은 늘 찾아온다. 안건이 회의를 부르는 게 아니라, 회의가 안건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나누는 걸로 그 자리를 채운다.

 

둘째, 자료의 방향이 ‘보고’를 향해 있다.

팀마다 뽑아 오는 자료는 대체로 ‘우리가 이만큼 했다’를 보여주는 데 맞춰져 있다. 기존의 데이터 기반 대시보드에서 각종 현황과 관련 지표를 촘촘하게 공유할 수 있는 ‘보기 좋은 형태’로 가져온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정해야 하는가 또는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고, 어떤 논의가 필요한가”등의 메시지는 빠져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회의 현장에서 날것의 데이터를 다 같이 처음 들여다보니, 즉석의 분석이 시작되고, 회의는 분석하다가 끝나거나, 분석까지도 가지 못하고 데이터 공유에서 끝난다.

 

셋째, 이 습관은 회사가 커질수록 오히려 짙어진다.

조직이 작을 땐 굳이 회의랄 것도 없이 옆자리에서 정해진다. 논의할 상대도 제한적이고, 논의해야 할 안건도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가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형식상의 회의를 굳이 거쳐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고 부서가 나뉘고 새로운 사람들 다수가 합류하게 되면, ‘관련 부서 속 사람들은 일단 다 부르는’ 회의가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성격이 다른 여러 회의와 무관한 사람까지 청중으로 앉으니, 회의는 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유받는 자리가 되고, 인원이 늘수록 결론은 더 멀어진다. 게다가 생경한 회의 속 내용으로 인해 혼란은 가중되고, 자칫 의사결정 및 업무 처리 속도가 전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한 가지 더, 이 현상은 정반대로도 나타난다.

공유가 넘칠 땐 회의가 한없이 길어지지만, 반대로 ‘정하는 회의’라고 이름 붙여 놓고도 아무것도 못 정하는 경우가 있다. 결정을 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거나, 판단 기준이 서 있지 않을 때다. 그러면 다들 의견은 내는데 결론은 “다음에 더 보고 정하죠”로 미뤄지고, 그 회의마저 결국 또 하나의 공유 회의가 된다. 방향은 반대지만 뿌리는 같다. 금번 회의에서 무엇을 할지, 사전에 공유해서 공감대를 만들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는 이렇게 바꾼다


우리 회사에서 개최되는 회의 종류와 거기에 맞는 회의 절차, 진행 방식과 내용 등을 정하고, 이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리더 그룹을 대상으로 학습시켜야 한다.

 

 

그날 나는 회의 자료를 도로 밀어 놓고, 회의의 목적부터 꺼냈다.

회의는 크게 ‘공유 또는 결정을 위한 자리’라는 명분에 맞춰 목적이 갖추어져야 했다. 따라서, 어떤 회의든지 시작 전에 회의 목적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미리 참석자를 골라 그들에게 회의 관련 내용을 사전에 공유하고, 회의 개최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래서, 시작은 회의를 ‘단순한 내용 및 상황 공유’에서 떼어내는 일로 정했다.

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관련된 내용 및 상황 등을 함께 보기 위해 모이는 게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사전에 공유된 내용 중에 무엇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것이고, 회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눌 상황이 있어서 모이는 게 아니라, 함께 상의하고 결정할 것이 있어서 모이는 것으로 회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다.

 

목적이 잡히면, 오늘 결정할 안건을 한 문장으로 재정리한다.

“이번 주 안에 A안과 B안 중 하나로 다음 분기 예산 배분을 정한다”처럼. 신기하게도 이 한 줄이 선뜻 써지지 않는 회의가 정말 많다. 안 써진다면, 그건 어떤 결정할 게 있는 회의가 아니라 단순히 모이는 회의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자리라면, 애초에 열지 않아도 된다.

 

안건이 정리되면, 공유할 것과 결정할 것을 가른다.

현황 브리핑·부서 근황·참고 지표처럼 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회의 시작 전에 문서 또는 공식 소통 채널로 전달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회의 시간에는 결정에 필요한 분석과 질문, 관련된 여러 선택지와 이를 위한 판단 기준만 남겨둔다. 그다음 참석자도 여기서 파생된다. ‘관련 있으니 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참여할 사람과 판단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 데이터를 가진 사람만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참고로 많은 회사가 회의 주제가 정해지면, 회의 관련 디테일을 정하기 이전에 회의에 누구를 참석시킬지부터 우선 정하고 통보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회의 참석할 때 볼멘소리부터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날 때 어떤 식으로든지 ‘결정(회의 결과)’이 남도록 한다.

물론, 모든 회의가 목적에 충실하여 의도한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그래서, 회의 막바지에 무엇을·누가·언제까지 할지가 손에 잡힐 정도로 정리되지 못했다면, 금번 회의를 정리하고 다음 회의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대신에 이때의 정리는 금번 회의가 더 길어지지 않기 위함이고, 동시에 현재 우리가 결정할 내용이 아직 충분히 모이지 못했거나 우리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함을 갖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럼 비록 공유 회의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회의에서 공유될 자료는 자료를 펴 놓고 정할 것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회의에서 결정할 것을 사전에 정해 두고 그에 대한 판단을 돕기 위한 자료로 구성되어야 한다. 가끔 회의 자료를 선택지처럼 만들어두고, 의사결정자가 손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가장 지양해야 하는 모습 중에 하나다. 리더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이고, 결국 반대로 말하면, 리더를 제외하고 회의 참석자 어느 누구도 관련되어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좋지 않다.

 

 

 

회의 진행 순서와 주요 내용이 위와 같이 만들어지면, 데이터는 회의를 늘어지게 하는 짐이 아니라 결정을 돕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순서가 뒤집히거나, 사전에 미리 공유되지 않고, 충분한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우리의 회의는 영원히 소수의 리더를 위한 보고회로 전락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꼼꼼한 자료를 앞에 두고도 두 시간째 “그래서 뭘 정하죠”를 되묻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회의 관련 내용을 미리 공유할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오늘 회의에서 결정할 것을 정하지 않고 모였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밀어 놓은 회의 자료는, 여전히 충실한 자료였다. 다만 그날 우리가 먼저 손봐야 할 건 그 자료의 분량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회의 참석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올 수 있는 ‘오늘 결정할 안건 혹은 회의 목적과 목표’ 쪽에 가까웠었다.

 

 

 


 

[작가 소개]


이직스쿨 김영학 대표. 18년차 전략 컨설턴트.

6년이 넘는 동안 1,500여 명의 직장인을 만나 커리어 코칭을 했고, 함께한 사람들이 스타트업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기업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로 취업하는 것을 도왔다. 또한 수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전략 기반의 비즈니스 컨설팅을 했으며, 현재는 스타트업 전문 비즈니스 코치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직장생활과 커리어에 인사이트를 주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며 〈이코노믹리뷰〉에 ‘직장에서 생존’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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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