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의 4억 뷰 캐릭터와 파이브가이즈의 고집이 증명한 팬덤의 본질
불닭과 파이브가이즈가 팬을 만든 방법
라면 한 봉지를 사면 그걸로 끝이다. 다음에 다른 라면을 집어도 아무런 손해가 없다. 스마트폰처럼 기기를 바꾸느라 애먹을 일도, 은행처럼 계좌를 옮기며 서류를 뗄 일도 없다. 먹는 것을 파는 회사가 팬을 만들기 가장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바꾸는 데 아무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닭볶음면은 지금까지 100억 봉이 팔렸다.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니 지구에 사는 사람 모두가 한 봉지 이상 먹은 셈이다. 이 정도면 팬덤이 있다고 봐도 될 텐데, 정작 회사 내부의 판단은 달랐다.
2026년 맥스서밋 마지막 무대에서 “불닭과 파이브가이즈: F&B 브랜드는 어떻게 팬덤을 키울까”라는 제목으로 좌담회가 열렸다. 무대에는 진행을 맡은 초인마케팅랩 윤진호 대표와 삼양애니 정우종 대표 그리고 파이브가이즈 한국 운영사인 에프지코리아 김남기 대표가 앉았다. 두 사람이 내놓은 답은 정반대였다. 한 회사는 2년간 브랜드 이름을 감췄고, 다른 회사는 무엇 하나 바꾸지 않았다.

매출이 아니라 손님의 행동에서 확인한 팬의 존재
여기서 말하는 팬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 시간과 취향까지 브랜드에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팬이 생겼다고 느낀 순간을 매출이 아닌 손님의 행동에서 찾았다. 정우종 대표가 꼽은 순간은 불닭이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요리 재료가 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10년 전 불닭 챌린지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맵게 먹는 경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소비자가 불닭 냉면이나 불닭 골뱅이처럼 자기만의 조합을 만들어 올리고, 그 영상이 퍼지면서 다시 매출을 일으킨다. 브랜드가 완성품이 아니라 남이 요리하는 재료가 된 것이다.
김남기 대표가 꼽은 장면은 여주 아웃렛이었다. 아웃렛에 있는 매장이니 쇼핑하다 배고파서 들르는 손님을 예상하고 준비했다. 그런데 열어보니 쇼핑백 하나 없이 파이브가이즈만 먹으러 온 손님이 상당히 많았다. 가는 길에 들르는 곳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가는 곳, 즉 목적지가 된 순간이다. 한쪽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가지고 놀게 했고, 다른 한쪽은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게 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소비자가 자기 시간을 자발적으로 썼다는 점은 같다.
매초 팔리는 라면 회사가 캐릭터를 만든 이유
정우종 대표는 위장의 한계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사람은 하루 세 끼, 일주일에 스물한 끼를 먹는다. 그 스물한 번을 전부 불닭으로 채울 수는 없다. 아무리 잘 팔려도 여기가 식품 회사의 한계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담장을 넘는 방법이 있다. 먹는 것 말고 다른 접점을 만드는 것이다. 콘텐츠는 배가 불러도 소비된다. 캐릭터 인형은 밥때가 아니어도 눈에 들어온다. 그가 디즈니에서 일하며 배운 원리가 그것이라고 했다. 겨울왕국 영화는 7년에 한 번 나오지만, 문구점에서 엘사 인형을 볼 때마다 영화가 떠오르고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난다.

그렇게 만든 캐릭터가 페포다. 기존 캐릭터인 호치를 왜 바꾸느냐는 반대가 있었다. 호치는 10여 년간 해외에서 정품과 가품을 가려내는 표식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팔기에는 한계가 많았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었다. 페포는 2~3년 전부터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 소유권을 온전히 갖고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결정이 나온다. 지난 2년간 유튜브 콘텐츠 어디에도 불닭이라는 이름을 노출하지 않았다. 브랜드를 완전히 지운 채, 캐릭터 하나만으로 팬을 모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100억 봉을 판 브랜드 이름을 굳이 감춘 셈인데, 결과는 1년 만에 구독자 100만 명, 시청자의 절반 이상이 북미, 2년 누적 조회수 4억 회였다. 올해부터 라면 봉지에 페포가 등장했고, 지난달에는 온라인 상점을 열어 캐릭터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해외를 겨냥하며 세운 기준은 셋이었다.
첫째, 페포는 말을 하지 않는다.
행동과 몸짓, 그리고 짧은 의성어 하나로만 표현한다. 자막을 읽지 않아도 되니 언어 장벽이 아예 사라진다.
둘째, 지금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따라간다.
매주 AI가 지난주 반응이 좋았던 챌린지와 유행을 정리해주면, 그것을 페포의 성격에 맞게 옮겨 콘텐츠로 만든다.
셋째, 한눈에 알아보게 만든다.
병아리를 노란색으로 그리면 눈에 띄지도 않고 불닭의 색도 아니어서 빨간 병아리로 정했다. 심장을 불꽃이 감싸는 모양으로 브랜드의 매운맛을 담았다.

감자가 없으면 파이브가이즈도 없다
파이브가이즈의 답은 정반대였다. 브랜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법이 허락하는 선까지 본사와 똑같이 가져가는 것이 전략이었다. 근거는 조사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가정이었다. 처음 온 손님이든 해외에서 먹어본 손님이든 매장을 나설 때 같은 말이 나오게 하자는 것. 아, 이게 파이브가이즈구나. 혹은, 맞아 이게 파이브가이즈였지.
그래서 타이머도 전자레인지도 냉동고도 없는 운영 방식을 그대로 옮겼다. 미리 만들어두거나 데워서 내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받아 매장에서 손으로 패티를 빚는다. 매장 타일과 조명, 간판 글씨체, 빨간 간판은 물론이고 매장에 흐르는 음악까지 본사에서 받은 것을 그대로 튼다.

가장 애를 먹은 것은 감자였다. 준비 단계에서 본사 임원이 한 말이 감자가 없으면 파이브가이즈도 없다는 것이었다. 냉동 감자를 쓰지 않고 생감자를 써야 하는데, 국내산 감자는 수분이 많아 튀김에 맞는 품종을 찾기가 어려웠다. 품종을 찾고 나니 이번엔 그걸 길러줄 농가를 구해야 했다. 여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지금도 계절과 산지에 따라 감자가 바뀐다. 현재는 제주산이고 곧 해남으로, 그다음은 강원도로 넘어간다. 산지가 바뀌면 감자 속 전분 함량이 달라지고, 전분이 다르면 같은 시간을 튀겨도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모든 매장이 하루 두 번 튀김 온도와 시간을 다시 맞춘다. 직원들이 직접 튀겨보고 함께 먹어보며 오늘 감자에 맞는 조건을 찾는 것이다.
품질 점검의 강도도 남다르다. 손님인 척 방문해 매장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는 흔하지만 보통 분기나 반기에 한 번이다. 파이브가이즈는 모든 매장을 주 2회 점검한다. 매장 한 곳당 연 100회, 전체로는 연 1,000회 방문이다. 평가로 끝나지도 않는다. 만점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팬은 조회수가 아니라 주문서에서 확인된다
두 회사가 팬덤을 재는 방법은 정반대의 전략만큼이나 달랐다. 정우종 대표는 조회수와 구독자 같은 숫자를 아예 안 본다고 했다. 대신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틱톡에서 해당 해시태그로 일주일간 올라온 콘텐츠 중에 회사가 돈 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만든 것의 비율이다. 다른 하나는 공유 횟수다. 조회수보다 훨씬 엄격한 지표인데, 이유가 설득력 있다. 친구에게 이거 봤냐고 보내려면 자기 취향을 드러내야 한다.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김남기 대표가 든 지표는 더 뜻밖이다. 파이브가이즈에서는 버거에 들어갈 토핑을 손님이 직접 고르는데, 다 넣어달라는 뜻의 올더웨이가 기본 선택지다. 매장을 처음 열었을 때는 이 주문이 90%를 넘었다. 지금은 매장별로 60~70%까지 내려왔다.
숫자가 떨어졌는데 좋은 신호다. 처음 온 손님은 뒷사람이 기다리니 무난하게 다 넣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몇 번 오다 보면 좋아하는 건 더 넣고 싫어하는 건 빼기 시작한다. 김남기 대표는 파이브가이즈의 진짜 매력이 자기 버거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주문서가 복잡해질수록 팬이 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따라 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세 가지
두 사례를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조건이 셋 있다.
첫째,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다.
2년간 브랜드를 감추고 캐릭터만으로 팬을 모으겠다는 결정은, 그 2년치 성과를 매출로 환산해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삼양애니가 별도 법인이라는 점이 이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분기마다 기여도를 증명해야 하는 마케팅팀이 같은 계획을 통과시키기는 어렵다.
둘째, 지킬 원본이다.
바꾸지 않는 것이 전략이 되려면 애초에 바꾸지 않을 만한 원본이 있어야 한다. 파이브가이즈는 1986년 미국에서 시작해 28개국에 약 2,000개 매장을 두고 있다. 한국 1호점인 강남점은 2023년 6월 문을 열 때 대기 시간 6시간, 대기 인원 1,300명을 기록했다. 손님들이 이미 기대를 품고 왔다는 뜻이고,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곧 전략이 됐다. 이제 막 시작하는 브랜드에는 지킬 원본 자체가 없다.
셋째, 돈이다.
하루 두 번의 튀김 조건 재설정, 주 2회 미스터리 쇼퍼, 계절 따라 바뀌는 감자 수급은 전부 비용이다. 김남기 대표가 굿즈를 팔지 않고 매장 오픈 때 나눠주는 것도 본질은 음식이라는 판단에서 나왔지만, 그 판단을 유지하려면 다른 데서 돈이 벌려야 한다. 정우종 대표가 매운 성분이 옮겨간 빨간 노른자 계란을 만들려고 1년간 닭 사료 배합을 연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정성은 대개 돈으로 산다.

브랜드가 비워둔 자리에 소비자가 들어온다
정우종 대표가 마지막에 남긴 말이 이날 좌담회의 결론에 가깝다. AI로 몇 초 만에 완벽한 이미지가 나오는 시대일수록, 브랜드가 더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소비자가 끼어들 수 있는 빈 곳을 일부러 만든다고 했다. 콘텐츠를 반쯤만 만들어 내놓고, 나머지는 소비자가 들어와 웃고 놀리고 자기 방식으로 바꾸게 두는 것이다. 그렇게 판을 깔아야 소비자가 이걸 내 브랜드라고 여긴다.
김남기 대표의 마무리는 현장이었다. 마케팅은 브랜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고, 그 본질을 알려면 매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손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했다. 두 답은 달라 보이지만 향하는 곳이 같다. 한쪽은 브랜드 이름을 지운 자리에 캐릭터를 세워 소비자가 놀 공간을 만들었다. 다른 한쪽은 조리법을 하나도 바꾸지 않는 대신, 토핑을 고르는 몫을 손님에게 남겼다. 팬덤은 브랜드가 완성해서 건네주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채우지 않고 비워둔 자리에 소비자가 자기 시간과 취향을 밀어 넣으면서 생긴다.
오늘 우리 브랜드는 어떤 자리를 내줄 것인가.
두 브랜드가 청중에게 남긴 질문이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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