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68일. <진주만> 106일. 그리고 <드골> 150일.
카메라가 실제로 돌아간 날을 센 숫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마이클 베이 같은 이름과 나란히 놓고 보니, 프랑스 영화 한 편이 가장 위에 올라 있습니다.
제작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드골> 1·2편에 들어간 돈은 원화로 약 1,500억 원대. <덩케르크>, <미드웨이>, <오펜하이머>와 비슷한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드골>은 할리우드 전쟁 대작과 같은 체급의 영화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숫자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숫자가 무엇을 셌는지 함께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11월 국내 개봉하는 프랑스 전쟁 영화 <드골>을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 대작들과 나란히 놓아 봤습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과,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함께 짚어봅니다.
제작비, 할리우드 전쟁 대작들과 나란히
비교 대상은 배급사 작품소개서가 골라놓은 전쟁 영화 열 편입니다. <덩케르크>, <1917>,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핵소 고지>처럼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제2차 세계대전 영화가 중심이고, <블랙 호크 다운>과 ‘원자폭탄의 아버지’를 그린 <오펜하이머>도 포함됐습니다.
공개된 예산·비용을 원화로 환산해 보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 2,000억 원 안팎: <덩케르크>(1,500억~2,250억 원), <진주만>(2,100억 원)
- 1,400억~1,500억 원대: <드골> 1·2편(약 1,505억~1,770억 원), <미드웨이>·<오펜하이머>(각 1,500억 원), <1917>(1,425억 원)
- 1,000억 원 안팎: <블랙 호크 다운>, <퓨리>,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600억 원: <핵소 고지>
<드골>은 열한 편 가운데 상위권입니다. <1917>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위, <덩케르크>·<진주만>보다는 아래에 자리합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드골>의 숫자만 두 편을 합친 금액이라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촬영일수는 150일, 비교작 가운데 가장 길다
제작비에서 상위권이었다면, 촬영일수에서는 압도적입니다. <드골>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꼬박 1년에 걸쳐 총 150일을 찍었습니다. 같은 기준(실제 촬영일)으로 비교작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진주만> 106일
- <블랙 호크 다운> 92일
- <퓨리> 69일
- <덩케르크> 68일
- <미드웨이>·<1917> 각 65일
- <핵소 고지> 59일
흥미로운 것은 <드골>의 150일을 두 편으로 나눠 봐도 편당 75일이라는 점입니다. 단순 계산이지만, <덩케르크>나 <1917>보다 긴 시간입니다.
물론 촬영을 오래 했다고 더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장면을,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찍었는지를 가늠하는 단서는 됩니다. 약 5시간 20분에 달하는 2부작에 파리 시가지, 모로코 사막, 파리 외곽에 지은 런던까지 담아야 했으니까요.

숫자를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세 가지
여기까지만 보면 <드골>이 할리우드 대작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 비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1. 두 편을 합친 숫자다
<드골>의 제작비와 촬영일수는 모두 1·2편을 합친 프로젝트 기준입니다. 반면 다른 영화들은 한 편의 숫자죠.
제작비를 단순히 둘로 나누면 편당 약 750억~885억 원. 한 편씩 놓고 보면 할리우드 전쟁 대작보다는 적은 규모입니다. 두 편을 한 번에 찍은 영화이기에 나온 숫자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환율과 물가가 같지 않다
작품소개서는 비교를 위해 1달러=1,500원, 1유로=1,770원으로 환산했고, 물가는 보정하지 않았습니다.
물가를 보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래된 영화일수록 실제 규모가 덜 반영됐다는 뜻입니다. 1998년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1년의 <진주만>의 제작비는 오늘날 돈의 가치로 따지면 더 커집니다.
3. 어디까지 세었는지가 다르다
영화의 제작비는 집계 기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드골>만 봐도 공식 제작비는 7,400만 유로지만, 프랑스 매체 르푸앵이 보도한 최종 비용 추정치는 8,500만~1억 유로입니다. 작품소개서의 ‘약 1,505억~1,770억 원’은 이 추정치를 환산한 것이죠.
그렇다면 <드골>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는 것이 정확할까요? 기준을 프랑스 안으로 옮겨보면 답이 분명해집니다. 작품소개서에 따르면 <드골>의 공식 제작비는 2025년 프랑스 영화 평균 제작비의 약 15배입니다. (→ 자세한 제작 규모가 궁금하다면?)

하루를 찍은 영화, 4년을 찍은 영화
숫자가 비슷해도 그 돈과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는 영화마다 다릅니다. <1917>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1917>은 전선을 가로질러 명령을 전하는 두 병사의 이야기입니다. 롱테이크와 정교하게 설계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영화 전체가 마치 두 번의 긴 테이크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죠. 촬영은 2019년 4~6월 영국에서 진행됐고, 클라이맥스 장면에는 매 테이크 500명 넘는 엑스트라가 투입됐습니다.
반면 <드골>이 다루는 시간은 1940년 프랑스의 항복부터 파리 해방까지 약 4년입니다. 무대도 넓습니다.
- 파리: 개선문 광장, 팡테옹, 당페르로슈로 등 실제 시가지
-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막에서 재현한 비르하킴·크사르 길란 전투
- 런던: 파리 외곽 스튜디오에 지은 처칠의 집무실과 전쟁상황실
여기에 전투가 아닌 장면도 많습니다. 처칠·루스벨트와 맞서는 협상장, 점령된 파리의 레지스탕스까지. 작품소개서의 표현대로 ‘전장과 협상장을 오가며 한 나라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150일이라는 촬영일수도, 5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도 이 이야기의 크기에서 나온 숫자인 셈입니다. (→ 촬영 현장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숫자 너머의 규모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드골>은 작품소개서가 고른 전쟁 대작들 가운데 제작비는 상위권, 촬영일수는 1위입니다. 다만 두 편을 합친 숫자이고, 환율·물가·집계 기준도 제각각이라 순위를 매기기보다는 규모를 가늠하는 참고치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할리우드가 아닌 프랑스에서, 할리우드 전쟁 대작과 나란히 놓고 비교할 만한 규모의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죠.
그 규모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드골: 저항의 시작>은 11월 11일, <드골2: 자유의 시대>는 11월 25일 차례로 개봉합니다.

자료 및 이미지 제공: ㈜모비데이즈 배급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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